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3일 아침,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새 생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동안 기도하며 기다려온 예지와 마이클의 첫딸, 쥴리아(Julia)가 태어났습니다. 딸과 사위가 자기들이 지은 영어 이름 ‘쥴리아(Julia)’와 함께 부를 우리말 이름을 지어달라고 해서 오랫동안 기도하며 경은(景恩)이라고 지었는데, 쥴리아는 “useful(쓸만한)"이란 의미이고, 경은은 ‘햇살 같은 은혜’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햇살처럼 밝고 빛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또 받은 은혜를 세상을 위해 잘 쓰임 받는 삶을 살라는 바램을 담아 지은 이름입니다.

예정일에서 일주일이 지나 의사의 지시로 2일 아침에 출산을 위해 병원에 입원한 딸을 오후에 잠간 들려 보고 오는데 막상 아기가 태어난다고 생각하니 과연 아이가 정상적으로 태어날지 걱정이 되면서 그동안 아기를 위한 기도를 딸을 위한 기도만큼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교회 예배실로 와서 태어날 아기를 위해 기도하는데 그저 여느 아이들처럼 정상적으로 태어났으면 싶은 마음이 들면서 이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아이를 생각하며 몸의 모든 부분이 정상적으로 태어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데 머리끝에서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몸의 어느 한 부분도 그냥 지나갈 만큼 소중하지 않은데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간구하지 않으면 아기의 모습에서 그 부분은 부족하거나 불완전할 것만 같은 생각에 보여지는 외모에서부터 몸속의 여러 부분까지 머리털의 색깔이며 손톱 발톱의 길이에 이르기까지 아기의 온 몸을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능한 몸의 모습과 구조를 모두 생각하며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생명의 오묘함을 새삼 경험했습니다.

그날 저녁 제자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병원에 있는 집사람으로부터 ‘아이가 태어나면 먹이려고 끓여놓은 미역국을 가지고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짧은 음성 메시지를 듣고 집에 돌아와 병원에서 연락오기만을 기다리는데 아무 소식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람과 사위에게 계속 전화를 해도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아 걱정하고 있는데 사위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고 아기는 내일 아침에야 태어날 거 같다’고 하면서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잠깐 잠이 들었나 싶은데 전화벨이 울려서 깨보니 새벽 2시반쯤 되었습니다. 아기를 낳았나 싶은 마음으로 전화를 받으니, 집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그것도 아주 짤막하게 “기도해... 않좋아...”하고는 전화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않좋다니.. 누가 안 좋으며, 어디가 않좋은지...’ 덜컥 다시 마음속에 걱정이 들기에 앉은 자리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데 아무래도 교회로 가서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급하게 서둘러 교회로 와서 기도하는데 제 입술에서 나오는 기도가 얼마 전 오후에 드린 기도와는 달랐습니다. 몸의 어느 부분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간구했었는데, 머리카락 색깔이며, 손가락의 모양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그저 건강하게 출산해서 아기와 엄마 두 사람 모두 아무 탈만 없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얼마쯤 기도하다가 밤새도록 와서 쌓인 교회 앞길의 눈을 조금 치우고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다시 전화벨이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집사람이 건 전화인데, 다시 낮은 목소리로 “그런데 아기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람의 말을 듣자마자, “왜... 무슨 일인데...”라고 되묻기는 했지만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으로는 수없는 생각들이 번개처럼 스치듯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아기가 어떻다는 건가, 무슨 사고가 났나? 무슨 문제가 생긴건가..’ 다행이도 설명을 들으니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지난밤부터 출산을 돕기 위해 유도분만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태아의 심장 박동 수가 정상치에서 내려가는 바람에 잠시 긴장했지만 유도분만을 멈추면서 다시 정상으로 회복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도분만을 멈추자 산모의 진통도 멈춰 버려서 출산 과정이 진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새벽예배후 다시 기도하는데 제 기도의 내용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아이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태어났으면 하는 바램도, 건강한 출산에 대한 간구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하나님께 이 모든 형편과 처지를 의뢰하는 기도만이 제 입술에 부쳐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드린 기도가 부끄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이신데,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실뿐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부족함이 없도록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인데도 마치 내가 기도하지 않으면 빼놓으실 것만 같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마치 내가 내 딸과 아이의 생명에 대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작은 변화에도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경험하면서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요, 은혜임을 다시 고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