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장 잘 아는 요셉의 이야기 중 ‘형통’에 관하여 창세기39장에 나옵니다.‘하나님이 요셉에게 형통케 하셨다’는 말씀을 통해 형통의 찬양의 삶이 어떠한 것인지 나누겠습니다.
성경에는...“애굽 사람의 집에 있는 요셉에게.... 여호와가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되어..... 그 주인이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고....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형통’이란 말을 썼을까?
요셉의 상황을 보면 전혀 아닌 그런 상황을 보면서‘형통’이란 있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형통'이라 말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으로부터‘노예 살이'를 하고 있으면서 형통하다는 말, 어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감옥에서 죄수처럼 취급받고, 아무리 전옥이 인정을 한다고 해도 ‘감옥살이’를 형통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형통'이라고 표현합니다. 성도의 삶속에서 어떤 환경적인 요소나 지금 처해 있는 위치나, 앞으로의 어떤 상황이 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있는 자리가 ‘형통’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셉이 그냥 “형통”한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그 요셉을 보면서 주인이“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다.”는 증거를 보게 된 것입니다.
감옥의 총 책임을 맡은 사람이 요셉을 보면서“여호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음을 본 것입니다.”
현재에 요셉이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좌절과 낙담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그의 모습이나 행동이 포기해 버린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절망의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는 요셉을 보게 되었다는’사실입니다.
바로 그 기쁨이, 시련을 온전히 이루는 부족함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대표적 피아니스트 정원영(47)이란 분이 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갑자기 균형을 잃어 쓰러졌고, 귀에 엄청난 소리가 나면서 남의 말조차 알아들을 수 없어 병원에 갔더니 의사의 진단은 ‘뇌종양’이라는 말을 합니다. 다행히도 수술을 하면 완치될 수 있다고 했지만 문제는 95% 청각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음악이 삶의 전부인데,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온 음악가에게 청각을 잃는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얘깁니다.
선뜻 수술을 받을 수도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제는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곡 쓰는 작업을 두 달간 10여곡을 만들어 내고,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극적으로 만난 독일의 70대 신경외과 의사에게 수술을 받아 정말 기적적으로 청력의 손상 없이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아 누구 말처럼‘기적적’으로 고비를 넘겼다고 합니다.
그가 독일에서 수술대에 오르기 직전에“수술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내가 죽든, 이 병을 앓게 하고 세상사는 참된 의미를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과거 인생 속에 음악이 항상 1순위였고, 삶의 의미도 없으면서도 살았던 자신이, 이번 기회를 통해 나를, 주변을 가족을 돌아보게 되었고, 시장에서 사온 음식을 요리해서 가족과 함께 먹는 시간이 평생 음악을 했던 시간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을 합니다.
지금은 아직 완치된 상태는 아니지만, 새로운 생명을 얻은 만큼, 탈북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며 사회활동을 시작한 정원영씨는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이 내가 고통 속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던 기회만큼이나 소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 내게 찾아온 시련이, 고통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하나님이 감춰놓으신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여러분, 아주 흔한 말이지만, 불가마로 구워낸 도자기는 결코 빛이 바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불로 연단된 인격은 영구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보다 눈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 들꽃이 생명력이 있고, 살을 깎는 아픔이 없이는 소중한 진주가 탄생되지 않으며 험한 바다가 유능한 선장을 만든다고 합니다.
성도는 뜨거운 불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정금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고난의 때를 지날 때 비로소 진정한 성품의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온전히 하나님으로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며,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찬송의 입술이‘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는 고백으로 충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에는...“애굽 사람의 집에 있는 요셉에게.... 여호와가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되어..... 그 주인이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고....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지금이 어떤 상황인데‘형통’이란 말을 썼을까?
요셉의 상황을 보면 전혀 아닌 그런 상황을 보면서‘형통’이란 있을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형통'이라 말했다는 것입니다.
주인으로부터‘노예 살이'를 하고 있으면서 형통하다는 말, 어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감옥에서 죄수처럼 취급받고, 아무리 전옥이 인정을 한다고 해도 ‘감옥살이’를 형통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것을‘형통'이라고 표현합니다. 성도의 삶속에서 어떤 환경적인 요소나 지금 처해 있는 위치나, 앞으로의 어떤 상황이 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있는 자리가 ‘형통’이라 부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요셉이 그냥 “형통”한 자리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노예생활을 하고 있는 그 요셉을 보면서 주인이“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다.”는 증거를 보게 된 것입니다.
감옥의 총 책임을 맡은 사람이 요셉을 보면서“여호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음을 본 것입니다.”
현재에 요셉이 극심한 고난을 겪고 있기 때문에 좌절과 낙담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습니다. 그의 모습이나 행동이 포기해 버린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절망의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는 요셉을 보게 되었다는’사실입니다.
바로 그 기쁨이, 시련을 온전히 이루는 부족함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대표적 피아니스트 정원영(47)이란 분이 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갑자기 균형을 잃어 쓰러졌고, 귀에 엄청난 소리가 나면서 남의 말조차 알아들을 수 없어 병원에 갔더니 의사의 진단은 ‘뇌종양’이라는 말을 합니다. 다행히도 수술을 하면 완치될 수 있다고 했지만 문제는 95% 청각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음악이 삶의 전부인데,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온 음악가에게 청각을 잃는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얘깁니다.
선뜻 수술을 받을 수도 없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제는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곡 쓰는 작업을 두 달간 10여곡을 만들어 내고,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극적으로 만난 독일의 70대 신경외과 의사에게 수술을 받아 정말 기적적으로 청력의 손상 없이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아 누구 말처럼‘기적적’으로 고비를 넘겼다고 합니다.
그가 독일에서 수술대에 오르기 직전에“수술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내가 죽든, 이 병을 앓게 하고 세상사는 참된 의미를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과거 인생 속에 음악이 항상 1순위였고, 삶의 의미도 없으면서도 살았던 자신이, 이번 기회를 통해 나를, 주변을 가족을 돌아보게 되었고, 시장에서 사온 음식을 요리해서 가족과 함께 먹는 시간이 평생 음악을 했던 시간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을 합니다.
지금은 아직 완치된 상태는 아니지만, 새로운 생명을 얻은 만큼, 탈북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주며 사회활동을 시작한 정원영씨는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이 내가 고통 속에서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던 기회만큼이나 소중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 내게 찾아온 시련이, 고통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하나님이 감춰놓으신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여러분, 아주 흔한 말이지만, 불가마로 구워낸 도자기는 결코 빛이 바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불로 연단된 인격은 영구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온실에서 자란 화초보다 눈 비바람을 맞으며 자란 들꽃이 생명력이 있고, 살을 깎는 아픔이 없이는 소중한 진주가 탄생되지 않으며 험한 바다가 유능한 선장을 만든다고 합니다.
성도는 뜨거운 불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정금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고난의 때를 지날 때 비로소 진정한 성품의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되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온전히 하나님으로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며,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찬송의 입술이‘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 하리라'는 고백으로 충만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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