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붙잡아야 될 것을 붙잡지 못하면 죽게 된다는 이야길 하겠습니다.

성경에 엘리멜렉과 나오미에 관한 얘기가 있습니다.두 사람이 아들 둘을 데리고 흉년으로 인해 살길이 막막해 진 곳을 떠나 모압 땅으로 가게 됩니다. 최소한 모압에 가면 살길이 있겠다 싶어 베들레헴을 떠나 이방 나라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후회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느냐면? 베들레헴은 찬송이 있고 기도가 있고 예배가 있는 곳입니다. 살기 힘들다고, 어렵다고, 낙심된다고.... 선지자들의 말씀이 있는 그런 곳을 떠나 모압 땅으로 갔을 때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더 큰 불행을 당하게 되고, 실패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더 나을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어려운 지경에 이르게 되고 오히려 가진 것 다 잃어버립니다.

그곳에서 남편도 죽습니다. 먼 이국땅에서 남편을 잃고 힘겹게 살아가는 나오미의 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착잡한 심정이었을 겁니다.

다행히 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이 두 아들의 장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고 상처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제 모압 땅에 온 지도 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아들들은 장성해 ‘오르바’와 ‘룻’이라는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맞게 됩니다. 그런데 또 이 가정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이 다시 찾아옵니다. 두 아들마저 전염병으로 죽게 된 것입니다. 졸지에 한 집에 과부 셋만 남게 된 것입니다.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이란 이름이“하나님은 왕이시다.”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부모가 신앙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오미란 이름도 “감미로운 자",“은혜 스럽고 사랑스러운 자” 이런 뜻인데, 이름과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자 나오미는 나의 이름을 나오미라 부르지도 말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도, 두 아들 말룐과 기룐도 가진 물질도 다 잃어버렸기 때문에 인생포기,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정말 잘 살아보려고 했는데, 살기위해 갔는데, 결과는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떠나니까 행복도, 소망도 미래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정말 마지막까지 내려간 겁니다. 더 이상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는 마지막 밑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희망도 소망도, 남편도 자식도 다 잃고, 먹을 것 입을 것 아무런 목적도 발견하지 못했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주님을 찾습니다. 주의 음성이 들리더랍니다. 주님의 음성 들으니까 다시 살아나는 겁니다.

사람은 그렇습니다. 아무리 죽음의 문턱 앞에서 있다 해도 주님의 음성 들으니까 다시 살아나는 겁니다. 그 속에 새로운 희망이 생겨나는 겁니다. 체면도, 자존심도 내세울 것 없습니다. 말씀 속에 살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길이 열리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의 성도는 세상의 것 다 잃어버려도 주님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린 딸과 함께 바닷가로 낚시를 갔는데, 원하던 자리에서 고기가 잘 안 잡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딸을 바위 위에 앉혀 놓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낚시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한곳에서 정신없이 고기가 잘 잡히더랍니다. 얼마나 좋아서 기뻐했는지 시간이 가는 줄 몰랐습니다. 어느새 해는 기울고 그 때서야 정신 차려보니 딸 생각이 나더랍니다.

아버지는 딸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는데, 이미 바위는 물에 잠겨 버렸고 어린 딸은 바닷물에 쓸려 죽고 말았답니다. 딸은 바닷물이 불기 시작하자 무서워 울면서 큰 소리로 아버지를 불렀지만 고기 잡는 데에 정신이 팔린 아버지는 딸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입니다.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버릴 때가 있고, 버스는 떠날 때가 있습니다. 헛된 곳에 정신 팔다보면 순간에 후회가 밀려들어 올 때가 있습니다.

모든 기회가 다 지나가고, 순간 불어오는 북풍에 밀려 파선 된 배와 같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있는 인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가 찾아야 할 것, 바라봐야 할 것, 소망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믿음의 눈을 들어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찬송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게 만듭니다. '찬송의 회복’이란 말은 세상의 것에 빼앗겨 버린 우리 ‘영의 정신 상태’를 주님으로 다시 돌려놓는 다는 의미입니다.

세상의 것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면 주님을 찬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을 붙들지 못하고 놓쳐버리면 영원히 후회할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때라도 주님을 위한 찬양의 소리를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찬양은 우리 영혼에 맥박이며, 심장이고 핏줄이란 사실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꼭 붙잡고 소리 높여 찬양 드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