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민 와 자리 잡은 이민자들이 1980년대 가족을 초청해 뉴욕에도 대거 들어왔다.

그러나 미국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녀가 많았고 그 외에도 부부 문제, 가정 문제 등 너무 많은 문제가 한인 이민 사회 안에 불거졌다.

당시 정신과 의사였던 김금옥 목사(미주한인여성목회자협의회 회장, 에버그린장로교회 담임)는 그때를 회상하며 "하루 40시간을 살아야 했다"고 표현할 정도다.

평신도였던 '닥터 김'에게 환자들은 상담이 끝나고 나면 왜 그리 하나님 얘기를 하자거나 기도를 해달라 하는지... 정신과 의사에게 기도를 해달라니 닥터 김의 마음은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평신도끼리 교제를 나눈다'고 생각하고 기도도 하고 대화도 나눴다.

문제가 너무 크고 감당이 안돼 고통스러울 때는 일간지에 칼럼을 내기도 했다. 상담하러 와서는 듣지 않을지라도 '신문으로라도 보았으면...'하는 마음에서였다. 글을 냈더니 닥터 김이 생각했던 것 처럼 "신문은 봤다."는 환자의 소식도 들려왔다. 그리고 신학교, 교회 등에서 강의와 세미나도 한참 했다.

아는 사람에게 들었다면서 연락한 사람, 신문에서 칼럼을 읽었다는 사람, 신학교에서 강의를 들었다는 사람 등 캘리포니아, 워싱턴DC, 플로리다, 조지아, 업스테이트 뉴욕 등 미국 전역 어디든 가릴 것 없이 밤이고 새벽이고 닥터 김에게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정신과 의사로서 일하면서 인간의 거의 모든 고통을 보았습니다. 특히 여성 세미나 시리즈를 할 때는 참여한 여성들이 가정 내에서, 부부 간에, 개인적으로 겪었던 고통을 쏟아내고 다들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저에게도 그 때 기억이 마음 아프게 남아있습니다."

김금옥 목사는 "신학교는 저에게 그 모든 고통을 신학적으로 정리하게 해주었다."며 "인간에 대해서, 인간의 평등. 자유. 구속 등을 거기서 다 배웠다."고 회고했다. 또한 목사가 되고 나니 의사의 자리에서 영적인 도움을 원하는 환자를 바라보며 마음이 답답했던 것이 풀리기도 했다.

NYTS 신학교를 졸업하고 1997년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김금옥 목사는 2003년 4월 말 갑작스럽게 교회를 시작했다. 알던 사람들이 몇 명이 찾아와 모여 예배드리다 보니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생기면서 3-4식구가 된 것이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하나님의 때가 돼 교회 건물에서 예배를 드리면 첫 설교 제목을 'God loves depressed.(하나님은 우울증 환자도 사랑하신다.)'로 하고 싶다고 김 목사는 말했다.

사회 소수자(Minority), 장애를 가진 사람 등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은 소속 교단 미국장로교(PCUSA)와 맞닿아있는 부분이다. 미국장로교는 재작년부터 정신질환 태스크를 만들었다. 김목사를 비롯란 모든 태스크포스팀이 같이 쓴 “Comfort My People”이라는 글은 정신질환 정책 선언문으로 2008년 218회 총회에서 채택됐다. 또한 204회 총회에서 총회여성목회부 대표로 정신대 여성에 관해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정신대에 관한 안건이 뉴욕시 노회에 상정됐을때 김금옥 목사는 미국장로교 총회여성목회부 위원이자 한국 여성으로 적임자라 여겨져 관련해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작년 여름 병원을 닫은 김금옥 목사는 많은 사람들이 정신 건강에 대한 지식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기 원해 정신건강 시리즈 7권을 집필했다. 그래서 필요한 이에게 전해주고 있다. 또한 교회 웹사이트(www.epcny.org)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한다. (문의: 718-614-45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