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텃밭삼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씨앗으로 씨를 뿌리고, 눈물의 기도로 물을 주고, 태양 빛같이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 바람처럼, 비둘기처럼, 불처럼,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시원하면서도 뜨거운 열정이 있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꾸고 보호한 자신의 양떼들이 목자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시는 그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끝까지 견고하게 세워져가는 신앙의 성숙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데살로니가 전서2:19~20)”고 성도들의 믿음이 성숙하고 견고해지는 것을 자랑하고 기뻐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목회의 길을 고난의 길이라고도 하며, 영광의 길이라고도 하여 격려와 위로를 보내기도 하며 축하하고 기뻐하기도 합니다. 목회의 길이 세상의 모든 영광과 이생의 자랑을 버리고, 안목의 정욕, 육체의 정욕, 교만의 유혹과 처절하게 싸우고, 매 초마다, 매 시간마다 골고다 십자가를 지어야 하는 영적전쟁의 소용돌이 가운데 승리해야 하는 고단한 삶이기에 고난의 길이라고 했나 봅니다. 하지만 목회자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의 뒤를 좇아 가면서, 양무리들을 말씀으로 키우고, 눈물의 기도로 돌보면서 성도들의 믿음의 성숙을 통해 맛보는 기쁨과 희열, 만족은 목자장 예수 그리스도앞에서 엄청난 자랑거리이며 하나님의 시상대앞에서 팡파르와 함께 목회자 자신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면류관이기에 영광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는 담임하는 목회자로서 이렇게 자랑스러운 성도들이 버지니아 거광교회에 있음을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믿음의 진보를 나타내며 성숙한 모습으로 신앙의 열정을 나타내고, 헌신하고, 목회자를 따르며 순종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이 정말 아름답고 자랑스럽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애독하며 그 말씀에 맞추어서 살아보려고 새벽마다 무릎꿇고, 헛된 일에 시간, 물질, 영적 삶을 낭비하지 않으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이겨보려고 몸부림치며 애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사무치는 애련(愛憐)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일이 어리석어 보이고, 헛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말씀이 달콤하고 연애편지를 읽는 것처럼 행복하며 ‘성경일독 삼매경’에 빠진 즐거움을 누리며 산다는 성도들이 대견스러워 보입니다.

때론 주일 예배에 빠지고 싶은 게으른 생각이 들 때마다, ‘말씀 전하는 목사님의 얼굴이 달덩이처럼 떠올라’ 예배를 빠질 수 없더라는 순수한 고백을 하면서 목회자를 자랑하는 성도가 고맙고 귀엽기도 합니다.

이런 믿음의 진보를 나타내는 성도들이 있기에 비록 양이 적은 교회라하더라도 숫자가 많은 교회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영혼이 귀함을 진정으로 체험합니다. 한 사람, 한 영혼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는 이 땅에 세워지고 세상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지는 것이지요.

목회자의 자랑은 건물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기쁨은 물질이 아닙니다. 목회자의 면류관은 실력이나, 학위나 세상적인 명예가 분명 아닙니다.

나는 성숙해져가는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성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주 안에서 든든히 선 당신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사모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