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여년 동안 임상심리치료를 해오면서 정신과 의사에게 가는 거의 모든 증상을 상담치료해 왔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가장 자신있게 치료하게 되고 전문적으로 담당하게 된 증상이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에게 가면 한 두가지 내용만으로도 대번 처방이 떨어지게 되고 한 번 진단을 받으면 평생 약을 먹으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무서운 증상이기도 합니다. 즉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욕하거나 명령하는 소리를 듣는 환청이 생기고, 없는 냄새를 맡기도 하고, 현실성이 결여된 조각나고 괴상한 생각을 하게되는 망상이 생겨나고, 실제로는 없는 것을 보는 환시나 아픔을 느끼는 환촉 등이 수반됩니다. 이것이 바로 정신분열증이며 영어로는 Schizophrenia라는 증상입니다. 발명률이 약 천명당 1명 꼴로 알려져 있으며 질환의 만성경과와 그 가족의 고통이 너무 커서 여러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괴로운 정신질환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근 한 2년여 동안만 해도 여러 경우가 있었는데 한 사람도 예외없이 도움을 받아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거나 약을 끊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정신분열증이라고 진단을 받고 한 몇 년씩 약을 복용했다는 사람들을 통해 제가 경험한 바는 거의 공통적으로 크고 작은 내용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점입니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죄책감이 있는 사람은 흔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정죄하고 후회와 자책속에서 필름을 돌리듯 과거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돌아보는 사이 어두운 골짜기에 갇히고 빠져나갈 수 없는 혼동된 상태를 경험하게 될 때, 속삭이는 듯한 악한 음성을 듣고 망상을 하게 된다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죄책감에는 객관적인 죄책감과 주관적인 죄책감이 있습니다. 객관적인 죄책감은 죄책감을 가질 만한 일이 있어서 갖게 되는 것이고 주관적인 죄책감은 사실과는 무관하게 감정적 상태로 경험하는 내용입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게되는 원칙에 따라 죄책감이 있는 사람은 위축되고 의욕을 상실하게 되어 우울증을 얻기도 합니다. 혹은 스스로를 벌주는 행각을 벌이기도 합니다.
특히 주관적인 죄책감에서 상상으로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불가능한 도덕적 이상이나 기준을 갖고있고 다른 사람과 엉뚱한 차원에서 비교하거나, 스스로에게 완벽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화가 안되는 율법적인 종교적인 가르침이 해로운 요소로 작용하는 결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회나 주변에서 기대하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여길 때 객관적인 죄책감을 갖게 됩니다. 종교적인 원리나 가르침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이나 삶이 온당하지 못하다고 판단될 때도 객관적인 차원의 죄의식을 갖게 됩니다. 죄책감에 수반되는 수치심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고, 가치없고, 허약하며 멍청하고, 고약하고, 그러면서도 어쩌지도 못하는 자괴감을 느끼게 합니다. 수치심이 있는 사람은 “숨고 싶어”하는 유혹이 강하기 때문에 삶이 어두워지고 우울해지게 됩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은 후에 가장 먼저 한 행동이 자신들을 숨긴 일이었습니다. 수치심에는 일시적으로 느끼는 상황적인 수치심부터 심리적인 나르시즘적인 수치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실존적 수치심, 자기의 역할이나 일에 따르는 기능적인 수치심, 인간이기에 느끼는 우주적인 수치심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대강 들어도 죄책감과 수치심에는 심리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내용과 지식적으로 올바른 해석과 판단이 새롭게 제공되어져야 하는 내용이 있음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에게 향하신 선하신 뜻을 따라 보면 이러한 죄책감과 수치심은 인지적인 부분, 심리적인 부분 그리고 영적인 부분까지를 다 망라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죄책감과 수치심에 빠져서 숨어지내고 괴로움 가운데 사는 것을 결코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한 감정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벌주는 것을 막기위해서 용서를 말씀하셨고 회개를 통해 용서함을 받는 방법과 원리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 때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의 내용을 대인과의 관계에만 적용합니다. 그리고 또 사람은 남에게는 율법적이고, 가혹해도 스스로에게는 관대하다는 통념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상담을 통해 경험한 바로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더 가혹하며 자신의 실수나 실패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더 용서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자존심때문이든 낮은 자존감 때문이든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화를 내고, 후회하며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때 그것이 영적으로도 약점이 되어 어둠의 세력에게 틈을 내주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책감이 있는 사람과 상담할 때 제가 다루는 내용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용서에 대해 어떤 이해를 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죤 부룩만(John Brockman)은 [과거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그의 책에서 과거 2000년 동안 인류의 생활을 바꾸어 놓은 발명품들을 지적했습니다. 인쇄기, 현미경, 망원경, 전기 등등을 비롯해서 피임약, 컴퓨터, 핸드폰 등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뉴욕 대학 교수이며 대중매체 이론가인 더그라스 라시코프(Douglas Rushkoff) 교수는 지난 2000년 동안 가장 놀라운 발명품으로 그 많은 것 가운데 지우개를 꼽았습니다. 잘못된 것을 지우고 다시 수정하는지우개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과학도 역사도 도덕도 제자리걸음을 하였을 것이므로 지우개 발명이야 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내용입니다.
우리의 전체를 주장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신 말씀이 정신질환과 관련해 보면 얼마나 실감나는지 모릅니다.성경은 다른 것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질을 지킨다거나 명예를 지키라고 하지 않았고 체면이나 품위를 지키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태리의 문호 파피니는 말하기를 “세상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고 인간의 문제는 곧 마음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다른 문장으로 하면 모든 세상의 문제는 인간의 마음의 문제라고 요약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틈타서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만 사로잡으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모든 삶에 있어서의 모든 태도를 실컷 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충직하게 그리고 있는 그대로 믿으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식이 아닌, 인간의 가르침이 아닌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먼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 때문에 온전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은혜로 문제를 점차 해결받게 되는 것입니다.
