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동북부, 일본의 서쪽, 그리고 만주의 동쪽에 위치한 험난한 반도 땅은 서구 사람들에게는 ‘Corea’ 혹은 ‘Korea’로 알려져 있으나, 자국의 황제가 아니라 이 나라의 군주였던 중국인들은 조선(Chaosien)이라고 불렀다….”

초기 한국교회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존 로스(John Ross, 1842-1915). 그가 쓴 <존 로스의 한국사(살림)>가 발간됐다. 위 글은 1장 ‘고조선’의 첫 부분이다.

존 로스는 서양 언어로 한국 역사책과 한글 문법책을 펴낸 최초의 인물이자, <신약성서>를 최초로 번역한 사람이다. 1872년 스코틀랜드 연합장로교회 파송으로 중국에 간 로스는 만주에서 한국 상인들을 만나고 한국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인들의 알파벳(한글)은 너무나 아름답고 단순해 30분만에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는 말로 한글의 가치와 잠재력을 당시 ‘언문’이라며 한글을 천시한 한국인들보다 더 잘 알았다.

로스는 서상륜, 백홍준, 김청송, 김진기, 이성하 등과 같은 한국 개신교 초기의 지도자들을 배출했지만, 사실 한국으로 들어가 직접 선교 활동을 펼친 적은 없었다. 단지 1887년 9월 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을 찾아 새문안교회 창립식에 참석했을 뿐이다. 하지만 만주와 간도 지방의 한국인들이 신앙공동체를 이루는 데 큰 영향을 끼쳤고, <예수셩교젼셔> 번역 과정에서는 의주에서 5천여명의 신앙공동체가 형성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의 성경 번역으로 한국 땅에는 선교사가 들어오기도 전에 초대교회처럼 자생적으로 교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로스가 이같은 책을 쓰게 된 이유는 그의 선교 철학과 관련이 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그 나라의 문화를 바탕으로 뿌리내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개종한 현지 기독교인들의 생활과 전도 활동을 통해 기독교가 성장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본국 선교부의 비판을 받으면서까지 한국어 성경번역을 중단하지 않았고, <사서삼경> 등 한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실제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전도할 때 이를 많이 이용하기도 했다.

로스는 본토인들이 자국 선교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해 신학 교육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그는 당시 ‘은자(隱者)의 왕국’으로 알려졌던 한국이 문호를 개방하기를 바랐고, 어떤 목적이든 한국과 관계를 맺기 원하는 서양인들이 먼저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기를 바랐다. 이 책은 그의 이런 바람 때문에 쓰여진 것이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부분은 로스가 한국을 문명화와 기독교화 대상인 미개한 국가가 아닌, 오랜 역사와 고급한 수준의 문화를 지닌 독립 국가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그의 이러한 시각은 이 책 곳곳에 드러나 있다.

책에서 로스는 ‘만주사(史)’의 시각에서 한국사를 바라본다. 그래서 고조선으로부터 시작해 선비족과 연나라, 거란·여진족 역사까지 포함됐는데, 이는 그가 참조한 자료가 전적으로 중국에 한정된 데다 그의 지리적·역사적 개념이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당시 우리나라의 범위가 만주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로스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수백 권에 달하는 중국 저서들을 샅샅이 뒤졌으며, 중요한 자료로는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鑑)>, 명 왕조 말년까지 전해 내려왔던 주자(朱子)의 저서, <삼국지> 혹은 <만주전쟁사>, <동화록(東華錄)> 혹은 <만주실록>,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부피가 큰 <요동사>, 그리고 고대 요동의 이해에 도움이 되는 기행문들이 있다”며 “그 결과 방대한 양의 자료를 소화하는 과정에서는 조잡한 결과가 나오기 쉽지만, 동아시아의 지적이고 문명화된 인종들을 좀 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고 또한 나의 동포들이 고귀한 특성들을 진정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된다면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것”이라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