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눈물, 그의 모든 걸 바쳤던 곳, 마지막 예배를 끝으로 그는 그곳을 떠났다.
고(故) 옥한흠 목사의 천국환송예배가 6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 사랑의교회 본당에서 거행됐다. 그가 개척한 사랑의교회에서의 마지막 예배였다. 예배 후 운구차가 교회를 벗어나자 그를 보내기 싫었던 성도들은 눈물로 그를 불렀다.
일터에 있어야 할 평일 오전,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를 찾았다. 밀려드는 인파로 교회 일대 교통이 잠시 마비되기도 했다. 이날 예배는 본당을 비롯해 사랑의교회 건물 10여 곳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가 요한계시록 21장 1~7절 본문, ‘영광의 개선식’을 제목으로 설교했다. 그는 “아마 천국에선 옥 목사님을 환영하는 영광의 개선식이 거행되고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꼭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오늘 이 시간은 그 개선식을 바라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간혹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홍 목사는 시종 비장했다. 고인의 빈자리를 슬퍼하면서도 남겨진 이들의 책임을 온몸으로 역설했다. 그의 비장함은 “옥 목사님은 악한 교회의 질병을 자기 몸으로 막으시다 돌아가셨다”는 말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홍 목사는 “옥 목사님께서 목회하던 시절은 한국교회의 융성기였다. 바르게 교육만 하면 한국교회가 바로 설 것이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교회가 커지고 돈이 많아지면서 교회는 한국의 근심과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됐다. 옥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이래서야 되겠나’고 늘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또 “옥 목사님께서 교회의 잘못을 바로잡고 이 치욕을 꼭 씻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그건 계란으로 바위치기다’라고 말했다”며 “그런데도 그 분은 교회갱신을 위한 협의체를 만들어 한국교회를 바라잡으려 온 힘을 기울였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한편 홍 목사는 고인이 오정현 목사를 사랑의교회 후임 목회자로 결정했을 때, 자신이 이를 반대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목사님과 오정현 목사는 너무 달라서 서로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했더니 ‘내 시대는 옥한흠처럼 해야하지만 다음 시대는 오정현 목사가 답이야’라고 하셨다”며 “융성해진 교회가 리더십이 바뀌면서 그 동력을 잃을 때가 많다. 아마 사랑의교회가 이렇게 큰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건 옥 목사님의 깊은 배려와 미래를 내다보는 눈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종 비장하던 홍 목사는, 그러나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 땅에는 아픔과 이별이 있지만 천국에는 아픔도 이별도 없다. 늘 몸이 아파 같이 있다가도 얼굴을 찡그리는 목사님을 보면 늘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객석도 따라 울었다.
끝으로 홍 목사는 “천국은 재회의 땅이다. 옥 목사님도 그곳에서 사랑했던 분들을 만났을 것”이라며 “그렇게 사모했던 손양원 목사님도, 주기철 목사님도, 성 어거스틴도 만났을 것이다. 우리도 훗날 그곳에서 사랑하는 옥 목사님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도 이어졌다. 평소 고인과 가깝게 지내던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를 비롯해 김진홍 목사(두레교회), 최홍준 목사(호산나교회) 등이 고인을 추억했다. 하용조 목사는 건강 문제로 이날 참석치 못해 오정현 목사가 그의 조사를 대독했다. 해외에서는 OM국제선교회 조지버워 총재, 새들백교회 릭워렌 목사 등이 영상으로 고인을 추모했다.
김진홍 목사는 “내가 옥 목사님보다 세 살이 어려 늘 형님이라 불렀다. 옥 목사님께서 날 친동생처럼 챙겨주셔서 큰 힘이 됐다”며 “옥 목사님이 평신도들을 깨웠다고 하지만 우리 같은 목회자들을 더 깨웠다고 생각한다. 그 분은 모든 목회자들의 기준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목사는 “남은 우리들이 그의 빈자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마음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옥 목사님은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세계교회 전체의 목사님이셨다. 그 분의 길을 우리들이 이어가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동원 목사는 모든 일에 완벽을 추구하며 늘 설교에 목숨을 걸었던 고인을 추억했다.
이 목사는 “옥 목사님의 가장 큰 흠은 흠잡을 때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 분을 고결한 완벽주의자라 불렀다”며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듣고 그 분을 찾아뵐까 했지만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신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젠 저 하늘에서 이 땅 걱정 말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랑의교회에서 드려진 천국환송예배 후 고인의 장지인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오후 3시, 하관예배가 드려졌다.
