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콘크리트를 비비는 막노동을 해서 벽돌을 만들었던 때에 한 가난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너무 가난해 16살 때 학교를 중퇴했고, 노동현장에 뛰어 들어 막노동을 하며 자랐던 아이입니다. 그 소년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 성장해 나중에 커서 영국 수상이 된 ‘메이어’라고 합니다.
훗날 어느 기자가 물어보기를 ‘어떻게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냈습니까?’하자 메이어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비관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표정이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라는 말을 했다 합니다.
여러분,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을 보면 벌써 생각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생각에서부터 승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에서도 승리하고, 생활에서도 승리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면서도,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흔들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는 갈대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여러분, 무더웠던 여름에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선글라스도 어두운 곳에 들어왔을 때에는 벗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둡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어둡다 어둡다 하면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집합니다. 왜 이렇게 세상이 어둡냐? 왜 이리 불편하냐? 수많은 사람들은 어두운 곳에서도 선글라스를 쓰고 잘 안 보인다고 고집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 중에 ‘세상의 모든 시험이 내게 몰려 올 때에’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찬양의 가사 중에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 듯, 믿음의 눈을 들면 보이는 분계시네. 지금도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변하는 것들을 위해 일평생 싸우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시콜콜 싸움을 하다 하다 정말 말도 되지 않는 것을 보고 싸우고 또 싸웁니다.
보세요, 지금 내 상황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주위를 돌아보면, 특히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보게 되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 외로 가까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물어보면 물질의 어려움은 그 다음이라고 합니다. 질병 때문에... 어떤 분은 혀에 암이 생겨서 혀를 잘라야 되고, 어떤 분은 잇몸에 병이 생겨서 치아를 다 뽑고 턱을 다 드러내야 한다고 하고, 어느 집사님은 신장이 나빠 일주일에 2번씩 피를 걸려야 살 수 있다는 분이 있다는 겁니다.
어른은 그래도 괜찮아요, 아주 어린 아이들이 불치의 병으로 회복되기 어려운 병 때문에 죽지 못해 사는 그런 가정도 많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감사하시고 어떤 어려운 가운데서라도 주님만 바라보시며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눈을 들어 보면 보이는 분계시니 그 분이 바로 주님이시란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캄캄한 길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내가 잘 살 때도 주님이 함께 하셨지만, 못 살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건강할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시지만, 질병과 고통의 신음 속에서도 주님은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각 나라의 모든 하이웨이는 모든 길들이 S자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운전자들이 졸지 말라고 사고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일직선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강물 역시 S자 형태로 굽어져 있습니다. 물결이 직선으로 내려오게 되면 모든 생물들이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굽고 부딪치면서 자생능력을 갖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겨울철에 스키장에서 스키를 탈 때 직선으로 내려오면 다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S자 형태로 내려와야 안전하고 스릴이 있는 것입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다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이 망하지 않기 위해 S자 형태로 살아가도록 고난을 준비하십니다. 인생에 고난의 굴곡은 힘들지만, 그 힘든 가운데 인생의 많은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때로는 빨리 가는 것 보다 바로 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고통 중에서 날마다 찬양의 삶을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마는 이럴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이 가장 귀한 입술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우리 모두 함께 부릅시다.
훗날 어느 기자가 물어보기를 ‘어떻게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냈습니까?’하자 메이어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비관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표정이 밝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라는 말을 했다 합니다.
여러분,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들을 보면 벌써 생각에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생각에서부터 승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말에서도 승리하고, 생활에서도 승리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하면서도,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흔들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이 흔들리는 갈대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여러분, 무더웠던 여름에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선글라스도 어두운 곳에 들어왔을 때에는 벗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둡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어둡다 어둡다 하면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집합니다. 왜 이렇게 세상이 어둡냐? 왜 이리 불편하냐? 수많은 사람들은 어두운 곳에서도 선글라스를 쓰고 잘 안 보인다고 고집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 중에 ‘세상의 모든 시험이 내게 몰려 올 때에’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찬양의 가사 중에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는 듯, 믿음의 눈을 들면 보이는 분계시네. 지금도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변하는 것들을 위해 일평생 싸우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시콜콜 싸움을 하다 하다 정말 말도 되지 않는 것을 보고 싸우고 또 싸웁니다.
보세요, 지금 내 상황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주위를 돌아보면, 특히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보게 되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생각 외로 가까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물어보면 물질의 어려움은 그 다음이라고 합니다. 질병 때문에... 어떤 분은 혀에 암이 생겨서 혀를 잘라야 되고, 어떤 분은 잇몸에 병이 생겨서 치아를 다 뽑고 턱을 다 드러내야 한다고 하고, 어느 집사님은 신장이 나빠 일주일에 2번씩 피를 걸려야 살 수 있다는 분이 있다는 겁니다.
어른은 그래도 괜찮아요, 아주 어린 아이들이 불치의 병으로 회복되기 어려운 병 때문에 죽지 못해 사는 그런 가정도 많더라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감사하시고 어떤 어려운 가운데서라도 주님만 바라보시며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눈을 들어 보면 보이는 분계시니 그 분이 바로 주님이시란 사실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캄캄한 길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내가 잘 살 때도 주님이 함께 하셨지만, 못 살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건강할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시지만, 질병과 고통의 신음 속에서도 주님은 함께 하신다는 겁니다.
각 나라의 모든 하이웨이는 모든 길들이 S자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운전자들이 졸지 말라고 사고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일직선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강물 역시 S자 형태로 굽어져 있습니다. 물결이 직선으로 내려오게 되면 모든 생물들이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굽고 부딪치면서 자생능력을 갖도록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겨울철에 스키장에서 스키를 탈 때 직선으로 내려오면 다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S자 형태로 내려와야 안전하고 스릴이 있는 것입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다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이 망하지 않기 위해 S자 형태로 살아가도록 고난을 준비하십니다. 인생에 고난의 굴곡은 힘들지만, 그 힘든 가운데 인생의 많은 의미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때로는 빨리 가는 것 보다 바로 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고통 중에서 날마다 찬양의 삶을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마는 이럴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이 가장 귀한 입술이 되는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우리 모두 함께 부릅시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