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동성애의 문제점

▲우남식 목사
WHO에서 성적 건강(sexual health)에 대한 정의를 “개인의 인성, 의사교환 능력 및 사랑의 감정을 키워주기 위해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및 사회적 영역 등에서 개인이 성적인 존재(sexual being)로 통합되는 것이다”라고 했다(Byer & Shainberg, 1994). 김흥규(2003)는 성숙과 건강의 개념을 “성숙한 사람이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심리적·사회적으로 성숙된 상태다”라고 정의했다.

DSM-I과 DSM-II(1965)에서는 동성애를 성격장애로 분류했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의 소수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197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정신의학회 학술대회에서 동성애를 인정하라고 방해활동을 전개했다. 이로 인해 DSM-III(1980)에서는 동성애를 장애진단기준에서 삭제시키는 대신 보다 제한적으로 자아 이질적(ego-dystonic)으로 교체했다.

그러다 DSM-III-R(1987)에서는 자아이질적 동성애 조항이 삭제돼 동성애 진단평가가 사라졌고, DSM-IV(1994)에서는 동성간의 성관계에 관한 단어조차 존재하지 않게 됐다. 대신 아동기 분야에서 Gender Identity Disorders(정체성 장애) 조항만이 다뤄지고 있다. 그 이전 1972년에 미국심리학회는 이미 동성애를 성격장애자 분류에서 제외시켰다. 이런 영향으로 한국도 동성애를 합법적으로 다루려 한다. 여기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성은 심리적 현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동성애는 선천성이냐 후천성이냐는 논쟁인데 성이란 용어인 서양어의 ‘sex’라는 단어는 ‘나눈다’, ‘분리하다’의 뜻인 ‘seco’, ‘sec’에 관련된 라틴어 ‘sexus’에서 유래한다(Joseph, 1967). 이는 성교나 성 관계를 의미하기보다 생물학적인 면에서 남녀를 구분한 것으로, 개인이 태어나면서부터 남성(male), 여성(female)으로 구분된 선천적인 성을 뜻하는데, 이를 성적 주체성(sexual identity)이라 할 수 있다(윤가현, 1990).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된다. 다시 말해 남성과 여성은 외적인 성기를 통해 구분된다. 심리적으로, 혹은 유전인자를 보고 여성이나 남성을 구분하지 않는다.

둘째, 동성애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

sex란 6이란 six라는 숫자에서 왔다. 이는 10계명 중 제6계명의 간음하지 말라는 뜻이다(개신교의 십계명 7계명, 천주교는 십계명의 둘째·셋째 계명을 하나로 묶었기 때문에 6계명이 됨). 따라서 성이란 순결을 뜻한다. 그리고 성행위는 두 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 하나는 출산이고 다른 하나는 쾌락이다. 성행위는 둘 다를 포함한다. 전통적으로 성행위는 출산에 한하도록 엄격하게 제한돼 있었지만 성의 에로틱한 즐거움을 분명히 긍정한다(잠 30:18,19). Nelson(1978)은 “性은 후손들을 산출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즐거움과 긴장을 풀려는 욕구”라고 했다. 그러니까 성행위의 기능 중 하나라도 빠지게 되면 건강한 성이라 할 수 없다. 건강한 성인 남녀가 성을 나눌 때 거기에는 쾌락과 생명이 잉태하게 된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성의 기능인 쾌락은 누릴지 모르지만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성윤리의 문제 이전에 생명의 문제다.

셋째는 동성애자의 육아 문제이다.

동성애자들은 상당수 결혼을 한다. 동성과 결혼했을 때 생명을 잉태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밝혔다. 그래서 동성애자들은 입양을 한다. 그렇다면 입양한 아이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심리학자 타일러는 가정에서 92%가 3세 이전에 문화화·사회화 과정을 다 겪는다고 했다. 그리고 심리학자 반두라는 부모를 자녀의 역할 모델의 첫째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이혼한 가정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이혼하는 경우가 이혼하지 않은 가정의 자녀들보다 많다고 본다. 아이들이 알게 모르게 자의든 타의든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성애자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또 다른 동성애가 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입양한 아이들은 선천성이 아닌 후천성 동성애자가 된다. 이렇게 되면 동성애자들은 확대 재생산된다. 동성애자들이 주장하는 선천성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넷째는 가정의 위기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두 가지 기관을 창설하셨다. 하나는 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이다. 그런데 교회보다 가정이 먼저 세워졌다. 가정은 생명이 창조되고 행복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가정은 인간이 만나는 최초의 사회공동체이고,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가 가정의 소중함과 결혼의 소망을 갖게 된다. 가정은 삶의 법을 배우며 사회화되는 생의 보금자리이고, 사회 근간을 유지·발전시키는 곳이다. 그래서 페스탈로찌는 가정은 도덕상의 학교라고 할 만큼 가정에서의 교육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동성애 결혼이 증대하면 가정이 어떻게 되겠는가? 동성애자들이 확대 재생산될 때 가정은 위기를 맞게 된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공동체를 지탱하는 근원적인 터를 잃게 된다. 성경은 기초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랴(시편11:3)”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 공동체가 무너지고 인류 공동체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다섯째, 에이즈 감염의 노출이다.

