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부산하게 돌아다니고 말썽부리기 시작한 아이를 둔 한 엄마가 아이가 물건 만지는 것을 못하게 하려고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면서 "안 돼, 안 된다니까"하고 소리친다. 그러기를 한참 하다가 엄마도 뭘 느꼈는지 이렇게 말했다. "너도 참 안됐다. 뭐든지 안 된다고만 하니, 너도 얼마나 답답하겠니? 만날 거절만 당하고……"
우리는 태어나 얼마 안 되어서부터 거절감을 경험하게 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뱃속에서부터 거부당하고 거절감을 경험한다. 어떤 이는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러잖아도 힘든데 왜 애까지 생긴 거야? 낙태를 할까?"하며 넋두리를 한다. 이때 태아는 놀라움으로 꿈틀거리며 상을 찡그리게 된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인간 상호 관계는 수용과 비수용이라는 행위로 나타난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거절감을 느낀다. 누구든지 자신의 행위가 거절당하며 먼저 기분이 나빠지고 의기소침해지거나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릴 때 거절감이나 거부당한 일이 많은 아이일수록 신체 발육이 원만치 않은 것을 자주 본다. 왜냐하면 심한 감정의 손상은 성장을 억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멀쩡한 아이가 동생을 보면 심리적 퇴행을 보이며 동생처럼 오줌도 싸고, 하지 않던 엉뚱한 아기 짓을 한다. 이때 부모가 사랑의 보살핌이나 손길을 내밀지 않고 "도대체 네가 몇 살인데 이런 짓을 하니?"라고 몰아붙이면 또 한번의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거절은 언제나 사람에게 낮은 자존감을 형성시킨다. 같은 형제라도 부모의 편견과 편애로 인해 오는 '거부의 흔적'을 지닌 아이들이 있다. 자녀들에게 거부감의 뿌리를 심어 그 쓴 뿌리가 평생 그의 인격이나 성장에 장애를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부모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거절감의 증상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충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이가 거칠어진다거나 사랑을 보이지도 않고 사랑을 받을 때 반응하지도 않는다. 또한 반항하거나 불순종하고 쉽게 화를 낸다. 둘째, 극히 작은 것에 불안해 하거나 혼자 있기를 무서워한다. 셋째, 안정감이 없고 자신감이 부족하며 항상 용납받기를 원한다.
거절감은 그대로 방치하기보다는 상처받은 부분을 치유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안에 있는 생각이나 감정에서 거절감을 키우면 그것은 눈덩이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커진다. 아무것도 아닌 사건을 자기 혼자 키우고 늘려서 오해하고 괴로워할 수 있다. 일단 상처가 난 부분은 치유가 있어야 하고, 그래서 마침내 자유하게 되는 상태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특히 아동기 때에 받은 거절감은 부모의 따뜻한 사랑으로 치유되어야 한다. 사랑 표현을 많이 해주고, 애정의 교류가 많이 있어야 한다.
내가 잘 아는 어떤 분은 부부가 다 일을 나가다보니 아이를 돌보는 일이 소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매우 거칠어지고 난폭해진 것을 발견하고는 그때부터 하루에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열 번씩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특별히 신경을 써서 책도 읽어주며 같이 있는 시간을 자주 만들어서 아이로 하여금 부모가 자기를 매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더니, 얼마 후 다시 유순해졌다고 한다.
우리는 거절감을 죽기까지 당하신 분을 알고 있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아무 죄도 없으시면서 온갖 죄를 다 짊어지셨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것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온갖 멸시와 경멸을 다 당하셨지만 거부당하는 사람의 일반적인 반응인 분노나 좌절감을 보이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셔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하시며 저들의 죄까지 용서하고 마침내 부활 승리하셨다.
거절에 대한 피해 의식은 나 혼자 당한다고 생각할 때 더 깊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보다 더 깊은 거부감을 느낀 사람을 만나면 왠지 큰 위로가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를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그리고 계속하여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님은 거절당한 자를 이해하시고 능히 도우실 수 있는 분이라는 말씀이다. 우리 자녀들을 이 주님께로 이끌어주는 것이 부모님들의 큰 사명이다.
