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목적은 신성(개성)을 밖으로 표출하는 데 있다. 교육사상가이며 보헤미아 형제교단 목사였던 코메니우스(John Amos Comenius, 1592~1670)는 인간 본성을 신성으로 보고 이 본성에 흠이 가지 않도록 연령에 적합한 내용과 방법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 신은 전능하시므로 어린이 안에 전능한 신이 깃들어 있음은 무한한 잠재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말이다. 현재 무능해 보여도 아직 밖으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면 발현된다는 것이다.

‘교육’의 어원은 ‘Educare’, 즉 ‘밖으로(E)-낳는다(Ducare)’는 뜻이므로 교사(부모)가 늘 해야 할 말은 ‘너는 할 수 있어!’다. 이것이 정답이다. 어린이 안에 신성, 무한한 잠재력, 하나님이 내재하는 데 무엇을 못하겠는가?

세계 최초의 유치원 창시자로, 목사 아들인 프뢰벨(Friedrich Wilhelm August Froebel, 1782~1852)도 어린이는 고유한 개성을 갖고 태어나서 마치 식물의 씨앗과 같다고 했다. 씨앗은 속에 자라날 미래의 모든 것이 내재되어 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개성)를 존중하고 그것이 발현될 수 있는 세계를 부모는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는 않다. 세상에서 인기 직종에 종사하기를 원하는 것이 부모들의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모가 자녀의 행복을 그르친 사례를 많이 보았다. 그 분야에서 성공하더라도 개인의 만족감이 없기에 불행하게 된다. 어느 고위관리는 부모 뜻에 따라 대학에 진학해 고시를 보아 관리가 됐지만 본인의 희망은 음악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는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달고 바다 깊은 곳에 빠지는 것이 그에게 더 나으리라(마18:6)’고 하신 예수님의 경고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이스라엘 교육은 아동의 능력과 발달 단계를 고려해 그들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최대한 어려서부터 개발하도록 한다.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는 창의성 발달, 친구 사귀기 등 인성교육에 관심이 깊다. 신은 누구에게나 고유 달란트를 주셨는데, 이 달란트는 모두 동일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생명도 헛되이 이 땅에 보내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기에 같은 형제라도 다르게 키우려 하며 학교도 이들의 개성을 찾아주려 힘쓴다. 그래서 이스라엘 부모들은 다른 집을 방문할 때 형제를 함께 데려가지 않는 전통이 있다. 각기 다른 경험을 시켜서 개성 있는 아이로 자라게 하기 위해서다.

둘째,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교사(부모)의 행동이다. 어린이들은 본보기와 모방을 통해 배운다. 부모들 소망은 유형, 무형의 유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려고 하지만 무형의 유산인 신앙이나 의식을 전하기는 쉽지 않다. 부모는 신앙이 좋은데 자녀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흔한데 부모의 좋은 신앙을 자녀는 왜 모방해서 배우지 않는 것일까?

교육은 상호교류의 만남이 전제돼야 하므로 어린이가 본보기를 보일 때 부모(교사)도 모방을 해서 배워야 하는데, 어른들은 어린이에게 모방하라면서 어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가장 의미 있는 교육 명언은 발도르프 교육학의 개척자인 루돌프 슈타이너가 말한 ‘교육이란 언제나 교육자 자신이 어린이에게서 배울 때에야 참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어린이들은 어른들보다 순수해 어른들에게 믿음의 본보기를 보일 때가 많은데 어른들이 신앙적 각성을 하지 않고 무시하기 쉽다. 예수님도 ‘너희가 회심하여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고 하셨다. 부모들은 자녀와 믿음의 교류, 대화를 꾸준히 하기를 권한다.

셋째, 교육은 어린 시기부터 해야 한다. 갓 태어난 생명체는 잘 휘어져서 형체를 만들 수 있으나 그것이 굳어지면 변화시키기 어려운 것이 자연법칙이다. 묘목도 심고 구부러뜨릴 수가 있으나 한 나무로 성장하면 이런 과정은 불가능하다. 코메니우스는 마음의 순수성을 잃기 전에 일찍 학습이 시작돼야 한다고 했다.