고(故) 옥한흠 목사의 천국환송예배가 6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 사랑의교회 본당에서 거행됐다. 그가 개척한 사랑의교회에서의 마지막 예배였다. 예배 후 운구차가 교회를 벗어나자 그를 보내기 싫었던 성도들은 눈물로 그를 불렀다.
일터에 있어야 할 평일 오전,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를 찾았다. 밀려드는 인파로 교회 일대 교통이 잠시 마비되기도 했다. 이날 예배는 본당을 비롯해 사랑의교회 건물 10여 곳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홍정길 목사(남서울은혜교회)가 요한계시록 21장 1~7절 본문, ‘영광의 개선식’을 제목으로 설교했다. 그는 “아마 천국에선 옥 목사님을 환영하는 영광의 개선식이 거행되고 있을 것”이라며 “우리가 꼭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오늘 이 시간은 그 개선식을 바라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간혹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지만 홍 목사는 시종 비장했다. 고인의 빈자리를 슬퍼하면서도 남겨진 이들의 책임을 온몸으로 역설했다. 그의 비장함은 “옥 목사님은 악한 교회의 질병을 자기 몸으로 막으시다 돌아가셨다”는 말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홍 목사는 “옥 목사님께서 목회하던 시절은 한국교회의 융성기였다. 바르게 교육만 하면 한국교회가 바로 설 것이라 생각했다”며 “그런데 교회가 커지고 돈이 많아지면서 교회는 한국의 근심과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됐다. 옥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이래서야 되겠나’고 늘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 설교하고 있는 홍정길 목사 ⓒ 김진영 기자 |
한편 홍 목사는 고인이 오정현 목사를 사랑의교회 후임 목회자로 결정했을 때, 자신이 이를 반대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목사님과 오정현 목사는 너무 달라서 서로 혼란을 겪을 수 있다고 했더니 ‘내 시대는 옥한흠처럼 해야하지만 다음 시대는 오정현 목사가 답이야’라고 하셨다”며 “융성해진 교회가 리더십이 바뀌면서 그 동력을 잃을 때가 많다. 아마 사랑의교회가 이렇게 큰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건 옥 목사님의 깊은 배려와 미래를 내다보는 눈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종 비장하던 홍 목사는, 그러나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 땅에는 아픔과 이별이 있지만 천국에는 아픔도 이별도 없다. 늘 몸이 아파 같이 있다가도 얼굴을 찡그리는 목사님을 보면 늘 마음이 아팠는데 이제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객석도 따라 울었다.
끝으로 홍 목사는 “천국은 재회의 땅이다. 옥 목사님도 그곳에서 사랑했던 분들을 만났을 것”이라며 “그렇게 사모했던 손양원 목사님도, 주기철 목사님도, 성 어거스틴도 만났을 것이다. 우리도 훗날 그곳에서 사랑하는 옥 목사님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사도 이어졌다. 평소 고인과 가깝게 지내던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를 비롯해 김진홍 목사(두레교회), 최홍준 목사(호산나교회) 등이 고인을 추억했다. 하용조 목사는 건강 문제로 이날 참석치 못해 오정현 목사가 그의 조사를 대독했다. 해외에서는 OM국제선교회 조지버워 총재, 새들백교회 릭워렌 목사 등이 영상으로 고인을 추모했다.
김진홍 목사는 “내가 옥 목사님보다 세 살이 어려 늘 형님이라 불렀다. 옥 목사님께서 날 친동생처럼 챙겨주셔서 큰 힘이 됐다”며 “옥 목사님이 평신도들을 깨웠다고 하지만 우리 같은 목회자들을 더 깨웠다고 생각한다. 그 분은 모든 목회자들의 기준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목사는 “남은 우리들이 그의 빈자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하는 마음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옥 목사님은 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세계교회 전체의 목사님이셨다. 그 분의 길을 우리들이 이어가길 간절히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동원 목사는 모든 일에 완벽을 추구하며 늘 설교에 목숨을 걸었던 고인을 추억했다.
이 목사는 “옥 목사님의 가장 큰 흠은 흠잡을 때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 분을 고결한 완벽주의자라 불렀다”며 “중환자실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듣고 그 분을 찾아뵐까 했지만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신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젠 저 하늘에서 이 땅 걱정 말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랑의교회에서 드려진 천국환송예배 후 고인의 장지인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서 오후 3시, 하관예배가 드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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