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이 많이 읽은 책 가운데, 데일 카네기가 쓴 <어떻게 친구를 만들고 상대를 설득할 것인가?(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가 있습니다. 이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이유는 사람들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좋아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을 좋아할까요? 온유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영화에서는 람보같은 액션 스타를 좋아할지 몰라도, 실제 생활에서 그런 사람과 살기란 힘들지 않겠습니까? 이해심이 많고, 소박하며, 친절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 곁에 있고 싶은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온유하시고 겸손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 곁에서 늘 교제를 나누었던 베드로도 어느날 자기 자신을 돌아보니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있었습니다. 다혈질이었던 그가 그렇게 변화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늘 살아계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4절에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온유하다는 말은 힘이 있지만 아무데서나 사용하지 않고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왕궁에서 살던 모세는 혈기가 넘쳐서 한 주먹에 사람을 죽일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서 온유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서 그는 이런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우리는 식당에서 종업원을 대할 때에도, 공항에서 구두를 닦을 때에도, 심지어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만날 때에도 온유함과 친절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세상에서 작게 취급되는 그 사람을 자기자신과 동일시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마25:40)이라고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살아도 평안이 없다면 그것은 내가 온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태도가 온유함으로 나타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는 절제로 나타납니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25:28)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상대가 바로 나 자신 아니겠습니까? 알렉산더 대왕이 술에 취해 자기 충복이자 친구를 칼로 죽였습니다. 그는 술에서 깨어나 “나는 세상은 정복했지만 나 자신은 정복하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절제는 중요한 일을 먼저 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우리의 욕심은 채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절제해야 할 대상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절제의 열매를 맺습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를 참고 조절하는 사람은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사과나무도 감나무도 예쁜 빛깔로 맛있는 열매를 맺는 이 가을에, 우리는 주님을 닮아 온유하고 절제하는 미덕을 맺어야 하겠습니다.

이기범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