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지역으로 주말사역을 위해 올라가는 토요일 오후.
느닷없이 아내가 순대국이 먹고 싶다고 했다.
순대국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의 모든 감각은 순대국에 대한 좋은 기억들과 감정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뚝배기에 담겨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순대국의 영상이 떠올랐다. 구수한 냄새가 느껴졌다. 들깨, 파, 다대기, 후추, 소금....
갖은 양념들을 나의 후각이 기억해내고 있었다. 김치와 깍뚜기를 가위로 써는 손맛이 느껴졌다. 훅훅 불어먹는 뜨거운
국물의 온도와 어금니 사이에서 씹히는 순대의 질감이 느껴졌다.
"아~~ 순대국 먹고 싶다."
나의 온 몸의 세포가 순대국을 원하고 있었다.
워싱턴으로 올라가는 세시간 반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여 7년을 수일같이 여겼다는 느낌이 요런 느낌과 비슷하겠지? 하면서...

그런데, 항상 가던 에넌데일이 순대국밥집이 조금 멀다는 기분이 들었다.
최근에 생긴 설렁탕집에서 순대국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차에
아내에게 그리로 가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순전히 운전자 입장에서 효율적인 동선을 고려한 제안이었다.
아내는 거기도 순대국을 한다면 그러자고 순응했다.
한가지 조건을 달았는데, 순대국에 우거지만 들어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당근이쥐. 순대국에 우거지는 당연히 들어가는거야."
그런데, 약간 불안하긴했다.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메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순대국에 우거지가 안들어가는 법은 없지" 내심 자위하고 있었다.

그 문제의 설렁탕집에 도착했다.
손님이 만원이었다.
"오호라~~ 장사가 잘 되는 걸 보니 잘 못 온건 아니겠군..."
웨이터가 주문을 받는다. 며칠전 장세규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났다.
숙련된 웨이터처럼 영혼들을 충성스럽게 섬기라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났다.
웨이터가 손님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서빙을 할지가 자못 궁금해졌다.
"저... 순대국 되죠? 순대국이 먹고 싶어 먼길을 달려왔어요. 그런데, 순대국에 우거지가 들어가나요?"
"당근이죵. 순대국엔 우거지죠." 하며 씩 웃어보였다. 느낌이 괜찮은 웨이터였다.
"거봐~ 들어간대잖아" 나는 아내에게 찡긋웃어보였다.

잠시 후 순대국이 도착했다.
아뿔싸, 순대국을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이 잠시 멈칫했다.
그러더니 이내, 여느때처럼 김치와 깍뚜기를 자르고, 아이들을 챙기고, 훅훅 불어가며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내는 먹는동안 고개도 들지 않고, 말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순대국에 우거지가 손톱만큼도 들어가있지 않았던 것이었다.
나는 분위기를 좀 바꿔볼려고 김치를 마구 헹궈서 먹으며 깍뚜기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그래도, 식사하는 내내 묵직한 분위기가 테이블을 떠나지 않았다.

대충 그릇을 비우고 계산할 때가 되었다.
그 때까지 웨이터는 한번도 우리 테이블을 들르거나, 물어보거나 하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손을 들어 계산서를 받아들었다.
싸인을 하고 돌려주면서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저..... 아까 순대국에 우거지 들어간다고 하셨는데요.... "
그랬더니 그 웨이터가 "순대국에 우거지 들어가는데요? 안 들어갔어요? 확인해볼게요" 하면서 주방쪽을 쳐다본다. 사태를 파악한 주방안에 서 있던 매니저가 "손님, 죄송합니다. 저희 순대국에는 우거지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시 웨이터를 쳐다보았다. "우리끼리 점심 먹을 때는 우거지 많이 넣어주던데.... "

나는 그 웨이터에게 "정확하게 말해주시지 않아서 먹는내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라고 말하며 쓸쓸히 돌아섰다.

그렇다.
순대국에는 우거지가 들어가야 한다.
아니다. 안 들어갈 수도 있다.
사실 이건 우거지가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집 순대국에 우거지가 들어가는지 안들어가는지 모르고 있는 웨이터의 문제였다.
자기들 먹을 때 우거지 많이 얹어서 먹는다고 손님들 것에도 들어가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나이브"한 생각이 문제였다.

그는 진실을 바로 알지 못했기에 본의 아니게 거짓을 말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본의 아닌 거짓 때문에 오해를 하고, 상처를 받고, 마음이 불편했던 손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식당을 떠나면서, 다시는 그 집에 오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순대국에 우거지를 넣지 않고서 순대국을 파는 식당.
설렁탕 국물에 순대 몇알 띄우면 된다는 안이한 발상을 하는 주인장.
자기들 먹을 때는 우거지 엄청 얹어먹고, 손님에게는 우거지를 주는지 안주는지도 모르는 웨이터들.....
그런 식당에는 다시는 발길을 주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저 하룻저녁의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겠지만
나에겐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사건이었다.
내가 저런 웨이터의 모습으로 사역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만 잘 먹고서, 성도들은 먹는지 굶는지, 그들의 필요는 채워지고 있는지 신경도 쓰지 못하는
아마추어리즘으로 사역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도들이 그저 한주한주를 살고 주일날 교회에 꾸역꾸역 나오니, 그저 잘 살고 있겠거니 하면서
그들의 삶의 현장, 삶의 자리를 캐어하지 않은채 "나이브"하게 멀뚱거리고 있지나 않은지....
성도들을 "상전"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섬기려고 하는지, 아니면
내가 매니저로, 주인장으로 성장하는데에 그저 디딤돌이 되는 존재들로 생각하는지....

장목사님의 설교는 강했다. 마음이 불편할 정도로 쎈 설교였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새겨들을 부분이 있다고 여겼다.
어리숙한 웨이터때문에 손님들이 상처입고 식당을 떠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프로답지 못한 사역자 때문에 상처입을 성도들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담임목사님의 마음을 잘 읽어, 비전에 최선으로 동역하며
성도들의 필요를 잘 읽어, 영혼의 회복과 성장을 충성으로 섬겨야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해 보았다.

그리고..... 순대국에 우거지가 들어가야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정말 프로페셔널한 순대국밥이 간절해지는 밤이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패어팩스에서 토요일 밤에 김인집 목사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