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에는 여름에 여러 가지 일정이 잡혀서 휴가 일정을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어차피 큰 아이도 학교에서 일하게 되어 집에 없는 동안 둘째가 선교 여행을 가는 기간에 이십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 휴가 대신 부부만 둘이 단축된 휴가를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조용한 물가에 자그마한 집을 하나 빌려서 한 주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없으니까 특별한 놀이감을 준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집 앞이 물가였지만 굳이 물에 들어갈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편안하게 쉬는 시간이었습니다.

머물던 집에서 두 집 떨어진 곳에 나이 드신 백인 부부가 살고 계셨습니다. 알고 보니 은퇴하신 감리교 목사님이었습니다. 따님이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 집안이었습니다. 통성명을 하고 말을 걸자 모든 목사들이 그렇듯 끊임없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버지니아 남동부에서 한인교회를 세우는 데 조력했던 일과 한인 크리스천들과 일하면서 겪었던 재미있는 일화들도 들려 주셨습니다.

버지니아에서 목회를 하시다가 은퇴하셨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부임한 교회에서 2년을 섬긴 후 평생 4개 교회에서 목회를 하셨습니다. 마지막 교회에서는 23년 동안 목회하셨습니다. 3년 전에 은퇴하셨습니다. 은퇴하기 10년 전에 아직도 집값이 만만할 때 허름한 호숫가 집을 구입하셨습니다. 3년 전 은퇴하신 후 따로 떨어진 차고 건물을 개조해서 목공 작업실과 서재를 짓는 것으로 시작해서 3년 동안 손수 집을 말끔하게 새로 꾸몄습니다.

저도 목사이고 제 부친도 은퇴한 후 자카르타에서 작은 한인교회를 선교사로서 섬기고 있다는 말을 듣자 선배 목사로서 한 가지 해 줄 말씀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4 교회에서 목회를 했지만 자신이 교회를 떠날 때 후임 목사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떠날 수 있었던 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자랑스럽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목회 하던 교회에서도 수백 마일 떨어진 곳에서 생활하시면서 후임 목회자에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마지막 목회지에서 교인이 아닌 지역 주민들이 가난한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 서 달라고 해서 작은 구호 단체의 이사장을 맡아서 일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교인들이 하는 것도 아니고 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어서 승낙했다고 합니다. 23년을 목회하면서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도 큰 신뢰와 존경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자잘한 것을 일일이 챙겨 도와주시는 모습에서 천상 목회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지런히 집 주변을 살피면서 아침 저녁으로 물 가에 나가 즐기는 편안하고 자족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부럽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목회하는 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모습 속에서 변함없이 잠잠하고 묵묵하게 하나님께 헌신하는 모습도 불 수 있었습니다.

내 앞에 서 계시는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장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모습이 어떠냐고 반문하셨습니다. 참 좋아 보인다고 답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아직도 은퇴하신 목회자들의 전형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자녀들을 의지하지 않으면 노후가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평생을 변함없이 충성된 길을 걷다가 잠잠한 자부심을 가지고 은퇴하여 평안을 누리는 연로한 목회자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