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미국 잭슨 대통령 시절에 법률논쟁이 크게 벌어진 적이 있습니다. 한 죄수가 대통령의 특별 사면을 받아 교도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죄수는 자기의 죄를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대통령의 특사를 거절하고 계속 교도소에 있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변호사들 간에 유명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한 쪽에서는 '특별사면을 본인이 거절한다 할지라도 대통령의 특사명령에 따라 그 죄수를 교도소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리 대통령의 특사 명령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싫으면 별수 없다. 그냥 본인이 원하는 대로 교도소에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랫동안 갑론을박하며 토론 끝에 결국 '본인이 수락해야 대통령의 특별사면령도 유효하다. 그래서 그 죄수는 본인 원하는 대로 계속해서 교도소에 있게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특별하게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특별사면을 받은 죄수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은혜와 축복의 길이 눈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돌아서 와야 했던 것입니다. - 그것은 바로 은혜에 대한 무지와 교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여 왔던 것이고 지금도 징계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세 번째는 이들이 제외 된 것은 영원이 아니고 잠시라는 것입니다.
(롬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구원받지 못할 정도로-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1절에 보면 이들이 잠시 제외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1. 이방인이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1절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행전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2.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우리가 받는 영적인 기쁨과 성령의 능력과 신령한 축복을 보면서 자극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처음 나왔을 때입니다. 한참을 쓰고 나니까 화면이 잘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돼서 새로 샀습니다.
그러다 같은 교회 성도님 댁에 갔는데 비디오를 하난 장만해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무얼 잘 고치는 분이였어요.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우리 집에 안 쓰는 비디오 플레이어 있는데 쓰겠냐고 하니까 흔쾌히 쓰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갖다 줬는데 얼마 후에 가보니까 쌩쌩 잘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봤더니~~비디오 클리너 사다가 청소 했더니~~금세 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때 제 맘이 어땠겠습니까? 하하하 나는 못쓰더라도~~남이 쓰니까~~왠지 참 못됐지요
바로 그런 효과를 주님께서 생각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 했지만 그 예수님으로 인해서 축복을 받는 이방인들을 보면서~~시기 나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2절에 (롬 11: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이스라엘의 실패가 세상의 부요함이 되었다면 이스라엘의 충만함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이방인에게 이스라엘을 기억하고, 위해서 애써 달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이스라엘의 선교를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더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거두시게 된다면 성공을 통해서는 얼마나 더 영광을 거두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군부대에 장군 한 사람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대 교회에 젊은 군목이 새로 부임해와서 열심히 목회를 했습니다. 장군이 그것에 감동을 받고는 군목을 찾아가서 무엇이든지 말씀만 하시면 힘껏 도와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군목은 그 장군에게 다음 주일부터 정장을 하고 30분만 먼저 나와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 장군이 다음 주일 아침 예배 30분 전에 정장을 하고 나갔더니 주보를 나누어 드리면서 안내를 좀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장군은 목사의 부탁대로 매주일 정장을 하고 일찍 나와서 주보를 돌리는 안내를 맡아 했습니다.
대대장이 들어와도 경례를 하고 주보를 주고, 이등병이 들어와도 경례를 하고 주보를 주었습니다. 곧 온 부대에 그 소문이 나게 되었고 그 부대 교회는 발 디딜 틈도 없이 군인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많은 군인들이 '우리, 장군님께 경례 한번 받으러 가보자'고 하며 교회로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졸병이 장군에게 경례하는 것으로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주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군이 졸병에게 깍듯하게 경례를 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낮추라고 하신 것은 자세이지 실력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실력은 으뜸이 되고, 자세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으뜸가는 사람이 되어서 종처럼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교만해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무능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을 King servant 라고 합니다. 능력은 왕이셨지만 삶의 자세는 종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되어야 합니다.
한스 킹이라는 사람이 '목욕물이 더러워졌으면 목욕물만 버려야지 아이까지 함께 버려서는 안 된다'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물론 이 말을 한 것은 교회의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 제도만 바꾸려고 해야지 믿음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면 안 된다고 한 것입니다만) 비판만 하지 말고 섬기는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남은 자는 그 시대의 파수꾼이며 최후의 보루입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의 수는 많으나 성령의 씨가 없고 진실이 빠진 형식주의요 외식하는 신자가 많습니다. 사데교회에게 경고하신 것 같이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 속에 거룩한 씨가 없으면 거룩한 생명이 없으며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적당히 타협합니다. 그래서 자기보호색- 회색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믿음은 남은 자의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성경을 보아도 살아있는 주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봉사해도 기쁨이 없습니다.
이 시대의 남은 자는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사는 사람입니다. 악취가 풍기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야 합니다.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복을 받는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영적 판단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은 자는 좁은 길을 걷는 자입니다. 그러면서도 확신을 가지고 힘 있게 나아갑니다.
