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마귀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갈라놓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가운데 죄책감처럼 강력한 무기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 인디언들 사이에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는 쇳조각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나쁜 짓을 할 때마다 그 쇳조각이 몸 안을 돌아다니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 이 때 느끼는 고통이 죄책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처음 나쁜 일을 했을 때는 그 죄책감이 상당히 크지만, 계속해서 나쁜 일을 반복하면 그 쇳조각의 날이 무뎌져서 죄책감을 덜 느낀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의 이 우화는 참으로 공감이 되는 사실입니다.

분명 예수님을 영접했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나의 죄를 모두 용서해주셨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한 성도라 하더라도, 연약하고 불완전한 인간이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실수와 잘못이 많은 게 사람입니다. 특히 가족관계에서 어린 시절부터 질책과 비난을 들으며 성장한 사람들은 죄책감의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고치기 어렵다고 여겨질 만큼, 깊은 마음의 병을 앓게 됩니다.

“어렸을 때, 야단을 많이 맞았어요. 칠칠치 못하다고, 잘 하는 게 없다고…. 맞아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잘 하는 게 없었어요. 항상 실수만 하고. 그런데 부모님이 밉더라구요. 저를 계속 야단만 치니까~. 미워하기 싫은데 자꾸 미워지니까 죄책감이 생겨요. 성경에
부모님을 공경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 설교 들으면 제가 미치겠어요. 그래야 한다는 건알지만 죄책감 때문에 힘들어요.” 어느 분의 간증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리고 우리 힘으로 끊을 수 없는 이 죄의 고리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끊어주셨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성도의 양심을 괴롭히고, 죄책감을 자극하여, 무기력하게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습니다.

이런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날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사람의 비난이나 양심의 고발이나, 자기가 기대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는 일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습니다. 죄책감은 우리의 생기를 앗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해서 불어넣어줍니다.

죄책감은 생명력을 파괴하고, 사랑할 마음을 상실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주시고, 자격없는 나를 조건없이 사랑해주십니다. 그냥 좋아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성품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의 행동이나 실수한 것에 초점을 맞추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진심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잘 하고 싶었다는 것을 아십니다.

죄책감을 오래 품으면 인생 전체가 병듭니다. 꿈이 좌절되고, 잠재능력이 마비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매 순간,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를 고백하고, 즉시 용서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자유하게 해주시는 분이기 때문이지요.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롬8:33)

하나님의 자녀, 이기범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