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의 왕 느브갓네살의 통치를 예언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나무 멍에를 만들어 이것이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의 멍에라고 외치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냐라는 거짓선지자가 이것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2년 만에 이미 끌려간 포로를 돌이키고 바벨론으로 가져가 버린 성전의 기구들을 되돌려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다른 말씀을 주십니다. “쇠로 된 멍에를 만들어 백성에게 다시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쇠멍에를 만들어 하나냐와 백성 앞에서 외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느브갓네살이 쇠멍에가 되어 모든 나라들을 다스릴 것이고 들짐승까지도 다스리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거짓선지자 하나냐가 올해 안에 죽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신속하였습니다. 하나냐는 2개월 만에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신실한 선지자 예레미야와 거짓선지자 하나냐와 차이는 무엇입니까? 두 선지자는 모두 하나님의 구원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시간은 많이 달랐습니다. 하나냐는 2년 만에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나, 예레미야는 70년 만에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2년 만에 구원을 받으리라는 하나냐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순전히 사람의 말이었습니다. 자신의 말을 말씀으로 둔갑시킨 하나냐 선지자는 안타깝게도 거짓으로 백성들이 회개하고 변화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습니다. 죄를 범한 백성들이 통회, 자복하여야 하는데, 그는 교만한 왕과 자고한 백성이 뉘우칠 기회를 주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그 기회를 잃어버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냐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예레미야와 달리 죄악의 중대성을 간과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죄악은 하늘에 사무쳤고, 긴 역사를 통하여 저질러진 것입니다. 약 500년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으므로 70년 동안 황무하여 땅이 안식을 누리게 되었다고 역대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대하 36:21). 죄는 얼마나 심각한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리게 합니다. 회개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십자가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와 하나냐의 차이는 십자가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고통이 없는 성취는 없습니다. 교회나 가정이나 국가나 고난의 눈물과 기름과 피가 없이 세워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누군가가 자기 몫 이상의 십자가를 지었기에 현재가 있는 것입니다. 70년 이후에 국가의 회복이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도 정당하고 의롭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 그리고 신실한 성도의 눈물과 피와 기름이 오늘의 힘 있는 교회의 바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