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에서 엘리베이터가 처음 나왔을 때 백화점이나 큰 기업의 건물에 설치되었지만 너무 느리게 움직인다고 사람들이 불평이 많았습니다.
특히 백화점 같은 곳은 더 심했기 때문에 지배인은 이 문제를 엔지니어인 자문위원회에 문의했고 자문위원회는 6명의 기술자를 동원해서 분석하고 연구해서 속도 증가에 필요한 힘을 계산해서 일주일 만에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산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는 거예요.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예산 때문에 걱정에 빠졌습니다.
이 소식을 백화점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듣고 하는 말이 “5만원만 주시면 이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그러더니 커다란 거울을 사다가 엘리베이터 안에다 걸어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 겁니다. 전에는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릴 때 그 상자 속에서 무료하게 서 있노라니까 지루하고 느리게 느꼈는데 거울을 달아 놓으니까 얼굴도 보고, 넥타이도 고쳐 매고, 머리도 다시 만지고, 어떤 여자 분들은 립스틱도 바르고, 이렇게 하다보니까 주욱 주욱 잘 올라가는 겁니다. "어! 벌써 다 왔네." 그 후로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이런 문제 해결방법을 요새 말로 하면 "심리학적 차원의 해결"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이는 환경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학계에서는“환경 보다 먼저 마음을 바꾸면 세상을 바꾸게 된다.”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각이 큰 사람, 생각이 넓은 사람은 훨씬 큰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큰 슈퍼마켓을 경영하다 친구를 믿었는데 사기를 당하고 다 날려 버려 빚더미에 오릅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어렵습니다. 일을 다시 한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일거리를 찾아다니는데 얼마나 분노가 쌓이는지 자신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어느 건물 앞에서 한 낮선 사람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더랍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이런 날에는 여행을 해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니 휠체어에 앉은 두 다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발도 없는 사람이 날씨가 좋으면 뭐하고 무슨 여행은 여행이야? 비꼬듯 생각을 하고 지나왔는데, 생각지도 않는 충격을 받습니다.
“저 사람에 비하면 나는 뭐냐?”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구두가 없어서 불편하거든 구두 신을 필요가 없는 사람을 생각하고.”
“한 끼 먹을 양식이 있다면 지금 지구촌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을 생각하며.”
“차비가 없어 걸어야 한다면 튼튼한 두 다리가 있음에 감사하며 뛰어라.”
생각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죄의 길을 가고, 저주의 길을 가느냐? 순종의 길을 가고, 축복의 길을 가느냐? 이러한 것도 보는 눈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가장 기본이 무엇입니까?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아무리 멋있게 찍었다 하더라도 사진이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면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내 인생의 초점을 어디에다 맞추고 있는지를 바라봐야 합니다. 절망스러운 환경,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목표, 기도를 하면서도 믿음이 없이 하는 기도. 이런 곳에다 아무리 초점을 맞춰봐야 쓸 데 없는 것입니다.
찬양곡 중에 히브리서 12:1 말씀을 가지고 한국의 찬양사역자 정종원님이 곡을 붙인 찬양이 있습니다.
“구름같이 허다한 예수의 증인들 있으니 모든 무거운 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 우리 앞에 펼쳐진 삶들은 믿음의 경주니 인내로써 모든 경주들을 힘써 싸워 승리하여라 믿음의 본 되신 예수 십자가 지신 주님 어려움 닥칠 때 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는 겁니다. 찬양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내 힘으로 믿기 어려우니까? 내 지식과 경험으로 믿기 어려우니까? 구름 같이 허다한 예수의 증인들이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우리들이 부르는 찬송은 믿음의 선배들이 그들의 삶속에서 체험한 은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찬송이 하나님의 사랑의 감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부르게 되면 은혜롭지 않은 찬송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부르라는 것입니다.
