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제 4대∼6대 총장이자 감리교 동부연회 감독으로 70년대 분열될 위기에 처한 감리교의 통합에 기여한 고 박대선 박사의 장례예식이 3일 오전 10시 연세대학교 루스채플에서 엄수됐다. 김한중 연세대학교 총장을 장례 위원장으로 한 이날 장례예식은 고인의 유족과 제자 및 지인이 채플실을 에운 가운데 연세대학교 장으로 치러졌다.

장례예배 설교는 조영준 목사(전 정동제일교회 담임)가 전했고, 김한중 총장, 유동식 박사, 이기영 장로가 고인을 애도하며 조사를 낭독했다. 이어 윤병상 목사(연세대 명예교수)의 기도와 양승두 박사(연세대 명예교수)의 약력보고 후 나원용 감독(기독교대한감리회)이 축도했다.

조영준 목사는 장례예식 설교에서 고인은 평생 가르침의 삶을 살았고 또 가르친 것을 몸소 살았던 분으로 살아 있는 교훈으로 마음 가운데 남아 있다고 말했다. 조 목사는 “내가 신학생이었을 당시 ‘목사된 것이 대통령이 된 것 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면 목사를 그만두라’고 하셨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고 했다.

고인의 생전 육성을 듣는 시간도 있었다. 육성에서 고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삶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과거에는 나 자신만 구원받으면 그만이라는 개인구원에 차원에서 이기주의적인 신앙을 했다. 그러나 사회도 민족도 구원을 받아야 한다. 이웃 사랑을 실천으로 옮겨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구원받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다”고 말했다.

조사를 전한 김한중 연세대학교 총장은 “고인은 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기에 4대 총장으로 취임해 연세대학교를 지켜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특히 1975년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 고인은 해직된 교수와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오는 것을 막는 독재 권력과 단호히 맞섰다”면서 “고인은 문교부의 지시를 거부하고 개강과 더불어 해직된 김창길, 김동길 교수를 복직시키고 15명의 학생을 복교 시켰으며 결국 정권의 압력에 총장직을 내려와 학교를 떠났다. 당시 박대선 총장님 만세를 외치던 연세대 학생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며 고인을 애도 했다.

이어 유동식 박사는 “고인은 하나님이 이 땅 가운데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신 분”이라고 애도했다. 유 박사는 “인생은 이 세상에 하나님이 보내주셔서 우리가 사는 것이고 사는 동안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수행하며 살다가 하나님께로 되돌아가는 것”이라면서 “고 박대선 목사의 삶을 생각하면 이분이야 말로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그분에게 주신 사명도 다양하고 컸지만 모든 사명을 잘 감당하고 본향으로 돌아간 박 목사님의 환송식에 슬퍼하지 말고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보내드리자고” 말했다.

박대선 목사 95세 생일을 맞은 2주 전까지만 해도 건강한 모습으로 제자들을 만났으나 이후 감기 기운으로 입원해 폐렴 증세를 보이다가 지난 달 29일 소천 했다. 고인의 시신은 의과대 발전을 위해 연세대 해부학 교실에 기증했기 때문에 이날 장례식은 고인의 영정만을 모시고 진행됐다.

1916년 4월 15일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서 출생한 고인은 1940년 일본 니시노미야시 한인교회 담임 전도사를 시작으로 서평양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했다. 1951년 초대 육군군목을 지내고 1955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 1964년 연세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이후 한국 기독학생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장남 영기(연세대 명예교수), 차남 태기(감리교 목사), 삼남 성기(재미), 장녀 애나(재미)가 있다.

김정현 기자 / 기사 제공 베리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