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대인의 유월절엔 꼭 등장하는 노래 한 곡이 있다. 그것은 '아니마민'이라는 아름다운 노래인데, '아니마민'이란 히브리어로 "나는 믿는다"라는 뜻이다. 이 노래가 작곡된 곳은 놀랍게도 공포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였다.

이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우리는 구세주가 오시리란 걸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 늦게 오십니다." 저들은 아직도 메시야의 초림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재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고대함에 비하여 얼마나 비극적인 일인가?

우리 동네 크리스마스는 화려하기 그지 없다. 그중에 두집만 빼 놓고 말이다. 그 두 집은 유대인들로 성탄절을 보이콧하기라도 하듯 하누카를 자랑하면서 흰 봉지를 집 주위에 둘러 놓았는데 마치 상중(喪中) 싸인처럼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1933년 나치의 탄압을 피해 망명해야 했던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브루니수아프 후베르만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연주자들을 모아 관현악단 하나를 결성했는데, 당시 '팔레스타인 교향악단' 으로 불리던 이 악단이 이스라엘 필의 직접적인 모체였다. 첫 정기 연주회는 텔아비브에서 1936년 12월에 개최되었고, 이 때 지휘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맡았다. 그 이후 레너드 번스타인, 장 마르티농 쿠르트 마주어 둥이 객원으로 지휘봉을 잡았다.

뉴욕 필하모닉의 인도 출신 유대인 지휘자인 주빈 메타가 1977년에 창단 이래 최초로 음악 감독 직함을 수여받았는데, 몇 년 뒤인 1981년에는 '종신 음악 감독' 으로 한 단계 격상되었다. 창단 이래 여전히 유대인 단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멘델스존이나 말러 같은 유대계 작곡가들의 작품에 각별한 애착을 갖고 연주하고 있다.

아직도 이 악단에서 금기시되고 있는 것이 바그너의 음악인데, 나치가 끊임없이 국수주의와 반유대주의 선전 대상으로 삼고 있던 바그너 음악에 대한 강한 거부감 때문이다.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거의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일 정도가 되었다. 비단 이스라엘 필 같은 국내 악단이 아니더라도, 이스라엘을 방문해 공연하는 음악 단체들도 바그너 작품을 연주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암묵적 동의로 여겨져 왔다.

주빈 메타가 바그너의 곡을 선정하자 단원들이 반발하고 테러 움직임까지 있었다고 하니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종교색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저들이 헨델의 메시야를 연주 할 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마에스트로 주빈 메타가 불쌍할 따름이다. 고작 아니마민이나 마음놓고 연주 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