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성회 한국총회 동북부지방회 제 29차 정기총회를 5일 오전 10시부터 러브미션교회(담임 신인화 목사)에서 개최했다.
이날 개회예배 설교를 맡은 김남수 목사는 '해방'(롬 8:1-2)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아래는 설교 전문
올해는 1910년 일본의 군국주의 아래에서 해방된 지 100년째 되는 해이다. 일본은 15-20년간 한국을 점령하려고 계략을 꾸미고 친일파를 만들어서 1910년 나라를 빼앗았다. 일본은 농사지은 것도, 지하자원도, 역사의 좋은 자료까지 좋다는 것은 전부 빼앗아갔다.
1938년 베를린올림픽에서 한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에서 1등을 했다. 그 선수는 월계관과 화분을 받아서 시상대에서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다. 그러나 2등 한 한국 선수는 화분을 받지 않아 일장기를 가릴 수 없어 눈물을 많이 흘렸다.
100년 전 일본의 식민 지배로 세계에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어졌다고 기사를 쓴 뉴욕타임스는 100년 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를 1면에 컬러로 3-4주간 보도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십자가와 부활이 위대한 해방을 줬다. 십자가와 부활, 이 두 개가 기독교의 두 기둥이다. 전부 우리를 해방하기 위한 것이다. 위대한 하나님의 뜻이 여기 있다. 성경에는 '해방'이라는 단어가 속량=리딤(redeem)으로도 사용된다. 저주와 율법과 죄와 사망과 심판과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
목회하고 5년-10년 사이에는 복음이 뭔지 모르고 설교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윤리적인 이야기만 했다. 이래서 되냐. 이래서 지옥 간다. 그런데 그 설교를 보면 나도 지옥에 갈 것 같았다. 모세 시내산 설교를 하다가 갈보리 언덕 설교를 하기도 했다. 갈보리 언덕 설교를 했더니 성도들이 힘이 나는 것 같고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헷갈렸다. 복음이 무엇인지 죽을 고생 하고 고민한 경험이 있다.
예수님께는 12제자 120문도 500제자가 있었다. 기적을 체험한 수많은 제자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들을 다 두고 핍박자였던 바울을 거꾸러뜨려서 복음을 줬느냐.
갈릴리 어부 출신인 제자들은 종교적 계율과 아픔에 별로 신경을 안 썼을 것이다. 언제 한자리 하느냐 하는데 관심을 쏟기도 했다. 그들은 오순절을 체험하고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맞냐 했다. 온천하에 만민에게 땅끝까지 성령을 받으면 나가야 된다 했는데도 말이다. 복음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15세부터 예루살렘까지 가서 교육받았다. 그는 일생 핏속의 유대인, 뼛속까지 율법에 철저한 인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에 관한 문제와 율법의 문제를 잘 아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율법으로부터의 해방, 저주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인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제일 적합하다 여겼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사막에 들어가서 복음이 뭔지 고민했다. 그러다 '자식'이 돼야겠다 생각했다. 십자가를 통해 저주가 끝나고 축복으로 들어가는 은혜의 성령의 새 법 아래 들어갔다. 사도 바울은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다른 법을 알았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저주가 끝났다. 예수님께서는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저주가 끝나면 축복만 남는다. 예수 믿는 자체가 축복이다.
많은 사람이 복 받으려고 교회에서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세상의 성공이라 말하는 성공을 얻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성공이 축복이라면 축복받은 사람은 몇 안 된다. 그런데도 이 마약을 계속 쓸 것인가.
십자가를 깊이 보며 예수 믿은 것 때문에 감격하고 즐거워하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살면 전도하고 죽으면 천국이다 하며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성도를 너무 죄. 행위. 율법으로 닦달하지 마라. 그게 복음이 아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도록 하라. 성령의 새 법을 강조하고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돼서 살도록 인도하라. 순복음이 더욱 복음의 본질을 전하는 순순복음이 돼야겠다.
