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43주년을 맞이한 개혁교회의 담임으로 김인환 목사가 지난 10월 10일 위임받았다. 이미 부임해서 목회를 시작한지는 1년 반이 넘었지만 교회가 속한 북미개혁장로회(CRC)의 목회자 이명과 시취를 위한 절차를 밟는데 1년이 소요됐기에 위임식이 늦어졌다.
개혁교회는 이명재 목사가 개척한 이후, 1970,80년대 시카고의 한인 인구가 2만명 밖에 안되던 때에 성도 2백명을 넘어설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던 교회지만 20년간 목회한 이 목사 은퇴 후,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규모가 크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후임자 청빙 문제였다. 김인환 목사 직전의 담임은 부임 10개월만에 교회를 떠나기도 했다.
김 목사의 위임식은 개혁교회가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위임식에 앞서 1년 반동안 담임으로서 성실하고 안정적으로 목회하며 성도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았기에 이번 위임식은 개혁교회 43년에 새로운 한 획을 긋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명재 원로 목사는 “교회를 개척하던 당시 1명의 훌륭한 전도자를 달라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수많은 성도를 허락하셔서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 오늘 나의 기도 제목은 김 목사를 통해 이 교회가 부흥하고 많은 이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게 해 달라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정식 장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과분한 분을 보내 주신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은 김 목사의 신학교 선배인 전성철 목사(여수룬교회), 명병헌 목사(스코키한인교회)가 각각 기도와 축사를 맡았고 설교는 같은 교단 소속의 롬바드개혁교회를 섬기는 John Huizinga 목사가 맡았다.
김 목사는 영남대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했으며 이 기간동안 한국 고신총회 소속 청년선교단체인 SFC에서 활동했다. 목회의 소명을 받은 후, 한국 고려신학대학원에서 M.Div., 고든콘웰신학교에서 구약학으로 Th.M., 리폼드신학교에서 선교학(Intercultural Studies)으로 Ph.D. 학위를 받았다.
다음은 김 목사와의 짧은 인터뷰.
-개혁교회에 부임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을 보내셨습니다. 어려움을 겪던 교회인만큼 목사님의 목회도 쉽지 않으셨을 법합니다만.
교회가 겪었던 아픔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교회가 내리막길을 걷는 동안 더 큰 꿈을 꾸게 됐고 가난해지니 마음이 겸손해졌습니다. 제가 부임했을 때, 장로님들과 성도님들이 다 저를 적극 지지해 주시고 제 목회 방침에 전적인 신뢰를 보내 주셨습니다. 위기가 기회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개혁교회에서 목회한 지난 1년 반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어려움을 겪는 많은 교회들엔 분명 어떤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교회들이 가진 문제이지 어느 특정 교회만이 가진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요. 제가 보고 느낀 개혁교회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좋은 점을 더 많이 가진 교회이며 양과 질적인 면에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많이 갖고 있는 교회입니다.
-지난 1년 반동안 개혁교회가 새롭게 시작한 일이라면 학사관과 난타 공연 등이 특히 눈에 띠었던 것 같습니다.
학사관은 한국에서 미국 유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섬기는 사역입니다. 현재 남학생 3명과 여학생 3명이 우리 학사관을 통해 시카고에 유학와 영어 공부를 하고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학업을 돕는 일뿐 아니라 이들이 크리스천 리더로 성장해 가도록 돕는 일이 저희의 몫입니다. 이들은 크리스천라이프칼리지의 기숙사에서 미국 학생들과 함께 머물면서 미국 생활을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임하던 당시 교회에는 청년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학사관을 통해서 신앙적이고 열정적인 청년들이 교회에 나타나게 됐고 교회에 큰 활력이 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이 없던 상황에서 제가 학사관의 비전을 나누었을 때 장로님들부터 모두 찬성하셔서 함께 모험을 감당하셨습니다.
난타의 경우는 전도를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청년들과 회의하며 “어떻게 하면 전도를 할 수 있을까” 물었더니 “난타를 해 보자”는 데 뜻이 모아졌습니다. 다 함께 길거리에 나가서 북을 두드리며 요한복음 3장16절도 외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올해 할렐루야대회에서 우리 교회가 공연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지요.
-난타로 노방 전도가 잘 되던가요?
한인 마트 앞에서 그냥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이 재미있게 듣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효과가 어느 정도 입증된 셈입니다.
-Ph.D.를 선교학으로 하셨는데 목회에 어떤 도움이 되던가요?
학교에서 배운 것 자체도 도움이 되겠지만 이 학문이 타문화, 다민족에 관해 고민하는 학문인만큼 미국 사회 속의 이민목회를 하는 데에 이민교회가 가진 타문화성, 세대간 차이 등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원래 구약학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목회를 하려 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이민목회로 강하게 인도하시는 것을 느끼고 이민목회를 위해 무엇을 공부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선교학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2세 사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우리 교회에 2세 사역이 없기에 제가 감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2세 사역은 2세 목회자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유학생 출신 목회자이기에, 한국에서 유학온 유학생, 그들의 가족, 갓 이민와서 정착하려는 1세들을 위한 목회를 더 잘 할 수 있겠지요. 과거에 비해 이민 오는 수가 줄어 든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도 자신의 학업, 자녀 교육을 위해 많은 사람이 시카고로 오고 있습니다. 과거의 이민교회는 공항에서부터 정착까지 돕는 사역을 참 잘 해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민 역사가 오래되면서 새로 오는 이민자들을 돌보는 사역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어권 청소년, 한어권 어린이 사역이 영어권에 비해 약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개혁교회는 이들을 섬세하게 돌보는 사역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개혁교회는 던디와 엘름허스트가 만나는 850 Jenkins Ct Wheeling, IL 60090에 위치해 있다. 주일예배는 오전 10시 45분이다. 문의) 847-808-8202
개혁교회는 이명재 목사가 개척한 이후, 1970,80년대 시카고의 한인 인구가 2만명 밖에 안되던 때에 성도 2백명을 넘어설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던 교회지만 20년간 목회한 이 목사 은퇴 후,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규모가 크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후임자 청빙 문제였다. 김인환 목사 직전의 담임은 부임 10개월만에 교회를 떠나기도 했다.
