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8월 워싱턴 DC 내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북송 중지를 촉구하며 무기한 단식투쟁에 들어갔던 탈북자 조진혜씨. 조씨는 10살 때 중국으로 탈북했다 가족을 잃었지만 윤요한 목사의 도움으로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2008년 3월 시애틀로 망명했으며, 지난해 워싱턴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지역에 온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매일 12시간씩 일을 했지만 가까스로 현상유지만 될 뿐 나아질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지난 주처럼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사람들을 만나 모욕을 당하면 한없이 좌절하기 쉽다.
“지난 3주간은 악몽 같았습니다. 그 일 때문에 어제 어머니는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너무 충격을 받아 몸이 말이 아니십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도 맘고생이 심했고 학교도 3일째 못가고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을 떠돌며 할머니와 아버지, 남동생 둘을 배고픔으로 잃고 네 번이나 강제 북송을 당하는 등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었지만 조 씨는 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모녀가 거처할 곳을 찾다 마침 비엔나에 적당한 방이 있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한 게 3주 전. 50대 미국인(흑인)이 혼자 살고 있는 집이었다. 한 달 방세는 무려, 월 1,200달러를 조건으로 계약을 하고 우선 800달러를 디파짓했다. 조씨 가족을 돌봐주던 메릴랜드 소재 한인 교회가 건물을 이사하는 바람에 쉘터로 사용했던 집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간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은 샤워는 밤에는 못한다, 전등불은 이것만 쓰라는 등 갖은 간섭과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만일 말을 안들으면 너희 가족이 다시 추방되도록 하겠다. 추방되면 너희는 또 북송이다” 라며 잔인한 협박도 서슴치 않았다. 학교에 다니는 동생과 하루 12시간씩 일을 해야 하는 조씨가 집을 비운 사이에 건물주의 간섭을 고스란히 받아야했던 사람은 주로 영어가 서툰 어머니였기에 어머니의 고충은 더 심했다. 조씨 가족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 주인은 결국 조씨 가족을 나가라고 명령했고 이들은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렸다.
너무 화가 나 경찰을 불렀지만 경찰 앞에서도 그 주인은 막무가내였다. 경찰도 조씨 가족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법적으로 건물주를 제재할 방법은 없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건물주가 조씨 가족의 얼마 안되는 짐을 음식과 함께 마구 섞어 싸는 바람에 옷이며 신발이 모두 엉망이 된 것이었다.
조씨는 “미국 법을 모르고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이렇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을 줄 몰랐다”며 “어떻게든 그 사람을 고소하고 싶은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지금 조씨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장 거처할 장소를 찾는 것이다. 빨리 렌트를 다시 구하지 못하면 좁은 차 안에서 세 식구가 잠을 자야할 처지다.
조씨는 “탈북자들이 열심히 살아서 성공하는,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은데 이렇게 도움을 다시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져 참담하다”며 “그러나 절대 구차한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 앞으로 당당하게 일어서겠다”고 말했다.
거주지가 계속 바뀌는 바람에 중단된 영주권 수속도 기회가 되는 대로 다시 진행할 계획인 조씨 가족은 그들이 삶의 기반을 다시 다질 수 있도록 희망의 끈을 연결해줄 한인을 기다리고 있다.
전화 : 425-329-9393
이 지역에 온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가고 매일 12시간씩 일을 했지만 가까스로 현상유지만 될 뿐 나아질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지난 주처럼 몰상식하고 비인간적인 사람들을 만나 모욕을 당하면 한없이 좌절하기 쉽다.
“지난 3주간은 악몽 같았습니다. 그 일 때문에 어제 어머니는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너무 충격을 받아 몸이 말이 아니십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여동생도 맘고생이 심했고 학교도 3일째 못가고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을 떠돌며 할머니와 아버지, 남동생 둘을 배고픔으로 잃고 네 번이나 강제 북송을 당하는 등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었지만 조 씨는 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 모녀가 거처할 곳을 찾다 마침 비엔나에 적당한 방이 있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한 게 3주 전. 50대 미국인(흑인)이 혼자 살고 있는 집이었다. 한 달 방세는 무려, 월 1,200달러를 조건으로 계약을 하고 우선 800달러를 디파짓했다. 조씨 가족을 돌봐주던 메릴랜드 소재 한인 교회가 건물을 이사하는 바람에 쉘터로 사용했던 집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간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은 샤워는 밤에는 못한다, 전등불은 이것만 쓰라는 등 갖은 간섭과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만일 말을 안들으면 너희 가족이 다시 추방되도록 하겠다. 추방되면 너희는 또 북송이다” 라며 잔인한 협박도 서슴치 않았다. 학교에 다니는 동생과 하루 12시간씩 일을 해야 하는 조씨가 집을 비운 사이에 건물주의 간섭을 고스란히 받아야했던 사람은 주로 영어가 서툰 어머니였기에 어머니의 고충은 더 심했다. 조씨 가족이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 주인은 결국 조씨 가족을 나가라고 명령했고 이들은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렸다.
너무 화가 나 경찰을 불렀지만 경찰 앞에서도 그 주인은 막무가내였다. 경찰도 조씨 가족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법적으로 건물주를 제재할 방법은 없었다. 더 기가 막힌 일은 건물주가 조씨 가족의 얼마 안되는 짐을 음식과 함께 마구 섞어 싸는 바람에 옷이며 신발이 모두 엉망이 된 것이었다.
조씨는 “미국 법을 모르고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미국에서 이렇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을 줄 몰랐다”며 “어떻게든 그 사람을 고소하고 싶은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지금 조씨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당장 거처할 장소를 찾는 것이다. 빨리 렌트를 다시 구하지 못하면 좁은 차 안에서 세 식구가 잠을 자야할 처지다.
조씨는 “탈북자들이 열심히 살아서 성공하는,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은데 이렇게 도움을 다시 요청하는 상황이 벌어져 참담하다”며 “그러나 절대 구차한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 앞으로 당당하게 일어서겠다”고 말했다.
거주지가 계속 바뀌는 바람에 중단된 영주권 수속도 기회가 되는 대로 다시 진행할 계획인 조씨 가족은 그들이 삶의 기반을 다시 다질 수 있도록 희망의 끈을 연결해줄 한인을 기다리고 있다.
전화 : 425-329-9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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