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교회에서 관상(觀想)기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세상적 가치에 바탕을 둔 기복적 기도와 부흥회식 습관에 따라 울부짖는 기도에 사람들이 염증을 느끼며 그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조용히 내면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과의 신비적 합일을 강조하는 관상기도다.
7일 서울 송천동 반도중앙교회에서 열린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 제7회 월례 기도회 및 발표회 주제는 관상기도였다. 학술원장 김영한 박사가 관상기도에 대한 단상을 전했고 오방식 박사(장신대 교수), 신현수 박사(평택대 교수), 이주연 목사(산마루교회)가 관상기도를 분석한 글을 발표했다.
능동적 관상 아닌 수동적 관상에 초점 둬야
이날 발제자들은 관상기도의 무분별한 수용을 경계하면서 그 장점과 단점을 구별해 올바른 성경적 토대 위에서 활용할 것을 강조했다.
김영한 박사는 먼저 관상기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능동적 관상이 투사(投射), 전위(轉位), 동일시(同一視) 등 상상력을 지나치게 활용해, 이를 복음서 내용을 하나의 사건으로 경험하게 하는 방법으로 권유하는 것은 주관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박사는 능동적 관상과 수동적 관상을 구분해야 함을 역설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능동적 관상은 기도자의 상상력이 큰 역할을 하는 반면 수동적 관상은 기도자가 상상력이 아닌 주어지는 것을 보는 것에서 그친다.
김 박사는 “수동적 관상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사야, 아모스 등 구약의 선지자들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묵시를 보았다”며 “이들은 인위적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무엇을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기도 중에 말씀으로 임한 하나님의 묵시를 경험했던 것”이라고 능동적 관상보다는 수동적 관상이 더욱 성경적임을 강조했다.
김 박사는 “개혁주의 전통에 충실한 기도는 말씀에 따른 기도이며 말씀에 대한 묵상이며, 관상이란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자연스레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보는 것”이라며 “주관적으로 투사하거나 전위하거나 동일시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주관주의화 내지 신비주의화로 나가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전통은 오로지 성경이며 오로지 그리스도다. 여기에 주관적 상상력은 중요하지 않다. 관상이란 오로지 말씀을 보는 것이며, 주님을 보는 것이다. 주관적 감정을 인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오방식 박사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오 박사는 “관상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는 것에 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온전히 깨달아 아는 것으로 이것은 이 땅에선 온전히 이뤄질 수 없다”며 “완전한 관상은 천상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상기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우리의 존재와 삶이 충만해지기를 끊임없이 간구하는 기도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오 박사는 “관상기도는 자신의 제한적인 경험이나 개념 또는 이해들을 내려놓고 성령이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과정”이라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앎으로 나아가고자 오직 순수한 믿음으로만 드리는 기도”라고 관상기도에 있어 주관적 개입을 경계했다.
관상기도, 무엇이 문제인가
신현수 박사는 관상기도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오직 말씀’의 종교개혁적 전통에 충실하지 않다.-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 성령 말씀을 믿는 믿음의 결과이지 하나님과의 직접적 합일의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의 관점에 비춰볼 때, 관상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이 인위적으로 하는 어떤 행위에 바탕을 둔 신비적 체험에 의한 것이 아니다.
▲관상기도는 우리의 인격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관상기도에서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합일의 전제로 요구되는 것이 나를 철저히 비우는 것이다. 나라는 의식까지도 버리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성경이 자기 부인을 말하는 것은 죄의 행위를 버리라는 것이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지경과 같은 것이 아니다.
▲관상기도는 성경적 세계관과 거리가 멀다.-관상기도는 사물의 본질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그것을 사물의 현상과 분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은 영의 세계는 선하고 육의 세상은 악하다고 보는 영지주의적 사도의 혼합이라 말할 수 있다.
▲관상기도는 성경적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성경은 결코 어떤 기도의 방식이나 특히 그 방식을 통해 관상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치지 않는다.
마지막 발제자였던 이주연 목사 역시 관상기도의 부분별한 수용을 경계하면서 “기도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오직 믿음 가운데 영혼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이라며 “기도의 훈련법은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준비케 하는 것이다.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준비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는 마음의 자세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주의 기도가 전부라고 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독교학술원 다음달 15일 제8회 월례회 모임을 서울 연건동 학술원 연구실에서 오후 4시 가질 예정이다. 한영태 박사(서울신대)가 ‘성령의 은사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제목으로 발표하고 현요한 박사(장신대)와 장현승 박사(과천소망교회)가 논평한다.