김 목사의 위임식은 개혁교회가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위임식에 앞서 1년 반동안 담임으로서 성실하고 안정적으로 목회하며 성도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았기에 이번 위임식은 개혁교회 43년에 새로운 한 획을 긋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명재 원로 목사는 “교회를 개척하던 당시 1명의 훌륭한 전도자를 달라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수많은 성도를 허락하셔서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 오늘 나의 기도 제목은 김 목사를 통해 이 교회가 부흥하고 많은 이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게 해 달라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정식 장로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과분한 분을 보내 주신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날은 김 목사의 신학교 선배인 전성철 목사(여수룬교회), 명병헌 목사(스코키한인교회)가 각각 기도와 축사를 맡았고 설교는 같은 교단 소속의 롬바드개혁교회를 섬기는 John Huizinga 목사가 맡았다.
김 목사는 영남대에서 영어영문학을 공부했으며 이 기간동안 한국 고신총회 소속 청년선교단체인 SFC에서 활동했다. 목회의 소명을 받은 후, 한국 고려신학대학원에서 M.Div., 고든콘웰신학교에서 구약학으로 Th.M., 리폼드신학교에서 선교학(Intercultural Studies)으로 Ph.D. 학위를 받았다.
▲김인환 목사 |
-개혁교회에 부임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을 보내셨습니다. 어려움을 겪던 교회인만큼 목사님의 목회도 쉽지 않으셨을 법합니다만.
교회가 겪었던 아픔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교회가 내리막길을 걷는 동안 더 큰 꿈을 꾸게 됐고 가난해지니 마음이 겸손해졌습니다. 제가 부임했을 때, 장로님들과 성도님들이 다 저를 적극 지지해 주시고 제 목회 방침에 전적인 신뢰를 보내 주셨습니다. 위기가 기회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개혁교회에서 목회한 지난 1년 반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어려움을 겪는 많은 교회들엔 분명 어떤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교회들이 가진 문제이지 어느 특정 교회만이 가진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요. 제가 보고 느낀 개혁교회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지만 좋은 점을 더 많이 가진 교회이며 양과 질적인 면에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많이 갖고 있는 교회입니다.
-지난 1년 반동안 개혁교회가 새롭게 시작한 일이라면 학사관과 난타 공연 등이 특히 눈에 띠었던 것 같습니다.
학사관은 한국에서 미국 유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섬기는 사역입니다. 현재 남학생 3명과 여학생 3명이 우리 학사관을 통해 시카고에 유학와 영어 공부를 하고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학업을 돕는 일뿐 아니라 이들이 크리스천 리더로 성장해 가도록 돕는 일이 저희의 몫입니다. 이들은 크리스천라이프칼리지의 기숙사에서 미국 학생들과 함께 머물면서 미국 생활을 체험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부임하던 당시 교회에는 청년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학사관을 통해서 신앙적이고 열정적인 청년들이 교회에 나타나게 됐고 교회에 큰 활력이 되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이 없던 상황에서 제가 학사관의 비전을 나누었을 때 장로님들부터 모두 찬성하셔서 함께 모험을 감당하셨습니다.
난타의 경우는 전도를 위한 수단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청년들과 회의하며 “어떻게 하면 전도를 할 수 있을까” 물었더니 “난타를 해 보자”는 데 뜻이 모아졌습니다. 다 함께 길거리에 나가서 북을 두드리며 요한복음 3장16절도 외치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올해 할렐루야대회에서 우리 교회가 공연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지요.
-난타로 노방 전도가 잘 되던가요?
한인 마트 앞에서 그냥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이 재미있게 듣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효과가 어느 정도 입증된 셈입니다.
-Ph.D.를 선교학으로 하셨는데 목회에 어떤 도움이 되던가요?
학교에서 배운 것 자체도 도움이 되겠지만 이 학문이 타문화, 다민족에 관해 고민하는 학문인만큼 미국 사회 속의 이민목회를 하는 데에 이민교회가 가진 타문화성, 세대간 차이 등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원래 구약학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목회를 하려 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이민목회로 강하게 인도하시는 것을 느끼고 이민목회를 위해 무엇을 공부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선교학을 선택하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2세 사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우리 교회에 2세 사역이 없기에 제가 감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2세 사역은 2세 목회자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유학생 출신 목회자이기에, 한국에서 유학온 유학생, 그들의 가족, 갓 이민와서 정착하려는 1세들을 위한 목회를 더 잘 할 수 있겠지요. 과거에 비해 이민 오는 수가 줄어 든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도 자신의 학업, 자녀 교육을 위해 많은 사람이 시카고로 오고 있습니다. 과거의 이민교회는 공항에서부터 정착까지 돕는 사역을 참 잘 해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이민 역사가 오래되면서 새로 오는 이민자들을 돌보는 사역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어권 청소년, 한어권 어린이 사역이 영어권에 비해 약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개혁교회는 이들을 섬세하게 돌보는 사역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개혁교회는 던디와 엘름허스트가 만나는 850 Jenkins Ct Wheeling, IL 60090에 위치해 있다. 주일예배는 오전 10시 45분이다. 문의) 847-808-8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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