그리고 둘째는 우리는 나를 거부한 사람을 미워한 일에 대한 회개와 함께 그들을 용서하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예수님이 날 용서하신 것처럼 사랑으로 용서하고 수용할 때 나의 마음에 치유가 일어나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 얼마 안 되어서부터 거절감을 경험하게 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뱃속에서부터 거부당하고 거절감을 경험한다. 어떤 이는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했을 때 "그러잖아도 힘든데 왜 애까지 생긴 거야? 낙태를 할까?"하며 넋두리를 한다. 이때 태아는 놀라움으로 꿈틀거리며 상을 찡그리게 된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인간 상호 관계는 수용과 비수용이라는 행위로 나타난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거절감을 느낀다. 누구든지 자신의 행위가 거절당하며 먼저 기분이 나빠지고 의기소침해지거나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이것은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마찬가지이다. 어릴 때 거절감이나 거부당한 일이 많은 아이일수록 신체 발육이 원만치 않은 것을 자주 본다. 왜냐하면 심한 감정의 손상은 성장을 억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멀쩡한 아이가 동생을 보면 심리적 퇴행을 보이며 동생처럼 오줌도 싸고, 하지 않던 엉뚱한 아기 짓을 한다. 이때 부모가 사랑의 보살핌이나 손길을 내밀지 않고 "도대체 네가 몇 살인데 이런 짓을 하니?"라고 몰아붙이면 또 한번의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거절은 언제나 사람에게 낮은 자존감을 형성시킨다. 같은 형제라도 부모의 편견과 편애로 인해 오는 '거부의 흔적'을 지닌 아이들이 있다. 자녀들에게 거부감의 뿌리를 심어 그 쓴 뿌리가 평생 그의 인격이나 성장에 장애를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부모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거절감의 증상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충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아이가 거칠어진다거나 사랑을 보이지도 않고 사랑을 받을 때 반응하지도 않는다. 또한 반항하거나 불순종하고 쉽게 화를 낸다. 둘째, 극히 작은 것에 불안해 하거나 혼자 있기를 무서워한다. 셋째, 안정감이 없고 자신감이 부족하며 항상 용납받기를 원한다.
거절감은 그대로 방치하기보다는 상처받은 부분을 치유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안에 있는 생각이나 감정에서 거절감을 키우면 그것은 눈덩이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커진다. 아무것도 아닌 사건을 자기 혼자 키우고 늘려서 오해하고 괴로워할 수 있다. 일단 상처가 난 부분은 치유가 있어야 하고, 그래서 마침내 자유하게 되는 상태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특히 아동기 때에 받은 거절감은 부모의 따뜻한 사랑으로 치유되어야 한다. 사랑 표현을 많이 해주고, 애정의 교류가 많이 있어야 한다.
내가 잘 아는 어떤 분은 부부가 다 일을 나가다보니 아이를 돌보는 일이 소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매우 거칠어지고 난폭해진 것을 발견하고는 그때부터 하루에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열 번씩 안아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특별히 신경을 써서 책도 읽어주며 같이 있는 시간을 자주 만들어서 아이로 하여금 부모가 자기를 매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더니, 얼마 후 다시 유순해졌다고 한다.
우리는 거절감을 죽기까지 당하신 분을 알고 있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아무 죄도 없으시면서 온갖 죄를 다 짊어지셨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것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 53:3)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온갖 멸시와 경멸을 다 당하셨지만 거부당하는 사람의 일반적인 반응인 분노나 좌절감을 보이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셔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하시며 저들의 죄까지 용서하고 마침내 부활 승리하셨다.
거절에 대한 피해 의식은 나 혼자 당한다고 생각할 때 더 깊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보다 더 깊은 거부감을 느낀 사람을 만나면 왠지 큰 위로가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를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그리고 계속하여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고 말씀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님은 거절당한 자를 이해하시고 능히 도우실 수 있는 분이라는 말씀이다. 우리 자녀들을 이 주님께로 이끌어주는 것이 부모님들의 큰 사명이다.
그리고 둘째는 우리는 나를 거부한 사람을 미워한 일에 대한 회개와 함께 그들을 용서하는 일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예수님이 날 용서하신 것처럼 사랑으로 용서하고 수용할 때 나의 마음에 치유가 일어나 참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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