현대 발달심리학 연구들은 아동기는 모든 발달의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라는 증거를 밝히고 있다. 대표적 연구는 1973년에 노벨상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로렌즈(Konrad Lorenz)의 다음 연구다. 그는 오리새끼가 알에서 깨어나자 움직이는 물체로 사람인 자신만을 보여 주었다. 오리는 그를 발견하자 곧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에게 정을 붙이고 의지하기 시작한 후에 실제 어미가 나타나도 본체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을 따라 다니려는 경향을 보였다. 이것은 첫번째 본 것에 대한 ‘각인(imprinting)’ 현상 때문이다.

모세가 이집트 공주의 아들로서 이집트 교육을 받았지만 모세 누이인 미리암이 공주에게 유모로 모세의 생모를 소개하는 지혜를 발휘해 모세는 영아기에 모친 무릎에서 유대인 민족교육을 받았다(출2:7~8). 이처럼 유대인은 가정교육을 중요시한다. 2500년 동안 흩어져 살았지만 어머니가 하는 교육을 중시해 유대정신을 계승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하려면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된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버지가 유대인이 아니어도 국적을 취득할 수 있어 현재는 다양한 인종의 모습을 보인다.

유대인은 전세계의 인구의 0.38%에 불과하지만 노벨상의 28%를 수상했다. 이 민족이 인류에 끼친 공은 지대하니 이들이 없었다면 현대 문명이 있을 수 없다. 아인슈타인(상대성이론), 로버트 브라운(로켓추진 개발), 프로이트(정신분석), 존 듀이(교육철학), 멘델스존, 슈베르트, 루빈스타인(음악가), 키신저(정치인), 스필버그(영화감독) 등 수없이 많다. 미국 대학교수의 30%가 유대인이고 수많은 거부(巨富)가 유대인이다.

이런 힘이 어디서 나왔는가? 그것은 어린 시기부터 어머니 무릎에서 실시하는 교육의 힘 때문이다. 교재는 탈무드로 이것이 교육의 지혜를 주는 원천이다. 탈무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에게서 항상 배우는 사람이다’, ‘학습은 즐겁다는 것부터 가르친다’라든가 글자를 꿀로 찍어서 손바닥에 써주었다는 내용 등 수많은 지혜를 담고 있고 이 내용을 이들은 실천하고 있다.

넷째, 이상적 교육환경은 조용한 리듬과 자연이 있는 시골 같은 곳이다. 성공한 인물들은 시골 출신이 많다. 시골 환경이 좋은 영향을 준 때문이니 자연경관의 아름다움만 아니라 시골 사람들과 농어촌의 삶을 통해 삶의 적응력을 배우고 서로 협력하려는 태도를 자극한다. 어린이가 이러한 경험들을 소화, 흡수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어린이에게 산책, 자연체험, 농촌체험 등을 하는 경우에 ‘오늘 무엇을 봤니?’처럼 어린이의 경험을 종합 정리하려는 시도는 하지 말라. 이는 오히려 어린이의 인상을 무디게 한다. 어린이는 이러한 복습과정이 미칠 수 없는 더 많은 것들을 보다 자세히 관찰했기 때문에 스스로 많은 것을 관찰하도록 맡겨 두는 것이 좋다.

가령 한 남자가 정원에서 화단을 고치는 모습을 어린이들이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뭔가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이내 떠나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묻는다. 어떻게 교육하면 좋은가요?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을 성공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간단히 대답하기가 힘들다. 나는 교육학 이론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 나에게 맡겨서 참된 기쁨과 행복, 기대, 희망을 계속 주고 있는 자녀들을 주심에 진정으로 감사합니다. 이들을 양육할 수 있는 기회를 나에게 주신 좋으신 하나님, 나는 조금의 지식이 있을 뿐 문제의 순간마다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어찌할 바를 모르오니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분별력과 지혜를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많이 하고 있음을 답으로 대신한다.

출처: 새문안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