/최선주 목사 Ph.D. 847-312-5949, 종려나무 교회 www.palmtreechurch.com
최근 한 2년여 동안만 해도 여러 경우가 있었는데 한 사람도 예외없이 도움을 받아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거나 약을 끊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정신분열증이라고 진단을 받고 한 몇 년씩 약을 복용했다는 사람들을 통해 제가 경험한 바는 거의 공통적으로 크고 작은 내용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점입니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서로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죄책감이 있는 사람은 흔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정죄하고 후회와 자책속에서 필름을 돌리듯 과거의 기억을 지속적으로 돌아보는 사이 어두운 골짜기에 갇히고 빠져나갈 수 없는 혼동된 상태를 경험하게 될 때, 속삭이는 듯한 악한 음성을 듣고 망상을 하게 된다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죄책감에는 객관적인 죄책감과 주관적인 죄책감이 있습니다. 객관적인 죄책감은 죄책감을 가질 만한 일이 있어서 갖게 되는 것이고 주관적인 죄책감은 사실과는 무관하게 감정적 상태로 경험하는 내용입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게되는 원칙에 따라 죄책감이 있는 사람은 위축되고 의욕을 상실하게 되어 우울증을 얻기도 합니다. 혹은 스스로를 벌주는 행각을 벌이기도 합니다.
특히 주관적인 죄책감에서 상상으로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불가능한 도덕적 이상이나 기준을 갖고있고 다른 사람과 엉뚱한 차원에서 비교하거나, 스스로에게 완벽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화가 안되는 율법적인 종교적인 가르침이 해로운 요소로 작용하는 결정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회나 주변에서 기대하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여길 때 객관적인 죄책감을 갖게 됩니다. 종교적인 원리나 가르침에 비추어 자신의 행동이나 삶이 온당하지 못하다고 판단될 때도 객관적인 차원의 죄의식을 갖게 됩니다. 죄책감에 수반되는 수치심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고, 가치없고, 허약하며 멍청하고, 고약하고, 그러면서도 어쩌지도 못하는 자괴감을 느끼게 합니다. 수치심이 있는 사람은 “숨고 싶어”하는 유혹이 강하기 때문에 삶이 어두워지고 우울해지게 됩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은 후에 가장 먼저 한 행동이 자신들을 숨긴 일이었습니다. 수치심에는 일시적으로 느끼는 상황적인 수치심부터 심리적인 나르시즘적인 수치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실존적 수치심, 자기의 역할이나 일에 따르는 기능적인 수치심, 인간이기에 느끼는 우주적인 수치심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대강 들어도 죄책감과 수치심에는 심리적으로 다루어져야 할 내용과 지식적으로 올바른 해석과 판단이 새롭게 제공되어져야 하는 내용이 있음을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에게 향하신 선하신 뜻을 따라 보면 이러한 죄책감과 수치심은 인지적인 부분, 심리적인 부분 그리고 영적인 부분까지를 다 망라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죄책감과 수치심에 빠져서 숨어지내고 괴로움 가운데 사는 것을 결코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러한 감정때문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벌주는 것을 막기위해서 용서를 말씀하셨고 회개를 통해 용서함을 받는 방법과 원리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 때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용서의 내용을 대인과의 관계에만 적용합니다. 그리고 또 사람은 남에게는 율법적이고, 가혹해도 스스로에게는 관대하다는 통념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상담을 통해 경험한 바로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더 가혹하며 자신의 실수나 실패나 잘못된 선택에 대해 더 용서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자존심때문이든 낮은 자존감 때문이든 결과적으로는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화를 내고, 후회하며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때 그것이 영적으로도 약점이 되어 어둠의 세력에게 틈을 내주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책감이 있는 사람과 상담할 때 제가 다루는 내용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용서에 대해 어떤 이해를 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죤 부룩만(John Brockman)은 [과거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그의 책에서 과거 2000년 동안 인류의 생활을 바꾸어 놓은 발명품들을 지적했습니다. 인쇄기, 현미경, 망원경, 전기 등등을 비롯해서 피임약, 컴퓨터, 핸드폰 등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내용이 있을 것입니다. 뉴욕 대학 교수이며 대중매체 이론가인 더그라스 라시코프(Douglas Rushkoff) 교수는 지난 2000년 동안 가장 놀라운 발명품으로 그 많은 것 가운데 지우개를 꼽았습니다. 잘못된 것을 지우고 다시 수정하는지우개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과학도 역사도 도덕도 제자리걸음을 하였을 것이므로 지우개 발명이야 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내용입니다.
우리의 전체를 주장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 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신 말씀이 정신질환과 관련해 보면 얼마나 실감나는지 모릅니다.성경은 다른 것을 지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질을 지킨다거나 명예를 지키라고 하지 않았고 체면이나 품위를 지키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네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이태리의 문호 파피니는 말하기를 “세상의 문제는 인간의 문제이고 인간의 문제는 곧 마음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다른 문장으로 하면 모든 세상의 문제는 인간의 마음의 문제라고 요약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우리의 약점을 틈타서 우리의 생각을 사로잡으려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생각만 사로잡으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과 모든 삶에 있어서의 모든 태도를 실컷 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충직하게 그리고 있는 그대로 믿으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식이 아닌, 인간의 가르침이 아닌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먼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 때문에 온전한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은혜로 문제를 점차 해결받게 되는 것입니다.
/최선주 목사 Ph.D. 847-312-5949, 종려나무 교회 www.palmtreechur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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