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인 경영자로 미국에 애플의 스티브잡스가 있다면 영국에는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이 있습니다. 리처드 브랜슨은 기발함과 창조성과 도전과 혁신의 경영자로 꼽힙니다. 1967년 작은 레코드가게에서 시작하여 버진 아틀란틱항공으로 잘 알려진 280개의 회사를 거느린 버진그룹을 있게 한 그는 그 이름 자체가 브랜드입니다. 그의 학력은 놀랍게도 고졸이며, 그는 지독한 문제아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평범한 삶을 싫어했으며, 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 그의 과감한 도전의식은 고교 때부터 유명했습니다. 고교시절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자네는 감옥에 가거나, 백만장자가 될 걸세.”라는 말을 들은 그는 고교조차 최하위 성적으로 간신히 졸업했습니다.

리처드 브랜슨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과감하게 뛰어들었습니다. 일찍이 9살 때 스스로 크리스마스트리 장사를 시도할 정도로 아이디어와 도전의식이 남달랐습니다. 본격적인 사업은 16세 때(고교시절) 젊은이를 대상으로 한 잡지(스튜던트지)를 창간한 것입니다. 그는 스튜던트지를 키우기 위해 두 가지를 핵심으로 내세웠습니다. 첫째로 사회적인 기준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과감하게 젊은 세대들의 생각을 지면에 담아낼 것, 둘째는 메이저스폰서를 끌어들임으로써 수입원을 확보한 것입니다. 그가 메이저스폰서를 끌어들인 방법은 놀라우리만큼 간단합니다.

그는 런던 타임즈 광고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세요, 저희는 영국 젊은 층을 대변하는 스튜던트지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브리티시 항공의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런던 타임즈의 광고를 따고 나서 브리티시 항공 광고담당자에게 이렇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보세요, 저희는 스튜던트지인데요, 런던 타임즈의 고정광고를 실고 있는 젊은이들의 잡지입니다.”

버진그룹은 항공사, 철도, 쇼핑 등 엄청난 영역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결정적인 사업 번창의 시작은 스튜던트지를 성공시킨 후 시도한 ‘우편주문레코드’ 사업이었습니다. 이 레코드 사업으로 셀 수 없을 정도의 음악그룹들을 키워냈습니다. 그의 사업 스타일은 심플하면서도 과감합니다. 그가 84년 버진항공사를 만들 때 주위에서는 그에게 지나치게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뜻을 비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영국 여객시장은 브리티시 항공이 독점하다시피 한 상태였으며 음반(레코드)사업으로 성공한 그가 굳이 여객기 사업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객기 시장에 뛰어들자마자 과감한 사업을 펼쳤습니다. 기존의 군소항공들이 브리티시항공이 양보한 노선을 나누어 가지고 만족했던 것과 달리, 영국 서부노선을 공식적으로 요청하고 나선 것입니다. 이는 당시 시장 환경에서는 파격적인 도전으로 여겨졌으며, 미국과 달리 독점 금지법이 없는 영국에서 시장 최강자로서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던 브리티시 항공에게는 그야말로 계란이 바위를 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리차드 브랜슨을 괘씸하게 본 브리티시항공은 아예 버진항공 죽이기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브리티시항공은 버진항공이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시장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고 언론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파워를 통해 미디어를 장악해 버리면 버진항공이 살아갈 길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리처드 브랜슨은 오히려 이 기회를 역이용했습니다. 브리티시항공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버진항공 홍보에 큰 도움이 되었고, 브랜슨은 소송에서도 승리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불과 15년 후 버진항공은 영국 최대 항공사가 됩니다.

엄청나게 많은 영역(콜라에서 와인, 웨딩드레스, 모바일, 책, 만화, 애니메이션, 신용카드, 비행기, 기차, 심지어 우주여행까지)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버진의 발전 속도는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브랜슨에게 불가능이 없어 보이는 것은 그의 좌우명이 말해줍니다. “용기를 내서 일단 해보자”를 좌우명으로 삼는 그는 직원들에게 “하고 싶으면 당장 시도하라”고 합니다. “비행기를 조종하고 싶으면 열여섯 살부터 비행장에 가서 커피부터 끓여라. 패션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굳이 디자인학원에 다닐 필요는 없다. 패션회사에 가서 빗자루부터 잡아라.” 당장 행동하고, 시도하라는 그는 제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해결책이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는 어떤 경우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도전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Yes Man 혹은 Dr. Yes로 불리는 것입니다.

브랜슨의 도전정신은 어쩌면 천부적인지도 모릅니다. 그의 어머니가 난관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이 있었던 분이었고, 1912년 남극탐험에 성공했으나 귀환중 사망한 유명한 남극탐험가 스콧대령이 그의 할아버지의 사촌이었습니다. “일단 해보자”라는 마인드를 가진 가문에서 태어난 브랜슨은 담대한 용기로 끝없이 도전하여 오늘날 버진그룹을 일으킨 것입니다. 미래라는 가나안 땅을 향하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여 과감하게 도전하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