찬송은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것처럼 믿음의 외침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초점을 맞추고 믿음의 본 되신 예수를 바라보며 예수를 깊이 생각할 때 진정한 기쁨의 찬양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전심으로 하나님께 찬양드릴 때 우리의 모든 초점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믿음의 찬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백화점 같은 곳은 더 심했기 때문에 지배인은 이 문제를 엔지니어인 자문위원회에 문의했고 자문위원회는 6명의 기술자를 동원해서 분석하고 연구해서 속도 증가에 필요한 힘을 계산해서 일주일 만에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산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는 거예요.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예산 때문에 걱정에 빠졌습니다.
이 소식을 백화점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듣고 하는 말이 “5만원만 주시면 이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그러더니 커다란 거울을 사다가 엘리베이터 안에다 걸어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 겁니다. 전에는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릴 때 그 상자 속에서 무료하게 서 있노라니까 지루하고 느리게 느꼈는데 거울을 달아 놓으니까 얼굴도 보고, 넥타이도 고쳐 매고, 머리도 다시 만지고, 어떤 여자 분들은 립스틱도 바르고, 이렇게 하다보니까 주욱 주욱 잘 올라가는 겁니다. "어! 벌써 다 왔네." 그 후로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이런 문제 해결방법을 요새 말로 하면 "심리학적 차원의 해결"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이는 환경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학계에서는“환경 보다 먼저 마음을 바꾸면 세상을 바꾸게 된다.”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각이 큰 사람, 생각이 넓은 사람은 훨씬 큰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분이 큰 슈퍼마켓을 경영하다 친구를 믿었는데 사기를 당하고 다 날려 버려 빚더미에 오릅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어렵습니다. 일을 다시 한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일거리를 찾아다니는데 얼마나 분노가 쌓이는지 자신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어느 건물 앞에서 한 낮선 사람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더랍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이런 날에는 여행을 해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보니 휠체어에 앉은 두 다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발도 없는 사람이 날씨가 좋으면 뭐하고 무슨 여행은 여행이야? 비꼬듯 생각을 하고 지나왔는데, 생각지도 않는 충격을 받습니다.
“저 사람에 비하면 나는 뭐냐?”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구두가 없어서 불편하거든 구두 신을 필요가 없는 사람을 생각하고.”
“한 끼 먹을 양식이 있다면 지금 지구촌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을 생각하며.”
“차비가 없어 걸어야 한다면 튼튼한 두 다리가 있음에 감사하며 뛰어라.”
생각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죄의 길을 가고, 저주의 길을 가느냐? 순종의 길을 가고, 축복의 길을 가느냐? 이러한 것도 보는 눈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가장 기본이 무엇입니까?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아무리 멋있게 찍었다 하더라도 사진이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면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내 인생의 초점을 어디에다 맞추고 있는지를 바라봐야 합니다. 절망스러운 환경,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목표, 기도를 하면서도 믿음이 없이 하는 기도. 이런 곳에다 아무리 초점을 맞춰봐야 쓸 데 없는 것입니다.
찬양곡 중에 히브리서 12:1 말씀을 가지고 한국의 찬양사역자 정종원님이 곡을 붙인 찬양이 있습니다.
“구름같이 허다한 예수의 증인들 있으니 모든 무거운 짐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 우리 앞에 펼쳐진 삶들은 믿음의 경주니 인내로써 모든 경주들을 힘써 싸워 승리하여라 믿음의 본 되신 예수 십자가 지신 주님 어려움 닥칠 때 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
‘예수를 깊이 생각하자’는 겁니다. 찬양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내 힘으로 믿기 어려우니까? 내 지식과 경험으로 믿기 어려우니까? 구름 같이 허다한 예수의 증인들이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우리들이 부르는 찬송은 믿음의 선배들이 그들의 삶속에서 체험한 은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찬송이 하나님의 사랑의 감격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부르게 되면 은혜롭지 않은 찬송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부르라는 것입니다.
찬송은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것처럼 믿음의 외침이 있을 때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초점을 맞추고 믿음의 본 되신 예수를 바라보며 예수를 깊이 생각할 때 진정한 기쁨의 찬양이 흘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전심으로 하나님께 찬양드릴 때 우리의 모든 초점은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믿음의 찬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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