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되고 싶든, 뭘 하고 싶든지 그런 꿈이 있어야 만들어 갈 미래가 생긴다. 꿈이 없으면 계획도 할 수 없고 목적도 목표도 전략도 나올 수 없다. 꿈이 없는 사람은 환경을 탓하며 불평꾼이 되거나 그나마 성격좋으면 순응하며 수동적으로 살다 갈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양면성이 있다. 한 사람의 일생보다 크고 긴 하나님의 계획과 개인적인 꿈이 그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다. 이것을 안다면 하나님의 계획을 나의 꿈으로 만들어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면 내 꿈을 위해 살아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될 것이다.

요셉의 인생을 예로 들어보면, 하나님은 요셉이 태어나기 수백년 전에 요셉의 인생을 포함하는 그런 계획을 세우셨다. 요셉의 증조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 요셉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애굽으로 내려간 첫 사람이었다.

꿈이라는 게 보통은 허망한 것인데, 드물긴 하지만 앞으로 될 일을 미리 보여주는 신령한 꿈도 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요셉에게 앞일을 미리 보여주셨다. 요셉이 꿈을 꿀 당시에 그 의미를 다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애굽에 팔려가 삶 속에 전개되는 일들을 보면서 전날의 꿈이 뭘 의미하는지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어도 인생이 항상 잘풀리는 것만은 아니다. 오해도 받고 누명도 쓰고 사기도 당하고 그런게 인생이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 앞에 성실하면 인정받고 길이 열린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시기를 살고 있는지 의식해야 한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다”(전3:1). 나라도 일어설 때가 있고 쇠할 때가 있다. 개인도 고난 받을 때가 있고 영광을 취할 때가 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고난받을 때인지 영광을 취할 때인지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청년이든 장년이든 방황하는 사람들은 꿈이 없기 때문이다. 남의 일에 간섭하며 말을 만드는 사람은 대개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하게 행동한다”(잠언29:18). ‘꿈이 없으면 되는대로 산다’는 뜻이다. 계획이 없으니 기분대로 행동하게 된다. 꿈과 목표가 방황을 멈추게 만든다.

꿈을 갖자. 아니 꿈이 생겨나도록 기도하자. 요엘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고 말했다. 여기서 예언, 환상, 꿈 모두 미래의 삶과 관련되어 있다.

인생의 가치와 크기는 마음 속으로 꿈을 꿀 때 결정된다. 어떤 꿈이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와 크기가 달라진다. 어떤 인생이 예비되어 있는지 누가 아는가? 영광이 기다릴지, 고난이 기다릴지 알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자기 인생의 꿈으로 만들어 사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다. 예수님도 바울도 그렇게 살다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