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또 한 번 화산재로 항공편이 끊기는 일이 생겼습니다. 전과 같이 유럽 전역에 번지지는 않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공항이 폐쇄되는 등 이베리아 반도 쪽으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스페인의 공항이 폐쇄되면 스페인 만 피해를 입는 것이 아닙니다. 스페인 공항과 연결된 다른 공항과 국가에서 항공 일정이 엉망이 됩니다. 연결되는 항공편도 서로 엉켜 있어서 문제이지만 실제 항공기들의 수급이 엉망이 됩니다.

마침 그날 한국에서 뉴욕을 거쳐서 워싱턴에 오시는 손님들을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식사하는 자리에서 뉴욕 공항에서 고생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연결되는 항공편이 취소되어 다음 연결 편을 기다리느라 여러 시간을 공항에서 허비했습니다. 워싱턴에서 기다리는 측에서도 많은 불편을 겪었습니다. 특히 출장 일정에 따라 미리 정해진 일들을 취소하거나 변경해야만 했습니다. 그 분들은 뉴욕 공항에서 몇 시간을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처지에 처해 여행 일정을 바꾸고, 항공편을 바꾸고, 아예 포기한 사람들은 호텔을 알아보는 등 혼란을 겪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따지는 사람이 없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항의하고 따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화면을 보면서, 구내방송을 기다리면서 묵묵히 자리에 앉아 기다리는 모습이 무척 생소했습니다. 왜 항의하고 따지는 사람들이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당장 항공사 카운터 앞에 둘러 모입니다. 카운터에서 일하는 젊은 직원에게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합니다. 종종 승객들이 대표를 뽑아서 집단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항의하고 따집니다. 항공사가 급기야 항공일정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저질 회사로 전락합니다. 그 다음에는 대책을 내 놓으라고 윽박지릅니다. 당장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저 비행기를 비우고 임시 일정을 만들어 놓으라고 호통을 칩니다. 항공사에서 약정과 국제관례에 따라 음식을 제공하고 호텔을 제공하면서 다음날 항공편을 제공하면 호텔의 수준을 높이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승객들의 피해를 보상하라고 항의합니다. 승객들 중에서 중요한 상담을 놓쳤다, 신혼여행을 망쳤다, 아이 졸업식을 놓쳤다 등등 갖가지 안타까운 사정들이 쏟아집니다. 왈가왈부 끝에 보상을 높이는 과정에서 항공사는 새로운 죄목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승객들에게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무례하게 대했다,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이 없었다 등등 회사와 직원들의 태도를 따지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책임자가 사과하라는 조건이 예외 없이 붙게 됩니다.

궁금해 하는 그 분들에게 화산재 때문이었다는 것과 원래 비행기를 탈 때 항공사와 승객 사이에 표준 약관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비행기 여행이 버스 타는 식으로 일상이 된 사회와 아직도 항공 여행이 특별한 경험이 되는 사회의 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날 화산재로 인한 결항을 알리는 기사에 실린 어떤 승객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무리해서 죽는 것보다 불편해서 살아 있는 것이 낳습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런 모습을 이상적인 직접 민주주의라고 믿고 민중과 소비자가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며 약소국 국민의 티를 벗고 강한 나라 국민이 보여야 할 떳떳한 자세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민주사회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은 비단 항공기 결항 때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식당에서 카페에서, 소고기 사태나 천안함 사태 같은 일이 생겼을 때, 심지어 학부모 모임이나 교회의 제직회와 총회에서도 종종 보게 됩니다. 생활과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서 모든 공공의 영역에서 보다 더 성숙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