핍박과 억압 속에서도 백절불굴의 신앙으로 나중까지 견디어 승리를 거두는 렘난트 즉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구원하는 거룩한 씨, 남은 자가 되어 남은 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한 쪽에서는 '특별사면을 본인이 거절한다 할지라도 대통령의 특사명령에 따라 그 죄수를 교도소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아무리 대통령의 특사 명령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싫으면 별수 없다. 그냥 본인이 원하는 대로 교도소에 있게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랫동안 갑론을박하며 토론 끝에 결국 '본인이 수락해야 대통령의 특별사면령도 유효하다. 그래서 그 죄수는 본인 원하는 대로 계속해서 교도소에 있게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특별하게 선택받은 백성으로서 특별사면을 받은 죄수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은혜와 축복의 길이 눈앞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돌아서 와야 했던 것입니다. - 그것은 바로 은혜에 대한 무지와 교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여 왔던 것이고 지금도 징계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세 번째는 이들이 제외 된 것은 영원이 아니고 잠시라는 것입니다.
(롬 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구원받지 못할 정도로-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11절에 보면 이들이 잠시 제외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1. 이방인이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11절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행전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2.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우리가 받는 영적인 기쁨과 성령의 능력과 신령한 축복을 보면서 자극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오래전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처음 나왔을 때입니다. 한참을 쓰고 나니까 화면이 잘 안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돼서 새로 샀습니다.
그러다 같은 교회 성도님 댁에 갔는데 비디오를 하난 장만해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분이 무얼 잘 고치는 분이였어요.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우리 집에 안 쓰는 비디오 플레이어 있는데 쓰겠냐고 하니까 흔쾌히 쓰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갖다 줬는데 얼마 후에 가보니까 쌩쌩 잘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봤더니~~비디오 클리너 사다가 청소 했더니~~금세 나오더라는 겁니다 그때 제 맘이 어땠겠습니까? 하하하 나는 못쓰더라도~~남이 쓰니까~~왠지 참 못됐지요
바로 그런 효과를 주님께서 생각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 했지만 그 예수님으로 인해서 축복을 받는 이방인들을 보면서~~시기 나게 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2절에 (롬 11:12)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이스라엘의 실패가 세상의 부요함이 되었다면 이스라엘의 충만함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이방인에게 이스라엘을 기억하고, 위해서 애써 달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스라엘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이스라엘의 선교를 위해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더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영광을 거두시게 된다면 성공을 통해서는 얼마나 더 영광을 거두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군부대에 장군 한 사람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대 교회에 젊은 군목이 새로 부임해와서 열심히 목회를 했습니다. 장군이 그것에 감동을 받고는 군목을 찾아가서 무엇이든지 말씀만 하시면 힘껏 도와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군목은 그 장군에게 다음 주일부터 정장을 하고 30분만 먼저 나와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 장군이 다음 주일 아침 예배 30분 전에 정장을 하고 나갔더니 주보를 나누어 드리면서 안내를 좀 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장군은 목사의 부탁대로 매주일 정장을 하고 일찍 나와서 주보를 돌리는 안내를 맡아 했습니다.
대대장이 들어와도 경례를 하고 주보를 주고, 이등병이 들어와도 경례를 하고 주보를 주었습니다. 곧 온 부대에 그 소문이 나게 되었고 그 부대 교회는 발 디딜 틈도 없이 군인들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많은 군인들이 '우리, 장군님께 경례 한번 받으러 가보자'고 하며 교회로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졸병이 장군에게 경례하는 것으로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주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장군이 졸병에게 깍듯하게 경례를 하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낮추라고 하신 것은 자세이지 실력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실력은 으뜸이 되고, 자세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으뜸가는 사람이 되어서 종처럼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교만해서는 절대로 안 되지만 무능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을 King servant 라고 합니다. 능력은 왕이셨지만 삶의 자세는 종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되어야 합니다.
한스 킹이라는 사람이 '목욕물이 더러워졌으면 목욕물만 버려야지 아이까지 함께 버려서는 안 된다'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물론 이 말을 한 것은 교회의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 제도만 바꾸려고 해야지 믿음을 버리고 교회를 떠나면 안 된다고 한 것입니다만) 비판만 하지 말고 섬기는 종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이 시대의 남은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남은 자는 그 시대의 파수꾼이며 최후의 보루입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인이라 자처하는 사람의 수는 많으나 성령의 씨가 없고 진실이 빠진 형식주의요 외식하는 신자가 많습니다. 사데교회에게 경고하신 것 같이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가 아닌지 살펴야 합니다.
우리 속에 거룩한 씨가 없으면 거룩한 생명이 없으며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적당히 타협합니다. 그래서 자기보호색- 회색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믿음은 남은 자의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은 성경을 보아도 살아있는 주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기도를 해도 응답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봉사해도 기쁨이 없습니다.
이 시대의 남은 자는 바르게 믿고 바르게 사는 사람입니다. 악취가 풍기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야 합니다.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복을 받는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영적 판단력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환난과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은 자는 좁은 길을 걷는 자입니다. 그러면서도 확신을 가지고 힘 있게 나아갑니다.
핍박과 억압 속에서도 백절불굴의 신앙으로 나중까지 견디어 승리를 거두는 렘난트 즉 남은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구원하는 거룩한 씨, 남은 자가 되어 남은 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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