공동체에서 일하다 보면 열심이 있는 분과 욕심이 많은 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어떤 일에 대하여 열정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열심과 욕심은 종이 한 장 차이 인 것 같아도 그 결과는 전혀 다르다.

열심과 욕심은 모두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불러오고 마는 까닭이다. 열심있는 분들에게서는 희생과 양보와 중재와 화해의 은사가 두드러져 공동체에 유익을 주는 반면, 욕심이 많은 분들에게서는 이기심과 독단 배타성을 가지고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까닭에 공동체에 커다란 불익을 주게 된다.

욕심(慾心, greed)의 한자를 보면 욕(慾) 자는 바랄 욕(欲)자 아래에 마음 심(心)자가 있는 형태이다. 글자 풀이로만 한다면 무엇을 바라는 마음이 하등 잘 못된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욕심을 부리다'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욕심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어느 종교에서는 욕심이란 일시적인, 즉 물질적인 욕망을 채움으로써 얻어지는 쾌락을 바라는 마음이라 한다. 따라서 욕심은 끝이 없는 까닭에 욕심자(慾心者) 하나 때문에 그 공동체 전체가 불행하게 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마음에 욕심이 가득한 자는 제아무리 열정적이라 하여도 그 기저(基底)에는 제 유익만을 위하는 까닭에 불행과 파멸을 가져올 따름이다. 대부분의 욕심자는 자신만이 공동체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이타적 삶을 살 수 없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십중팔구는 파당을 지어 세를 과시하는 까닭에 공동체를 소란케 한다.

그런데 이 욕심이 교계안에서 더욱 활발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소위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열심 곧 욕심을 주입시키는 잘못된 성경 해석 때문이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는 자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의 능력을 주술적으로 주시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인간의 육체를 지으시고 그 한계를 정하셨기 때문에 나이에 따라서 열심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아신다. 그것을 무시하고 열심을 내는 것은 이미 열심히 아니라 욕심이다. 또 하나님은 인간의 인품과 지성과 경험들을 무시하지 않으신다. 그것이야말로 성경에 하나님이 사람들을 불러 쓰신 이유이다.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돌아보지 않은 열심은 곧 욕심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이러한 욕심자들의 아집과 주장과 저돌적 행위로 말미암아 공동체가 받는 해악은 이루 다 말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공동체 구성원들 모두가 욕심을 배제하고 열심자가 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열심이란 ‘어떤 일에 온 정성을 다하여 골똘하게 힘쓰는 마음’이라는 뜻인데 정성과 골똘하게 힘쓰는 마음만이 공동체를 행복하게 하고 발전시키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미 공동체안에 욕심으로 말미암는 불화가 있다면 아프지만 조직의 러더쉽은 재빨리 분별하여 그들을 의사결정 그룹에서 배제시켜야 한다. 잘 살려면 욕심을 버리고 열심으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