7일 서울 송천동 반도중앙교회에서 열린 기독교학술원(원장 김영한 박사) 제7회 월례 기도회 및 발표회 주제는 관상기도였다. 학술원장 김영한 박사가 관상기도에 대한 단상을 전했고 오방식 박사(장신대 교수), 신현수 박사(평택대 교수), 이주연 목사(산마루교회)가 관상기도를 분석한 글을 발표했다.
능동적 관상 아닌 수동적 관상에 초점 둬야
이날 발제자들은 관상기도의 무분별한 수용을 경계하면서 그 장점과 단점을 구별해 올바른 성경적 토대 위에서 활용할 것을 강조했다.
김영한 박사는 먼저 관상기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그는 “능동적 관상이 투사(投射), 전위(轉位), 동일시(同一視) 등 상상력을 지나치게 활용해, 이를 복음서 내용을 하나의 사건으로 경험하게 하는 방법으로 권유하는 것은 주관주의에 빠질 위험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박사는 능동적 관상과 수동적 관상을 구분해야 함을 역설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능동적 관상은 기도자의 상상력이 큰 역할을 하는 반면 수동적 관상은 기도자가 상상력이 아닌 주어지는 것을 보는 것에서 그친다.
김 박사는 “수동적 관상은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사야, 아모스 등 구약의 선지자들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묵시를 보았다”며 “이들은 인위적으로 상상력을 동원해 무엇을 보려고 한 것이 아니라 기도 중에 말씀으로 임한 하나님의 묵시를 경험했던 것”이라고 능동적 관상보다는 수동적 관상이 더욱 성경적임을 강조했다.
김 박사는 “개혁주의 전통에 충실한 기도는 말씀에 따른 기도이며 말씀에 대한 묵상이며, 관상이란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자연스레 성령이 주시는 생각을 보는 것”이라며 “주관적으로 투사하거나 전위하거나 동일시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주관주의화 내지 신비주의화로 나가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전통은 오로지 성경이며 오로지 그리스도다. 여기에 주관적 상상력은 중요하지 않다. 관상이란 오로지 말씀을 보는 것이며, 주님을 보는 것이다. 주관적 감정을 인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오방식 박사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오 박사는 “관상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는 것에 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온전히 깨달아 아는 것으로 이것은 이 땅에선 온전히 이뤄질 수 없다”며 “완전한 관상은 천상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상기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충만하심으로 우리의 존재와 삶이 충만해지기를 끊임없이 간구하는 기도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오 박사는 “관상기도는 자신의 제한적인 경험이나 개념 또는 이해들을 내려놓고 성령이 말씀을 통해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과정”이라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앎으로 나아가고자 오직 순수한 믿음으로만 드리는 기도”라고 관상기도에 있어 주관적 개입을 경계했다.
관상기도, 무엇이 문제인가
신현수 박사는 관상기도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꼽았다.
▲‘오직 말씀’의 종교개혁적 전통에 충실하지 않다.-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성령의 인도함에 따라 성령 말씀을 믿는 믿음의 결과이지 하나님과의 직접적 합일의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의 관점에 비춰볼 때, 관상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이 인위적으로 하는 어떤 행위에 바탕을 둔 신비적 체험에 의한 것이 아니다.
▲관상기도는 우리의 인격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관상기도에서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합일의 전제로 요구되는 것이 나를 철저히 비우는 것이다. 나라는 의식까지도 버리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성경이 자기 부인을 말하는 것은 죄의 행위를 버리라는 것이지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지경과 같은 것이 아니다.
▲관상기도는 성경적 세계관과 거리가 멀다.-관상기도는 사물의 본질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그것을 사물의 현상과 분리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것은 영의 세계는 선하고 육의 세상은 악하다고 보는 영지주의적 사도의 혼합이라 말할 수 있다.
▲관상기도는 성경적 가르침과 거리가 멀다.-성경은 결코 어떤 기도의 방식이나 특히 그 방식을 통해 관상에 이를 수 있음을 가르치지 않는다.
마지막 발제자였던 이주연 목사 역시 관상기도의 부분별한 수용을 경계하면서 “기도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위적인 것이 아니다. 오직 믿음 가운데 영혼 깊은 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것”이라며 “기도의 훈련법은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을 준비케 하는 것이다. 성삼위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준비케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믿는 마음의 자세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주의 기도가 전부라고 여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독교학술원 다음달 15일 제8회 월례회 모임을 서울 연건동 학술원 연구실에서 오후 4시 가질 예정이다. 한영태 박사(서울신대)가 ‘성령의 은사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제목으로 발표하고 현요한 박사(장신대)와 장현승 박사(과천소망교회)가 논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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