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뉴욕 John F Kennedy 공항의 터미날 한쪽 구석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창 밖으로 대형 비행기를 오르고 내리는 광경이 쉬지 않습니다. 아침에 David Moon 과 보스톤 공항을 떠나 이곳에서 다섯 시간 가까이 터키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도 못마친 일이 있어서 일을 하다가 문득 소식을 기다리는 분들에게 간략하나마 안부를 전해 드리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여행을 가노라면, 특히 많은 분들과 함께 가는 여행에서 참으로 많은 일들을 만납니다. 일반 여행도 그러할진대, 이슬람 오스만 제국의 종주국인 터키의 가장 전략적인 곳이 에베소에서 2700 명 가까운 분들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는 이런 여행에는 참으로 많은 영적 공격이 예상됩니다. 이미 많은 영적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릴레이 금식으로, 어떤 분들은 단식으로 기도하신다고 연락을 주십니다. 밤이나 낮이나 시간에 늘 쫒기는 저는 이번 에베소 성회를 기점으로 소아시 Prayer Walk, 독일, 영국 그리고 상해 중국으로 이어지는 장기간의 여정을 두고 눈을 감고 기도합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 부분일까? 그것은 시대마다 중요한 일들이 있고 시대에 마땅히 풀어야 할 과제가 있음을 봅니다. 우리 시대의 화두는 당연히 “이스라엘”과 “이슬람”입니다.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는 신비 가운것이 황산의 아름다운 안개 속에 자채를 감추고 은둔과 고요 속에 있는 듯 합니다. 황산의 아름다움은 풀고픈 정체이지만 쉽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악한 자의 근원인 사단은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직 지혜있는 자와 깨닫는 자만이 대적자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은 세대와 세대를 걸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신의 택한 족속을 구원하려 메시야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언약대로 그 메시야가 왔으나 그 민족은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을 뿐 아니라 유랑과 형극의 수천년 세월을 허비했습니다. 또 한 민족(다민족)은 거짓과 속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복음의 본질을 훼손한 거짓 선지자인 모하메드에 속아 이제는 12억이 넘는 영혼들이 어둠과 속임의 영 앞에 두려움으로 감히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돌이키고 무슬림 형제들을 그리스도 예수 앞에 인도하고 그들을 구원받게 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아랍과 이스라엘, 유대인과 이방인이 손에 손을 잡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예수나 하마시아”를 외치는 그날이 바로 영광스런 재림의 순간이라고 봅니다. 풀리지 않는 역사의 실마리를 풀 수 없을까요?

어렸을 적 누구나 다 한번쯤은 가져봄직한 질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고 잘 풀리지 않는 질문입니다. 나에게도 그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위인 전기 가운데 빠지지 않는 한 인물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 가운데 나오는 부분입니다. 저는 알렉산더 대왕의 전기를 읽으며 세가지의 큰 궁굼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무모하리만치 그 누구도 실행할 수 없었던 인도 대륙까지 정복 전쟁을 일으켰는지, 그리고 그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빠른 시간에 세계를 정복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에게 있는 지도력과 지혜는 어디에 나왔는지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이는 일리아드 이야기와 학문을 이해할 때 앞부분의 두개의 질문을 쉽게 풀렸습니다. 그러나 최근까지고 가지고 있던 질문이 고르디아스의 매듭(Gordian Knot)입니다.

이 이야기는 알렉산더가 부친의 암살을 평정하고 꿈에 그리던 일리아드 오딧세이의 땅을 밟기 위해 동방 원정을 떠나는 부분에서 나옵니다. 그의 나이 불과 20세의 나이에 왕이 되고 바로 2년 만에 떠나는 원정길이빈다. 그리는 지금 터키의 소아시아 지역을 정복합니다. 소아시아 중앙에는 한 도시에 제우스 신전이 있었는 데 그 신전의 기둥에는 한 대의 짐수레가 매듭에 묶여져 있었습니다. 이는 고르디안 왕이 매듭을 만들면서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지배한다고 말하였고 그 부분은 아직도 그 도시의 전설로 내려져 왔습니다. 풀 수 있는 매듭이라면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많은 세월이 지나도 풀 수 없는 그 매듭은 갈수록 신비의 힘을 발휘할 때 서방의 한 정복자가 허리에 찬 칼을 뽑아 단칼에 그 매듭을 베어 버립니다.

매듭을 푸는 것이지 자르라고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매듭을 풀면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다른 대답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알렉산더가 자르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그것이 내려 올 수도 있겠지요. 어릴때 이 이야기는 늘 저에게 궁굼증과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왜 그렇게밖에 매듭을 풀 수 없었을까? 그 매듭을 푸는 것은 불가능했을까? 저는 매듭을 푸는 방법에 집착했습니다. 돌이켜 보니 더 중요한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Timing 의 문제입니다. 고르디안 매듭이 풀리든 안 풀리든 성경은 알렉산더의 도래를 예언했습니다. 그의 왕국은 종말론을 푸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의 왕국의 도래가 로마 제국의 옴을 예비했고 헬라 제국의 시대는 적그리스도의 예표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상이점을 연구해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의 시기임을 봅니다.

초림은 말세의 시작을, 재림은 말세의 마지막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말세지말이라는 말을 씁니다. 마지막 날 중에서도 마지막 날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전쟁과 전재의 소문, 기근과 난리, 부도덕과 종교주의, 거짓 선지지와 미혹의 영이 온 땅을 덮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중에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 형제들과 유대인 형제들은 눈이 멀어도 단단히 먼 세월을 수천년 살아 왔습니다. 이들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이 지성과 선교의 훈련으로 될 수 없음을 봅니다. 오직 그 힘은 할수만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 주셔서 그들에게 직접 예수아가 메시야임을 알려 주게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의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가 바로 가장 중요한 매듭을 푸는 것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의 성령을 보내사 모든 압제된 자를 자유케, 눈먼자에게 보게 함을 가난한 자에게 복된 소식에 오게 하도록 기도하고 또한 그 땅을 밟으면 주의 권능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은 힘을 모아 이 마지막 시대에 주의 복음의 빛을 증거하도록 우리 함께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과 이슬람권의 주의 복음의 진보가 있도록 기도할 때입니다.

작고 작은 자 김 종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