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사람들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상처를 가지고 있는 걸까? 오늘 요한전도회와 로고스 청년회 연합으로 월례회 겸 기도회를 가졌는데 그 가운데서 많은 영혼들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었다. 나 또한 무엇 때문에 그리도 마음이 아팠는지 가슴을 움켜쥐며 울고 또 울었다. 둘씩 짝지어서 마음을 나누고 기도해 주는 시간에 나는 아주 오랜 상처 하나를 끄집어 내어 이야기 했다.

나의 스토리는 이렇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재수를 하는 과정에서 남동생과 나는 교회에서 잠시 숙식을 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사업상 멀리 이사를 하셔야 했고 남동생은 고등학생이라 학교를 옮길 수가 없어서 생각해 낸 방책이었다. 그렇게 하도록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진 순간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오랫동안 아버지는 내가 교회에 갈 때마다 무척 나를 힘들게 하셨다. 그래서 ‘교회에 다녀 오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때면 언제나 기도를 먼저 해야 했다. 아빠가 화내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그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가 마침내 나는 교회에 가도록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이제 교회가 집이 되는 것이다. 얼마나 기쁘던지.

거기다가 그 교회의 여전도사님께서 나를 영적인 딸로 삼아 주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전도사님 댁에 와서 밥도 먹고 잠도 자라고 하셨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전도사님 댁에 거주한다는 것은 희열 그 자체였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 그 분의 집은 교회 바로 앞이었다. 나는 늘 교회에서 철야하며 기도했고 기도하지 않을 때면 형제 자매들과 믿음의 교제를 나누고 찬양을 함께 불렀다.

그런데 문제는 고등학생인 남동생을 내가 거의 챙겨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부엌일을 거의 할 줄 몰랐다. 반찬은 물론 밥도 지을 줄 모르던 때였다. 나는 내가 전도사님 댁에 가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동안 동생이 나름대로 먹고 자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그 아이는 밥도 제대로 못먹었고 학교에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누나인 나는 늘 전도사님 댁에 가 있고 밤에는 내내 기도하고 아침에는 새벽기도를 한다. 그러면 어느새 동생이 학교 갈 시간이 되는데 내가 어느 틈에 도시락을 챙겨 주겠는가? 어느날 그것이 전도사님의 눈에 띄었나 보다. 그분이 나를 부르시더니 도시락을 하나 주시는 것이었다. 동생 학교에 갈 때 주라고. 그 순간 나는 눈 앞이 캄캄해지며 동생이 그동안 도시락을 어떻게 하며 다녔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도시락에 대해서 한번도 나한테 불평을 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엄마가 멀리 떨어져 있으니 도시락 같은 것은 당분간 포기하기로 마음 먹은 걸까? 그 때부터 나는 동생의 도시락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또한가지 문제는 동생이 잠을 충분히 잘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동생은 교회 사무실의 온돌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저녁에 잠을 잤는데 어느날 밤에 철야기도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잠을 자기가 힘이 들었나 보다. 시간은 이미 12시도 넘었고 다음날 학교를 가야 하는데, 또 젊은 아이라 얼마나 잠도 많았겠는가? 그런데 하루 이틀이지 피로가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동생은 나한테 와서 ‘잠 좀 자자.’ 라고 한마디 했다. 나는 깜짝 놀라며 도리어 화를 내고 말았다. 아니 기도하는 사람들한테 기도하지 말라는 이야기냐며. 동생은 나에게 그동안 참 순종적이었는데 그 때는 정말 지지 않았다. 피곤하다, 잠을 한숨도 못잤다 하며 나에게 대들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그때 내가 얼마나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참 어렸고 이기적이었다. 믿음 생활은 성령 받고 기도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나의 가장 가까운 동생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동생한테 얼마나 미안하던지. 동생이 아직도 그 때 일을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 애한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누나인 나에게는 평생 동생한테 미안한 부분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아마도 상처라기 보다 죄책감이라고나 할까? 동생과 가끔 전화 통화를 할 때 나는 ‘고마워’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면 동생은 ‘뜬금없이 무슨…’ 이라고 답한다.

하나 확실한 것은 동생이 그 때 확실히 하나님을 만났나 보다. 교회에서 숙식을 하면서 하나님과 나름대로 많은 교제가 있었던 것일까? 그는 변화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생활을 하고 방송실에서 일하면서 일꾼 중의 일꾼이 되어갔다. 하나님의 큰 축복이다. 나는 그 동생이 정말 정말 고맙다. 그리고 어려움 가운데 있던 동생을 만나 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를 드린다.

/김성희(볼티모어 한인장로교회의 집사이자 요한전도회 문서부장.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메릴랜드 주립대학 의과대학에서 연구 행정원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