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동남아시아 오지에서 선교하는 일은 보통 각오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통통배로 4시간, 걸어서 5시간을 다니며, 독충에 물리고 식중독에 걸리면서까지 교회를 개척하는 일도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직접 개척하고 목회하며 3500명을 세례 주는 역사는 더욱 불가능해 보인다.

보통 사람, 신정채 선교사는 “제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도우심, 선교에 동역하는 모든 교회, 사역자들의 협력으로 이뤄지는 일”이라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의 햇볕에 그을린 까만 피부를 가진 그는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자신의 사역을 실어 나갔다.

그는 보통 사람 중의 보통 사람이었다. 노량진에서 생선 장사를 하다 소명을 받고 신학공부를 마친 후 목회자가 됐다. 교회를 개척한 후에는 평범하다 못해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돌파구는 선교였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밀리다시피 해서 떠난 곳이 말레이시아. 이슬람교가 국교인 그 나라에서 그가 찾은 곳은 국교조차 세력이 미치지 못하는 그런 오지였다. 육지 길이 없는 곳은 배를 타고, 뱃길이 없는 곳은 숲을 헤치고 수시간이 걸려 찾아 가는 곳은 몇 개의 가정과 수십명의 가족으로 구성된 부족이다. 복음은 커녕 예수의 “예”자 조차 들어 보지 못한 그들을 찾아가 의약품과 옷을 나눠 주며 마음을 열게 하고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추장의 마음이 열리면 추장을 통해 부족의 마음을 열고 마을 회의에서 기독교를 받아 들일지 말지가 결정된다. 가결이 되면, 말 그대로 모든 부족원이 집단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부결되면 향후 5년간 이 마을은 다시 찾아 갈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세례받은 사람이 75개 마을의 3500명이고 지금은 이들 가운데 신 선교사와 함께 전도하는 동역자들도 생겨나서 사역에 활력이 붙었다. 만약 미국이나 한국에서 어떤 목회자가 15년 목회하면서 직접 전도해 3500명을 세례줬다면 그것도 기적 중의 기적일 것이다. 그러나 신 선교사의 사역은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 곳에서 이뤄졌기에 하나님이 기적이 더욱 많았다. 추장에게 멱살이 잡혀 가며 7번 기도한 결과 시각장애우가 눈을 뜨고, 그 이후로는 손을 대면 병이 낫는 역사가 일어났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기도해도 안되던 일들이 오지 선교 현장에서는 매일같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는 “하나님은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시고 하실 수 있다”는 겸손을 배웠다.

12일부터 14일까지 갈릴리감리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서 신 선교사는 한결같이 선교에 도전을 던졌다. 그는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정체될 수 밖에 없고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그 존재 이유까지 흔들릴 수 있다”면서 자신의 사역 속에서 경험한 일과 기적들을 간증하며 성도들이 과감하게 직접적 간접적으로 선교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집회 마지막 날, 갈릴리교회는 선교약정서를 성도들에게 나눠주며 선교사 지원, 현지 신학생 장학금, 초중고등학생 장학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지로 매달 선교헌금을 약정하게 했다. 성도들은 각자 감동이 있는 영역에 선교를 약정했고 신 선교사가 하나님께 봉헌했다. 올해 교회의 목표를 “나눔으로 넉넉해 지고 섬김으로 성장하는 교회”로 정한 갈릴리교회는 이번 부흥회에서 성도들이 매달 약정한 헌금을 성도들이 지정한 곳의 선교 후원금으로 보낼 계획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