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교회 24/7 기도회나 철야 기도회는 주로 한어권 어른들 중심이었는데 이제 이 기도운동을 청년들을 포함하여 전교회적으로 확산시키라는 성령의 음성을 얼마전 강력하게 들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간절하고 뜨거운 기도의 열기가 느껴지는데, 이 기도의 열기가 자녀들에게는 잘 당겨지지 않는다고 우리 교회 중고등부 담당 전도사님도 고민하십니다. “과연 어떻게 젊은이들을 그리스도의 제자화 시킬 것인가? “ 이것이 모든 목회자들의 고민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신라의 화랑제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김성일 장로님은,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국의 역사가운데서 가장 놀라운 것은 젊은이들이 역사의 중심에 서서 때로는 목숨을 바치며 헌신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신라의 화랑(花郞)으로 대표되는 엘리트 집단이다.” 삼국 사기는 화랑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름다운 남자들을 뽑아서 곱게 단장하고 화랑이라 이름하고 이를 받들게 하였는데 그 무리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구름같이 모여든 아름다운 청년들, 함께 모여 도를 닦으며 일체의 보상을 거절하고 목숨을 다하여 나라를 섬긴 이 젊은이들이 과연 누구일까요? 그야말로 아침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그 옛날, 한국 땅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화랑의 정체에 대하여, 우리는 그들의 머리에 꽂아주었다는 무궁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궁화의 기원은 매우 신비합니다. 무궁화의 원산지는 시리아이며, 영어로는 샤론의 장미로 불리웁니다. 아가서에서 샤론의 수선화로 묘사된 무궁화는 바로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그래서, “샤론의 꽃, 예수“를 노래하는 찬송도 있습니다. 한국인은 어찌된 셈인지, 고대부터 샤론의 꽃 무궁화를 사랑하여 우리 나라를 무궁화 동산이라 칭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샤론의 꽃, 무궁화를 화랑의 머리에 꽂아주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렇게 볼 때, 고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청년문화를 주도한 정신적 이상이 바로 기독교에 뿌리하였다는 주장은 매우 타당합니다. 가야문화 연구소의 김도윤 소장은 인도 아유타 공화국의 공주 ‘허황옥’ 이 가야국에 기독교의 복음을 들고 AD 48년 가야국에 상륙하면서 기독교가 처음으로 조선 땅에 전래되어 가야와 신라가 모두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는 수많은 증거를 제시하여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다 불승 이차돈의 설득에 넘어가 신라 법흥왕이 대신들의 반대를 꺾고 불교를 공인했는데, 그 후 신라가 가야를 정복하면서 불교의 세력이 한반도를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1986년 경북 영풍군 평온면에 있는 분처바위에서 야소화왕(耶蘇花王) 이라는 음각 명분이 발견되었는데, 물론 야소는 예수의 한자 표기이고, ‘야소화왕’은 화왕이 예수임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볼 때, 화랑이란 화왕의 영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의미하며 고대의 화랑제도는 그리스도의 제자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김 성일 장로님은 고대 문헌들의 신빙성 있는 자료들을 제시하며 화랑들이 산수를 찾아다니며 풍류를 즐겼다는 기록은 청년들이 제자훈련을 통하여 성령세례를 받았음을 의미하며, 성령으로 거듭난 청년들에게 무궁화를 꽂아주었고, 그들에게 십자가의 도에 의거한 순교정신까지 가르쳤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근거있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한국 기독교는 불교 세력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꺾이운 것 같았으나, 그 영성의 뿌리가 보존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를 보존할 수 있었던 중요한 수단이 한국의 민속 설화입니다. 예룰 들어 변사또의 끈질긴 유혹에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절개로 이 도령을 기다리는 춘향전은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일편단심 사모하고 죽기까지 자신을 부인하는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고, 공양미 300석을 불공드려도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수 없자, 자신의 몸을 바다속에 던지나, 다시 살아나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한다는 심청전 역시 십자가의 도가 약속하는 위대한 부활의 승리를 가르칩니다. 