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말씀대로 경건하게 생활하려는 청교도들과 형식주의적 영국의 국교 도들 간에는 많은 신앙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왕은 국교도와는 다른 신앙 견해를 가진 청교도들을 용납하지 않았으며, 신앙적 자유를 허락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그들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네덜란드로 건너갔습니다. 11년간의 네덜란드에서의 생활은 고된 것이었으며, 올바른 신앙인으로 자녀를 교육하기란 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신대륙으로 가기 위해 7년 동안 힘들여 일해서 번 돈으로 배를 샀습니다. 이 배가 바로 그 유명한 메이플라워입니다. 그러나 이 배 역시 180톤의 작은 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열정에 불타는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인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먹을 물과 양식이 부족한 가운데 행해진 65일간의 항해가 험난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꿈에 부풀게 했던 신대륙에서의 생활도 생각처럼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도착한 때는 겨울이었기에 그들은 심한 식량난과 추위, 그리고 기후 차와 영양실조의 원인으로 인하여 첫해 겨울에 102명 가운데 44명이나 죽었으며 그 나머지도 질병에 시달렸고, 또한 일손 부족으로 인해 심한 격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때에 심한 고통 속에 있었던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은 마음 좋은 인디언들이었습니다. 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청교도들에게 옥수수 등의 곡물을 가져다주었고, 농사짓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들의 도움으로 인해 1621년 청교도들은 풍성한 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청교도들은 친절한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칠면조 고기을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의 첫 추수 감사절을 가졌습니다. 그 후 1623년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추수 감사절을 공식 절기로 선포하였으며, 1789년에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이를 전국적으로 지킬 것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3대 대통령인 토마스 제퍼슨은 추수 감사절이 왕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기념행사를 중단하였습니다. 폐지되었던 감사절이 다시 시작한 것은 1863년 링컨 대통령이 추수 감사절을 축제일로 선포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이는 사라 요세파 헤일 여사의 “추수 감사절은 미국의 건립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졌음으로 연례적인 절기로 지켜져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결과였습니다. 그래서 남북 전쟁 중 감사절 동안은 전쟁이 중지되기도 했습니다.

추수 감사절의 근본 목적은 한 해 동안 살펴 주시고 축복의 수확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뜻으로 예물을 드리는데 있습니다. 1621년 온갖 어려움 속에도 신대륙에서의 첫수 확을 거두게 된 청교도들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도움을 준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물을 나누어 먹으며 즐거워했습니다. 이러한 풍습이 오늘까지 이어져 감사절에 새 곡물로 만든 음식과 관련된 음식을 이웃과 나누어 먹습니다. 이에 잘 알려진 풍습으로 칠면조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또한 이날 식탁에 5개의 옥수수를 올려놓는 것은 청교도들이 식량난으로 고생할 때 한 사람의 하루 식량으로 배당되었던 옥수수 5개를 의미합니다. 이에 각 가정의 부모는 첫 감사절이 지켜지기까지 고생했던 선조들의 수고를 설명해 주며 자녀들과 함께 그 옥수수를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