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 해의 끝에 서게 되었습니다. 세밑에는 늘 그렇듯이, 지나온 한 해를 돌아보면서 수없이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돌아보기도 하고, 눈물의 시간을 반추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것은 눈물이 우리를 성숙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프지만 열정을 다해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 감사하기도 합니다.
고통의 시간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떼처럼 온 몸의 살갗을 떼어내는 통증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리하여 우리는 또다시 고통의 한가운데서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핏빛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우리의 지나간 모든 시간들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토양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고통을 보는 관점에 따라, 또는 새로운 재해석의 과정에 따라, 눈물 묻은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반드시 불행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또다시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행복과 만나게 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치유의 과정을 얼마나 성실하게 치러 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한 해 동안 나를 찾아온 슬픔 가득한 눈빛의 수많은 분들의 흘러내리던 눈물을 마음 가득 안고, 그분들의 슬픔을 걷어내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을 되짚어보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나의 꿈속에서 그분들은 너무나 행복하고 기쁜 얼굴로 환히 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이 되어 영원히 행복한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우리가 흘린 눈물은 누군가의 상처주는 말과 행동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어떤 면에서는 우리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상처난 마음은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하고,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는 불구로 만들고, 세상을 일그러진 눈으로 보게 합니다.
그 결과, 반듯하고 제대로 보게 하는 눈을 잃게 만들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 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더욱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틈만 나면 타인을 비난하게 됩니다. 사실 이것은 자신을 비난하고 학대하는 모습의 무의식적 반증인데도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치유의 의지를 가지고 나를 찾아준 분들을 기억합니다. 잠시 동안 혹은 장기간 매주 한 두 번씩 나를 만나러 와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의 외로움 치유를 도우며 내 외로움도 같이 치유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슬픔을 치유하는 동안 내 슬픔도 함께 치유되었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또 한 해의 끝에 서서 마음이 아픈 당신의 남은 눈물을 또다시 닦아 드리고 있습니다. 아울러 내안에서 흐르는 눈물도 함께 닦아내고 있습니다. 눈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흐르는 눈물의 통로를 막고 단단히 응고될 때까지 방치해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마음을 심각하게 헐게 만들고 종양이 생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서로의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흘리는 눈물을 서로가 들여다보며 닦아줄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나 긴 한 해가 지나가며 서로에게 새겼던 생채기를 들추어 약을 발라주고 용서를 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충분히 눈물을 흘린 이후 온전한 치유를 통해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사람은 부유한 사람입니다. 마음 아픈 누군가의 곁에 앉아서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은 더욱 부유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세밑에서 다시한번 나와 당신의 남은 눈물을 닦아내고 난 후, 새로운 한해의 빛을 온 몸으로 받으며, 몸과 영혼까지 환해진 나와 당신을 꼭 만나러 가겠습니다. 치유의 여정은 또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없애시고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도 그때에는 주께서 씻어 내실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하신 약속입니다 -이사야 25장 8절-”
고통의 시간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떼처럼 온 몸의 살갗을 떼어내는 통증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리하여 우리는 또다시 고통의 한가운데서 또다시 눈물을 흘리며 핏빛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우리의 지나간 모든 시간들은 우리를 성장하게 하는 토양이 되어주었습니다.
그 고통을 보는 관점에 따라, 또는 새로운 재해석의 과정에 따라, 눈물 묻은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반드시 불행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또다시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행복과 만나게 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치유의 과정을 얼마나 성실하게 치러 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한 해 동안 나를 찾아온 슬픔 가득한 눈빛의 수많은 분들의 흘러내리던 눈물을 마음 가득 안고, 그분들의 슬픔을 걷어내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을 되짚어보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나의 꿈속에서 그분들은 너무나 행복하고 기쁜 얼굴로 환히 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이 되어 영원히 행복한 모습으로 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우리가 흘린 눈물은 누군가의 상처주는 말과 행동 때문이기도 합니다. 또 어떤 면에서는 우리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서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상처난 마음은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하고,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는 불구로 만들고, 세상을 일그러진 눈으로 보게 합니다.
그 결과, 반듯하고 제대로 보게 하는 눈을 잃게 만들고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 속에 살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더욱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틈만 나면 타인을 비난하게 됩니다. 사실 이것은 자신을 비난하고 학대하는 모습의 무의식적 반증인데도 그것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치유의 의지를 가지고 나를 찾아준 분들을 기억합니다. 잠시 동안 혹은 장기간 매주 한 두 번씩 나를 만나러 와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의 외로움 치유를 도우며 내 외로움도 같이 치유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슬픔을 치유하는 동안 내 슬픔도 함께 치유되었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또 한 해의 끝에 서서 마음이 아픈 당신의 남은 눈물을 또다시 닦아 드리고 있습니다. 아울러 내안에서 흐르는 눈물도 함께 닦아내고 있습니다. 눈물 흘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흐르는 눈물의 통로를 막고 단단히 응고될 때까지 방치해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마음을 심각하게 헐게 만들고 종양이 생기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서로의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흘리는 눈물을 서로가 들여다보며 닦아줄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나 긴 한 해가 지나가며 서로에게 새겼던 생채기를 들추어 약을 발라주고 용서를 구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충분히 눈물을 흘린 이후 온전한 치유를 통해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눈물을 닦아줄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는 사람은 부유한 사람입니다. 마음 아픈 누군가의 곁에 앉아서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은 더욱 부유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세밑에서 다시한번 나와 당신의 남은 눈물을 닦아내고 난 후, 새로운 한해의 빛을 온 몸으로 받으며, 몸과 영혼까지 환해진 나와 당신을 꼭 만나러 가겠습니다. 치유의 여정은 또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죽음을 영원히 없애시고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백성이 온 세상에서 당한 수치도 그때에는 주께서 씻어 내실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하신 약속입니다 -이사야 25장 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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