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에도 5명의 웨체스터에서 목회하는 목사님이 어김없이 산행을 했다. 대개 6-7명이 늘 가는데 가는 날이면 급하게 전화가 와서 못 가는 경우가 늘 있다. 대개 그 전화는 교인들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Bear Mountain 근처인 7 Lakes 주변의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3시간 정도 걸었다. 그런데 어느 코스에 가서는 정말 힘들었다. 불과 7-8분 정도 오르는 급경사인데 (추측으로 50-60도 정도) 잘 만들어진 길을 놔두고 조금 떨어진 길 아닌 길로 두 손과 두 발을 다 이용해야만 오르는 험한 바위들만 있는 곳으로 올랐다.
너무 힘들었다.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후들후들 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면서 정상에 오르자마자 그만 누워버리고 말았다. 거침 숨소리를 내 쉬면서 내가 생각해도 힘들게 올라왔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힘들기에 헉헉거리면서 옆에 있는 황병걸 목사님에게 "아 오늘은 참 힘드네요" 하고 말을 하니 이 분이 하는 말 "나는 이럴 때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다음 주 부터는 따라오지 말자 라고 늘 말하곤 하다가도 또 한 주간이 지나 또 산행을 간다 하면 그냥 따라 나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위안을 받았다.
그런데 다른 목사가 이 말을 듣더니 하는 말이 "목사님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 중에 주일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오늘이 이 교회에서의 마지막 예배이다. 다음 주일부터는 이 교회에 안 나온다. 다른 교회로 가야지!" 하고 집에 갔다가 한 주간이 지나면 "에이 그래도 가야지 그래도 괜찮은 교회야" 하고 다시 교회에 나온답니다. 그런 분들이 많고요 그리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정말 교회를 빠이빠이 하고 다른 교회를 찾는데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마음으로 "교회가 희망을 주지 않고 힘들게만 한다면 그런 생각을 가질만도 하지" 하고 고개를 끄떡끄떡 했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렇다면 우리 교인 중에도 "오늘이 이 교회의 마지막이다" 하고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분들이 있을까? 있다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갑자기 몸이 떨리는 것이었다. "다음 주일부터 난 다른 교회로 갈란다" 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가는 분이 오늘도 있단 말인가? 정말인가? 하는 질문을 수없이 해 봤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생각을 할까? 대부분 교인들의 경우 시험 드는 경우를 본다면 첫째는 목사님의 설교에서 일 것이다. 지나치게 야단한다거나 시도 때도 없이 지나치게 헌금을 강조한다 거나 상식을 벗어진 행정일 것이다. 아니면 목사님 사모님의 이유를 들어 사치니, 지나친 간섭이니 면서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둘째는 장로님(교회의 신앙의 어른들)들의 모범이 되지 못하는 언행과 신앙생활이다. 장로님들의 경우 너무나 권위만을 내세우면서 왜 나를 대접하지 않느냐 하는 식의 장로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 경우 성도들은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 하고 또 생각한단다. 장로는 대접받는 분이 아니라 대접하는 분이다.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속회나 선교회의 모임에서 성도들을 먼저 자기 집으로 초청해야 한다. 속회를 하면서 속장 집부터 하게 하고 자기 집은 이 핑계 저 핑계로 하지 않으려 한다면 속이 보이는 아주 잘못된 신앙생활이다. 이것을 좋아하는 속회원이나 선교회원은 하나도 없다. 장로급에 해당하는 속회 지도자들도 같다. 자기 집에서 속회를 드리지 않고 집사님 댁에서만 하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신앙생활이다. 이런 것에 시험 드는 성도들도 많이 있다.
자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들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본인의 신앙생활에도 큰 문제이다. 사람이 다 같지 않다. 어느 사람은 은혜를 받았지만 여전히 쩨쩨한 사람들이 있다. 어느 분은 은혜를 비록 크게 받지 못했지만 그릇이 큰 사람들이 있다. 살만큼 살다 보니 마음의 그릇이 큰 사람은 은혜를 받아도 큰 은혜를 받고 마음이 쫄장부인 사람은 은혜를 받아도 아주 작은 은혜를 받은 것 뿐이다. 그렇게 작은 은혜를 받고도 크게 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한번 우리 각자 자신을 생각해 보자. 나는 남에게 시험을 주는 그런 신앙인인가? 나는 교회 안에서 이런 분, 저런 분 때문에 시험 드는 경우 즉 "오늘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는가? 혹시 목사님의 설교에 시험 들어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었는가?
부활 주일을 지났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죽음이란 인생의 끝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존재이다. 모든 것이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오늘이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하는 분은 이미 스스로 끝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다. 새롭게 출발하는 부활. 이것 때문에 어려운 순간순간을 이기며 새롭게 주어지는 하루를 용감하게 시작한다. 혹 오늘도 "오늘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셨다면 많이 잘못된 성도의 생각임을 깨닫고 부활신앙으로 어려음에서 희망을 갖고 새 출발을 하는 용감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한다. 부활 신앙만이 우리를 희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신앙이다.
