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예수님이 길을 가면서 제자들에게 자신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사흘 후에 부활한다고 말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두려워하는것 같았다. 에수님의 이 말을 이해를 못한 것 같았는데 스승을 따라 가면서도 오히려 자기들끼리 무엇인가 어떤 논쟁을 하고 있었다. 후에 제자들에게 어떤 대화를 했는지 물었는데 그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서열에 관한 쟁론을 했기 때문이었다. 삼년이나 같이 동거동락 하면서 스승에게서 모든 것을 듣고, 배우고, 본 제자들이었는데도 그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스승은 당신이 받을 고난을 말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승자로서 스승이 왕이 된 후의 차지할 자리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절망을 느낄 때는 상대가 나를 알고 이해하지 않고 본인이 말한 뜻과 전혀 다른 생각과 답변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이다. 나와 같이 같은 식탁에서 먹고, 같은 집에서 잤던 사람, 내가 잘 알고 있고 나를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한 사람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면 좌절을 넘어 외롭고 슬픔을 느낀다. 의사(意思)의 바른 소통은 부부, 부모자식 간에, 친구사이에 서로의 인간의 관계를 연결하는 바람직한 방법으로 말하는 내용과 의미를 상대가 바르고 확실하게, 정확하게 알아들었다면 의사는 전달된 것이다. 말한 사람의 내용과 뜻에 대하여 바른 언급을 하면 의사는 소통된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나를 알고 내가 한 말을 이해하고 내 마음의 고통을 같이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가장 깊은 고뇌를 말했는데 상대가 못 알아듣고 우물쭈물하거나, 가만히 있다면 그 사람의 실망과 좌절은 어떨 것인가? 스승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의 대답은 스승을 비참하고 절망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오는 것은 절망이고 고독, 외로움이다.

마음에 여유가 없고 자신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이기적인 사람은 남을 배려하지 않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나에게 말을 하려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면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 주님의 제자들은 앞으로 올 영달에 대한 욕망과 집착이 강했으므로 번민 중에 있는 스승의 말을 들을 수 없었고 그의 외로움과 고통에 동참할 수 없었다.

우리 주위에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는 또는 들어주기를 불편해하고 못들은 척 잠잠한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는 열심히 스승을 따랐는데도 스승이 말한 참된 의미를 몰랐던 제자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가족의 모습이고 나의 배우자의 모습이며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하는 부모들을 보며 좌절하는 자녀들의 모습이며, 이들의 고통을 이해 못한 우리 부모들의 모습이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말할 수 있도록 또 내가 말할 때 그 자리에 있어주고, 내가 말한 것을 확실히 이해하여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주위에 사람이 많은데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외롭다. 잠언은 간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미는 자는 현자라고 말한다. 간고하고 궁핍한 것은 마음도 그 중에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