즉 고대 한국 기독교는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고 충성하는 십자가의 도를 강조하였고, 바로 화랑도의 핵심이 이같은 십자가의 도였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십자가의 도로 무장한 화랑도가 부활하여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는 아름다운 주의 청년들이 구름같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신라의 화랑제도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김성일 장로님은,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 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국의 역사가운데서 가장 놀라운 것은 젊은이들이 역사의 중심에 서서 때로는 목숨을 바치며 헌신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신라의 화랑(花郞)으로 대표되는 엘리트 집단이다.” 삼국 사기는 화랑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름다운 남자들을 뽑아서 곱게 단장하고 화랑이라 이름하고 이를 받들게 하였는데 그 무리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구름같이 모여든 아름다운 청년들, 함께 모여 도를 닦으며 일체의 보상을 거절하고 목숨을 다하여 나라를 섬긴 이 젊은이들이 과연 누구일까요? 그야말로 아침 이슬같은 주의 청년들이 그 옛날, 한국 땅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화랑의 정체에 대하여, 우리는 그들의 머리에 꽂아주었다는 무궁화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궁화의 기원은 매우 신비합니다. 무궁화의 원산지는 시리아이며, 영어로는 샤론의 장미로 불리웁니다. 아가서에서 샤론의 수선화로 묘사된 무궁화는 바로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그래서, “샤론의 꽃, 예수“를 노래하는 찬송도 있습니다. 한국인은 어찌된 셈인지, 고대부터 샤론의 꽃 무궁화를 사랑하여 우리 나라를 무궁화 동산이라 칭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샤론의 꽃, 무궁화를 화랑의 머리에 꽂아주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렇게 볼 때, 고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청년문화를 주도한 정신적 이상이 바로 기독교에 뿌리하였다는 주장은 매우 타당합니다. 가야문화 연구소의 김도윤 소장은 인도 아유타 공화국의 공주 ‘허황옥’ 이 가야국에 기독교의 복음을 들고 AD 48년 가야국에 상륙하면서 기독교가 처음으로 조선 땅에 전래되어 가야와 신라가 모두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는 수많은 증거를 제시하여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다 불승 이차돈의 설득에 넘어가 신라 법흥왕이 대신들의 반대를 꺾고 불교를 공인했는데, 그 후 신라가 가야를 정복하면서 불교의 세력이 한반도를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지난 1986년 경북 영풍군 평온면에 있는 분처바위에서 야소화왕(耶蘇花王) 이라는 음각 명분이 발견되었는데, 물론 야소는 예수의 한자 표기이고, ‘야소화왕’은 화왕이 예수임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볼 때, 화랑이란 화왕의 영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의미하며 고대의 화랑제도는 그리스도의 제자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지요. 김 성일 장로님은 고대 문헌들의 신빙성 있는 자료들을 제시하며 화랑들이 산수를 찾아다니며 풍류를 즐겼다는 기록은 청년들이 제자훈련을 통하여 성령세례를 받았음을 의미하며, 성령으로 거듭난 청년들에게 무궁화를 꽂아주었고, 그들에게 십자가의 도에 의거한 순교정신까지 가르쳤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근거있는 이야기입니다.
비록 한국 기독교는 불교 세력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꺾이운 것 같았으나, 그 영성의 뿌리가 보존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를 보존할 수 있었던 중요한 수단이 한국의 민속 설화입니다. 예룰 들어 변사또의 끈질긴 유혹에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절개로 이 도령을 기다리는 춘향전은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일편단심 사모하고 죽기까지 자신을 부인하는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고, 공양미 300석을 불공드려도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수 없자, 자신의 몸을 바다속에 던지나, 다시 살아나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한다는 심청전 역시 십자가의 도가 약속하는 위대한 부활의 승리를 가르칩니다. 즉 고대 한국 기독교는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고 충성하는 십자가의 도를 강조하였고, 바로 화랑도의 핵심이 이같은 십자가의 도였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십자가의 도로 무장한 화랑도가 부활하여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는 아름다운 주의 청년들이 구름같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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