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살다 보면 한국에 대한 동경이 많아진다. 그것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국내뉴스를 즐겨 보는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한국말 뉴스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기사 1면에는한국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로 장식되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기사는 정치인들의 말장난이다. 그것들이 아무 소득 없는 뉴스거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늘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러한 뉴스를 접하면서 생각하는 것은 왜 한국 신문은 대형 사건이 아니면 국제뉴스는 취급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싱가포르 신문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국내 일이라면 조그마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말 한마디에 뜻을 찾아내느라 온 신문을 도배한다. 하지만 국제문제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하다. 국제는 지구촌이고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구성 요원인데,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을까 의아해 하게 된다. 우리는 적응능력도 길러야 하고 많은 정보를 통해 경제 전략을 세워야 하는데 쓸데없는 기사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정치 쇼를 보노라면 우리끼리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모습이 우물 안 개구리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한국 교회는 지난 1990년대 들어 세계적인 대회들을 몇 번 치렀다. 1990년에 아시아 선교대회(AMC)와 1995년에 GCOWE라는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한국 교회의 위상도 많이 올라갔다. 그런게 한 가지 씁쓸한 것은 손님들을 대접만 하고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성도들이 동원되어 외국인들을 대접하는 모습이 아름답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선교사들을 그렇게 많이 파송하고도 우리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고, 한국 교회는 할 말이 많이 있는데도 기회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많은 참가자들은 한국 교회에 대해 소개해 주기를 기대했지만 우리는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채널을 찾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주로 선교사역과 관계없는 사람들, 선교에 대해 말만 하지 선교사 한 명 제대로 파송하지 못한 국가의 지도자들임을 알게 될 때 우리에게 분발이 있어야 함을 암시하는 대회들이었다.

우리는 언어도 문제지만 국제적 감각이 무뎌 있다는 것이 더욱 문제이다. 이것은 국제대회에 대한 무관심, 익숙하지 못한 우리의 매너 때문일 것이다. 국제대회를 종종 가보면 한국 참석자들의 자리는 늘 텅 비어 있다. 교회에는 회의에 참석한다고 기도를 요청하고도 회의에 참석해야 할 대표들은 관광을 떠나는 모습이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 우리로 하여금 국제적으로 외톨이가 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한국 교회가 국제적 감각을 가진 인재를 보유하지 못한 이유 중 또 한 가지는 목회자들이 틀에 박힌 목회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지나친 상호간의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 개교회 발전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적 교회의 한 멤버로서의 사명을 깨닫지 못했고, 그 결과로 이 분야에서 발전을 시키지 못했다고 본다. 이제 한국 교회는 개교회주의에서 대담하게 떨쳐 나와야 한다. 주님이 머리가 되시는 우주적 교회를 섬길 준비를 해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신학교의 커리큘럼도 문제이다. 평양신학교에서 시작한 신학 교육의 패턴은 신학 중심, 교리 중심이었다. 그 전통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신학교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그동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생각이 달라졌고, 문화가 달라졌고, 국제관계가 달라졌고, 가치관이 달라진 지금의 신학생들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말씀을 들을 청중과 그 사회 환경에 대한 연구가 아주 빈약하다. 국제적 감각을 가진 사역자가 나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