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9.11 테러 현장 모스크 건립안과 관련한 모호한 입장 표명으로 빈축을 사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모스크 건립안에 대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아 왔으나, 최근 건립안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반발을 의식한 듯 다시 발언의 의미를 축소하고 나와 ‘말 바꾸기’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3일(이하 현지 시각) 백악관에서 미국 내 무슬림 지도자들을 초청해 가진 이프타(라마단 기간 중 해가 진 후 하루의 단식을 마무리하는 식사) 자리에서 “미국 시민으로서, 대통령으로서 나는 이 나라에서 무슬림들이 그들의 종교를 실천할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며 “이러한 권리는 로워 맨하탄에 있는 그들의 사유지에 이 지역 법규에 따라 예배 장소이자 커뮤니티 센터를 지을 수 있는 권리도 포함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곳은 미국”이라며 “종교 자유를 위한 우리의 헌신이 흔들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사실상 건립안에 대한 지지를 표시한 것으로 현지 언론들과 외신들에 의해 일제히 보도됐다.

하지만 보수층이 즉각적으로 거세게 항의하고 나서자 하루만인 14일, 오바마 대통령은 휴가지에서 기자들을 만나 “단지 종교 자유에 대한 일반적인 입장을 이야기했던 것”이라며 “그라운드 제로 인근 모스크 건립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다”고 앞선 발언이 갖는 의미를 축소하는 발언을 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도 모스크 건립안과 관련해서는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앞선 발언으로 인한 보수층의 반발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공화당은 상원 선거위원회 의장인 존 코닌(텍사스 주) 의원은 15일 폭스 뉴스 방송에 출연,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것이었다”고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찬성과 반대 입장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기’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공화당 피커 킹(뉴욕) 하원의원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오바마 대통령이 보다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그라운드 제로 모스크 건립안과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찬반 논쟁은 미국 사회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가운데 정치적으로 쟁점화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공화당은 이 문제를 선거 쟁점으로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이며, 민주당도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고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정치적 논쟁이 뜨거워지자 미국 교계도 모스크 건립안에 대한 입장 표명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분위기다.

모스크 건립안 찬성자들이 종교 자유를 이유로 그라운드 제로에 모스크 건립을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자들은 이는 종교 자유와는 별개의 문제로서,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의 반감을 고려해 다른 곳에 짓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민 가운데는 모스크가 9.11 희생자 유가족들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 현장에 세워지는 것은 도의에 맞지 않다는 반대 여론이 보다 우세한 것으로 최근 설문조사 결과 드러났다. CNN 조사 결과 전체 국민의 70%가 모스크 건립안에 반대하고 있었으며, 정치 성향에 따라서는 공화당 지지자들의 82%, 민주당 지지자들의 54%, 무당파인 사람들의 70%가 반대 견해를 밝혔다.

모스크 건립안은 뉴욕시 의회는 물론 유적보존위원회의 승인 하에 이번 건립안을 위해 조직된 코르도바협의체(Cordoba Initiative)에 의해 추진 중이다.

코르도바협의체는 그라운드 제로에서 두 블록 가량 떨어진 파크 플레이스 45-47 건물과 부지를 사들였으며, 이 곳에 모스크를 짓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반대 여론이 강하게 일자 모스크 건립안 자체를 폐기하기보다 건립 장소를 그라운드 제로와 가깝지 않은 곳으로 이전하자는 대안도 민주당 지도부에서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