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도 예언자가 있습니까?”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하는데, 구약시대의 예언자를 생각할 때, 대답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 주변에도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예언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성경 속의 예언자들과는 상당히 달라보인다.

구약성경 속의 예언자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인기가 없었다. 사람들의 귀에 거슬리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수모와 배척을 당하다가 죽은 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예언이 성취되자 명예와 권위가 주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백성들에게 모세는 생각만큼 그렇게 절대적인 권위를 갖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제일 먼저 백성들의 반응을 걱정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킨 후에도 백성들은 전폭적으로 모세를 지지하지 않고 원망하고 비방하기 일쑤였다. 오죽하면 모세가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했을까?(민11;15)

성경에 등장하는 예언자 중에 어느 누구도 백성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절대적인 권위를 누릴 예언자는 한 사람도 없다. 말한마디로 3년 동안 비를 멈추게 만든 엘리야도 엘리트지배층으로부터는 생명의 위협을 받아야 했다. 예수님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종교지도자들은 더욱 예수님을 배척했다. 무슨 권위로 그런 행동을 하느냐고 예수님께 대들었다.

하나님이 보낸 예언자라도 사람들로부터는 그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살아있는 동안 구성원 다수가 인정하고 존경하는 그런 예언자는 없었다. 이사야도 예레미야도 권위를 인정받기 보다는 부정당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오늘날 예언자들이 누리는 권위와 존경은 오랜 세월이 흘러 그 예언이 성취된 후 후세대들로부터 얻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요즘에도 교회 주변에 예언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삼가하는 마음으로 받아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누가 예언한다고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아니다. 예언의 성취 여부를 살펴보며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진리를 말하기보다 개인의 이익에 부합하도록 앞일을 점쳐주며 사례를 받는자들은 경계해야 한다. 교회 주변에는 이런 사기꾼들이 기생하고 있다. 여기에도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 같다. 진리를 알고 진리에 따라 살려고 애쓰는 대신에 개인의 영달을 위해 앞일을 점쳐보고 싶은 유혹을 받는 교인들이 있는 한 이런 사기꾼들도 계속 나올 것이다.

어느 시대든 참 예언자는 권력자들로부터 박해와 비난을 받았다. 진실을 말하기 때문이다. 때로 진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난과 비판이 될 것이다. 정도를 벗어난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눈에 가시다. 그래서 참 예언자들은 고난과 역경과 심지어 죽음까지 불사해야 했다. 진리를 말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사람, 그들이 예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