이날 개회예배 설교를 맡은 김남수 목사는 '해방'(롬 8:1-2)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했다.
-아래는 설교 전문
올해는 1910년 일본의 군국주의 아래에서 해방된 지 100년째 되는 해이다. 일본은 15-20년간 한국을 점령하려고 계략을 꾸미고 친일파를 만들어서 1910년 나라를 빼앗았다. 일본은 농사지은 것도, 지하자원도, 역사의 좋은 자료까지 좋다는 것은 전부 빼앗아갔다.
1938년 베를린올림픽에서 한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에서 1등을 했다. 그 선수는 월계관과 화분을 받아서 시상대에서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다. 그러나 2등 한 한국 선수는 화분을 받지 않아 일장기를 가릴 수 없어 눈물을 많이 흘렸다.
100년 전 일본의 식민 지배로 세계에 한국이라는 나라는 없어졌다고 기사를 쓴 뉴욕타임스는 100년 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를 1면에 컬러로 3-4주간 보도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십자가와 부활이 위대한 해방을 줬다. 십자가와 부활, 이 두 개가 기독교의 두 기둥이다. 전부 우리를 해방하기 위한 것이다. 위대한 하나님의 뜻이 여기 있다. 성경에는 '해방'이라는 단어가 속량=리딤(redeem)으로도 사용된다. 저주와 율법과 죄와 사망과 심판과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해방하셨다.
목회하고 5년-10년 사이에는 복음이 뭔지 모르고 설교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윤리적인 이야기만 했다. 이래서 되냐. 이래서 지옥 간다. 그런데 그 설교를 보면 나도 지옥에 갈 것 같았다. 모세 시내산 설교를 하다가 갈보리 언덕 설교를 하기도 했다. 갈보리 언덕 설교를 했더니 성도들이 힘이 나는 것 같고 좋아하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헷갈렸다. 복음이 무엇인지 죽을 고생 하고 고민한 경험이 있다.
예수님께는 12제자 120문도 500제자가 있었다. 기적을 체험한 수많은 제자가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들을 다 두고 핍박자였던 바울을 거꾸러뜨려서 복음을 줬느냐.
갈릴리 어부 출신인 제자들은 종교적 계율과 아픔에 별로 신경을 안 썼을 것이다. 언제 한자리 하느냐 하는데 관심을 쏟기도 했다. 그들은 오순절을 체험하고도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맞냐 했다. 온천하에 만민에게 땅끝까지 성령을 받으면 나가야 된다 했는데도 말이다. 복음에 대한 깨달음이 없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15세부터 예루살렘까지 가서 교육받았다. 그는 일생 핏속의 유대인, 뼛속까지 율법에 철저한 인간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에 관한 문제와 율법의 문제를 잘 아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율법으로부터의 해방, 저주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인 '복음'을 전하는 것이 제일 적합하다 여겼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사막에 들어가서 복음이 뭔지 고민했다. 그러다 '자식'이 돼야겠다 생각했다. 십자가를 통해 저주가 끝나고 축복으로 들어가는 은혜의 성령의 새 법 아래 들어갔다. 사도 바울은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다른 법을 알았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저주가 끝났다. 예수님께서는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저주가 끝나면 축복만 남는다. 예수 믿는 자체가 축복이다.
많은 사람이 복 받으려고 교회에서 열심히 일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세상의 성공이라 말하는 성공을 얻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성공이 축복이라면 축복받은 사람은 몇 안 된다. 그런데도 이 마약을 계속 쓸 것인가.
십자가를 깊이 보며 예수 믿은 것 때문에 감격하고 즐거워하고,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살면 전도하고 죽으면 천국이다 하며 사는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성도를 너무 죄. 행위. 율법으로 닦달하지 마라. 그게 복음이 아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도록 하라. 성령의 새 법을 강조하고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가 돼서 살도록 인도하라. 순복음이 더욱 복음의 본질을 전하는 순순복음이 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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