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면서 어딘가에 누구로부터 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힘이 과연 내가 진짜로 의지할 만한 힘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에게 진짜로 힘이 되는, 가치가 있는 힘인가? 아니면 거품처럼 사라질 힘인지를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자기 힘을 의지한 삼손도 망하게 됩니다. 헤롯왕과 사울 왕도 세상의 권력이 진짜라고 믿었지만 망했습니다. 내 주변에 보면 거대한 힘 같아 보이는 것이 많지만 거짓인 것이 많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빠르게 변합니다. 진실인 것 같아 보여도 어느 순간에 변해 있는 것이 세상의 진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히 세월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힘이 있습니다. 그걸 성령의 능력이라 말합니다. 이 능력은 마치 자동차 4바퀴처럼 평생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4가지와 한가지의 원동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 기도, 찬양, 예배 그리고 이것을 움직이는 엔진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아무리 말씀이 살아있다 해도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지 않으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와 찬양, 우리가 드리는 예배, 이 모든 것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함께 하지 않으면 응답이 없거나 예배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힘의 원천이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게 되면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설교를 통해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여러분들이 힘이 들고 고달픈 세상을 살아간다면, 지금 여러분들은 광야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잠시 후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광야 길을 걷는 성도들에게 무슨 문제가 있든 걱정하지 말고, 다 훈련이고 연단이라고 믿고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인도하시고, 책임지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십시오.” 이렇게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에 관해서 생각을 하다가 성경에서는 이 가나안을 ‘권고하시는 땅’이라 말하는데, 이 말의 뜻을 살펴보니... ‘추적하다, 돌보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뜻은 ‘하나님이 일일이 찾아가면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는 확신적인 말씀으로 쓰여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애굽은 전 국토의 3%밖에 경작을 못 하는 사막지대입니다. 나일강 주변의 삼각지대입니다. 1년에 한번 상류에서 흘러내린 비가 삼각지 전체를 휩쓸고 가는데, 이때 애굽사람들은 운하를 파고, 수로를 만들고, 밭 모퉁이에 웅덩이를 파놓고 기다립니다. 강이 흘러 넘쳐 수로를 따라 운하와 웅덩이에 가득 차게 되고 산 위에서부터 씻기어 내려온 것만 바라보며 살아가게 되는 사람들이 애굽사람들입니다. 즉, 나일 강이 유일한 원천이라고 생각하고 그것만 매달립니다. 한 마디로 “땅에 것만 바라보고 사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애굽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과 반대로 가나안은 축복의 근원이 나일 강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가나안은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 되는 땅입니다. 요단강이 있지만 계곡이 너무 깊어 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린 다음, 하늘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비를 주셔야 만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그런 곳입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곳입니다.

가나안은 산과 골짜기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부분만 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시는 땅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봐야 하는 곳,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지켜 주시는 곳, 바로 그런 곳이 가나안인 것입니다.

병원에 가면, 병이 중할수록 의사가 수술을 하기 전 마취를 하게 됩니다. 어느 사람이 급성 맹장이 터져 입원하러 왔는데, 의사가 그 사람의 뜻과 상관없이 마취를 시키고 배를 갈라 수술을 하게 되는 것은, 만약 마취되지 않은 상태로 수술대에 올랐으면 얼마나 소리를 지르고 아우성 거렸겠습니까? 아마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 달라’ 할 것이기 때문에 의사가 안전하게 수술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의사는 내 뜻과 상관없이 마취를 하고 치료를 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내 온 몸에 전신마취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시오.” 라고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를 향해 손을 들고 경배한다는 것은 온전하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순종의 모습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힘을 의지하는 것은 내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찬양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아무리 목 놓아 찬양을 하고 찬미를 돌려도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은 허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분 앞에 모든 것을 맡기며 나아갈 때 하늘의 신령한 것으로 공급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이러한 믿음의 찬양이 하늘부터 온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