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독교 역사상 유래없는 부흥을 일군 한국 교회. 부흥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의 하나로 ‘새벽기도’를 꼽는다. 본지는 미주한인교회의 부흥을 염원하며 부흥의 바람을 일으킬 새벽 기도회 현장을 찾고, 은혜의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서른 여덟번째로 찾은 곳은 주사랑장로교회(월~토 오전 6시)다. 이길호 목사가 시무하는 이 교회는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자’를 표어로 한다.

12월 23일 이 목사는 히브리서 1장 1절부터 18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다. 이 목사는 ‘신앙체험에 너무 치우치지 말고 말씀의 기초를 튼튼히 하자’고 전했다.

히브리서 10장

1절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절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절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절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에비하셨도다
6절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절 이제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절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절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절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절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절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절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5절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절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절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다음은 설교말씀이다.

교회 역사를 보면, 유럽 루터교가 교리만 강조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만을 이야기하는 것에 반해 새로운 부흥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경건주의 운동입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좋아했습니다. 교리 중심의 신앙보다는 말씀으로 체험하는 신앙을 하니 사람들이 몰려갔습니다. 경건주의 운동을 통해 굉장히 큰 부흥이 일었는데 이런 현상이 50년 정도 지속되었습니다.

부흥 후 유럽에는 세상 철학 가운데 계몽주의와 합리주의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교회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합니다. 기독교 교회 가운데 예수님의 처녀 탄생, 부활 등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교회가 더 이상 믿지 않게 됐습니다. 이런 영향력이 교회에 갑자기 큰 파도와 같이 들어오니까 뜨겁게 열정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던 이들이 하루 아침에 무너졌습니다. 슐라이허 마허는 객관적 계시를 무시하고 신앙을 자기의 체험으로만 강조해 하루 아침에 교회가 초토화 됐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바로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신앙의 체험이 중요한 것이지 말씀 공부, 교리가 왜 중요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위험한 요소가 있습니다.

미국도 1730~40년대 큰 부흥 운동 물결이 지나고 1750년대 아주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부흥에 큰 역할을 했던 조나단 에드워드의 아들부터 믿음을 버리기 시작했으며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의 객관성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하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교회 전체가 유니테리한 교회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이걸 보면 신앙의 열정과 뜨거움이 중요하지만 말씀의 기초 없이 성경적 교리의 기초 없이 열정만 강조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이단 비슷한데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초가 되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우리 인간의 열정만큼 변덕이 많을 것입니다. 열심 그 자체도 우리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 되어야 할 것이고 성령님의 열심이 되어야한다.

본문은 구속 사역을 서로 비교합니다.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규약의 율법에 의한 짐승의 제사를 드립니다. 짐승의 피를 드리는 것은 그림자요 모형입니다. 주님 자신의 몸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 보좌에 드리는 성전의 실체입니다.

신약과 구약이 별도의 사건이 아니고 구약은 모형이고 예수님은 그 모형의 실상입니다. 이것은 서로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연속성이 있는 말입니다. 신약과 구약은 연속성인데 유기적 관계가 있습니다. 유기적 관계는 생명적인 관계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뿌리 신약은 나무와 열매 같습니다.

사과나무의 열매와 뿌리는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전혀 상관 없는 것 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짐승의 제물과 예수님의 보혈. 이것은 비교할 수 없지만 상징적으로 모형적으로 같습니다. 우리에게 새운 언약은 모형에 대한 실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피로 세우신 언약.

여러분 구약의 율법은 전부 다 돌비에 새기고 그것이 우리 마음의 비에 새겨집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신념으로 들어오는 이것이 언약의 특징입니다. 핵심은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예레미야서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고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는 것은 인간의 편에서 간단하지만 하니님의 측에서 보면 참 위대한 구속의 사역이고 너무나도 많은 값이 치루어진 사랑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한다 하더라도 구속의 은혜와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생각할 때 낙심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대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오늘 하루도 승리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