게이 남성은 항문성교나 구강섹스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비율이 훨씬 높다. 그 결과 게이 남성의 경우 에이즈나 다른 질병의 감염이 더 취약하다. 2005년 상반기 현재 감염 경로가 확인된 에이즈 감염인은 2,962명(전체 3,468명 중)이며, 그 중 역학조사를 통해 동성 감염인과의 예방조치 없는 성 접촉으로 감염된 비율은 35.8%이다. 약 65%가 이성애자란 이야기이니 숫자상으론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보다 적겠지만 문제는 전체 인구의 비율이다. 동성애자 커뮤니티가 좁다는 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인 만큼, 감염인 중 동성애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감추기 위해 역학조사시 이성과의 성관계로 감염이 되었다고 대답한 경우도 상당히 많은 것이 다년간 실무를 겪어 온 감염내과 전문의, 에이즈 관련단체, 감염인단체의 공통된 의견이다. 따라서 실제 비율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사회는 에이즈 공포로 휩싸일 수 있다.

여섯째, 윤리는 보편적이고 우선적이다.

윤리의 원칙 중 보편성의 원리가 있다. 윤리는 시대와 문화에 따라 수많은 차이점과 다양성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차이와 다양성만큼이나 공통점과 보편성이 있다. 사랑이 미움보다 값지다는 것, 일부다처제가 통용되는 사회라 하더라도 일부일처제가 부부 상호간의 인격적인 관계를 유지하는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 등은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보편타당한 원리다. 이성애가 동성애보다 보편타당하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윤리적 가치체계는 다른 가치체계에 우선한다.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되는 이유는 아이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권리가 부모의 행복추구권에 우선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생명은 쾌락과 행복에 우선한다. 생명이 쾌락과 행복보다 우선하는 것이 윤리의 특징이라면, 생명의 원인이 되는 성의 문제를 다루는 성윤리는 어떤 윤리 도덕보다 우선한다.

결론

동성애가 환경과 심리적인 현상이 아닌 생리 현상이라고 1백보 1천보 양보한다 해도 이 세상에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그러나 동성애는 생명이 없다. 지금 환경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4대강을 반대한다. 환경 윤리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생명존중 사상에서 비롯될 것이다. 생명은 성에서 온다. 성은 생명의 잉태를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생명은 곧 성이다.

사람들은 인권을 중요시한다. 그렇다면 생명을 잉태하는 성 또한 중요하다. 생명 없는 인권존중은 그 기초가 허물어질 수 밖에 없다. 오늘날 인권 존중 차원에서 주장하는 동성애자의 권리는 생명을 잉태하는 가장 기본적인 건강하고 보편적인 생명윤리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다수 인권의 중요성이다. 소수 인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문명사회, 건강한 사회이다. 그렇다고 다수 인권을 무시하는 것도 보편성 원리에 어긋난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는 내무반에서 여자와 동침할 수 없다. 그러면 동성애자들과 이성애자들과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들끼리 따로 내무반 생활을 하도록 한다는 것인가? 그것은 내무반에서 성적 행위를 용인하는 것이 된다. 소수 동성애자들의 별도 집단생활을 용인한다면 다수의 이성애자 군인들이 군 내무반에서 여성과 동침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불평등하다. 다수의 인권도 중요하다.

오늘날 동성애의 문제는 소수 인권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옹호되고 그 세력이 커져가고 있다. 일부 진보주의자들과 동성애자들,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세력과 찬성 반대로 서로 상반되는 의견으로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동성애 문제는 본래 성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시고 이를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생명의 축복과 사명의 존재로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따라 본질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모든 윤리의 기초인 생명윤리 곧 성윤리를 좇아 성정체성을 회복하고 가정을 지키고 보호하는 적극적인 대처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남식 목사(CMI 대학마을교회·인하대 사회교육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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