우리는 Bear Mountain 근처인 7 Lakes 주변의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3시간 정도 걸었다. 그런데 어느 코스에 가서는 정말 힘들었다. 불과 7-8분 정도 오르는 급경사인데 (추측으로 50-60도 정도) 잘 만들어진 길을 놔두고 조금 떨어진 길 아닌 길로 두 손과 두 발을 다 이용해야만 오르는 험한 바위들만 있는 곳으로 올랐다.
너무 힘들었다.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후들후들 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면서 정상에 오르자마자 그만 누워버리고 말았다. 거침 숨소리를 내 쉬면서 내가 생각해도 힘들게 올라왔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힘들기에 헉헉거리면서 옆에 있는 황병걸 목사님에게 "아 오늘은 참 힘드네요" 하고 말을 하니 이 분이 하는 말 "나는 이럴 때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다음 주 부터는 따라오지 말자 라고 늘 말하곤 하다가도 또 한 주간이 지나 또 산행을 간다 하면 그냥 따라 나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위안을 받았다.
그런데 다른 목사가 이 말을 듣더니 하는 말이 "목사님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 중에 주일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오늘이 이 교회에서의 마지막 예배이다. 다음 주일부터는 이 교회에 안 나온다. 다른 교회로 가야지!" 하고 집에 갔다가 한 주간이 지나면 "에이 그래도 가야지 그래도 괜찮은 교회야" 하고 다시 교회에 나온답니다. 그런 분들이 많고요 그리고 그렇지 않은 분들은 정말 교회를 빠이빠이 하고 다른 교회를 찾는데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마음으로 "교회가 희망을 주지 않고 힘들게만 한다면 그런 생각을 가질만도 하지" 하고 고개를 끄떡끄떡 했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렇다면 우리 교인 중에도 "오늘이 이 교회의 마지막이다" 하고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분들이 있을까? 있다면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갑자기 몸이 떨리는 것이었다. "다음 주일부터 난 다른 교회로 갈란다" 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가는 분이 오늘도 있단 말인가? 정말인가? 하는 질문을 수없이 해 봤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생각을 할까? 대부분 교인들의 경우 시험 드는 경우를 본다면 첫째는 목사님의 설교에서 일 것이다. 지나치게 야단한다거나 시도 때도 없이 지나치게 헌금을 강조한다 거나 상식을 벗어진 행정일 것이다. 아니면 목사님 사모님의 이유를 들어 사치니, 지나친 간섭이니 면서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둘째는 장로님(교회의 신앙의 어른들)들의 모범이 되지 못하는 언행과 신앙생활이다. 장로님들의 경우 너무나 권위만을 내세우면서 왜 나를 대접하지 않느냐 하는 식의 장로들이 있다고 한다. 그런 경우 성도들은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 하고 또 생각한단다. 장로는 대접받는 분이 아니라 대접하는 분이다.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속회나 선교회의 모임에서 성도들을 먼저 자기 집으로 초청해야 한다. 속회를 하면서 속장 집부터 하게 하고 자기 집은 이 핑계 저 핑계로 하지 않으려 한다면 속이 보이는 아주 잘못된 신앙생활이다. 이것을 좋아하는 속회원이나 선교회원은 하나도 없다. 장로급에 해당하는 속회 지도자들도 같다. 자기 집에서 속회를 드리지 않고 집사님 댁에서만 하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신앙생활이다. 이런 것에 시험 드는 성도들도 많이 있다.
자 그런데 문제는 이런 것들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본인의 신앙생활에도 큰 문제이다. 사람이 다 같지 않다. 어느 사람은 은혜를 받았지만 여전히 쩨쩨한 사람들이 있다. 어느 분은 은혜를 비록 크게 받지 못했지만 그릇이 큰 사람들이 있다. 살만큼 살다 보니 마음의 그릇이 큰 사람은 은혜를 받아도 큰 은혜를 받고 마음이 쫄장부인 사람은 은혜를 받아도 아주 작은 은혜를 받은 것 뿐이다. 그렇게 작은 은혜를 받고도 크게 받은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시 한번 우리 각자 자신을 생각해 보자. 나는 남에게 시험을 주는 그런 신앙인인가? 나는 교회 안에서 이런 분, 저런 분 때문에 시험 드는 경우 즉 "오늘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는가? 혹시 목사님의 설교에 시험 들어 그런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었는가?
부활 주일을 지났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죽음이란 인생의 끝이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존재이다. 모든 것이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오늘이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하는 분은 이미 스스로 끝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부활이 있다. 새롭게 출발하는 부활. 이것 때문에 어려운 순간순간을 이기며 새롭게 주어지는 하루를 용감하게 시작한다. 혹 오늘도 "오늘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셨다면 많이 잘못된 성도의 생각임을 깨닫고 부활신앙으로 어려음에서 희망을 갖고 새 출발을 하는 용감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도한다. 부활 신앙만이 우리를 희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는 유일한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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