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방방곡곡 도시와 시골 가리지 않고 교회를 찾아 ‘회복과 치유’의 전도사가 되길 원합니다. 단 한 마리의 어린 양을 위해서라도 제 목소리가 쓰임받길 원합니다. 내가 없다고 해서 안 되는 일은 없지만 나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곳에 있고 싶습니다.”
서울대 음대가 낳은 최고의 테너, 천상의 목소리, 한국의 파바로티, 노래하는 거인, 춤추는 테너, 조수미의 라이벌…. 한국 기독교음악(CCM)을 한 단계 다른 차원으로 이끈 개척자와도 같았던 테너 박종호가 돌아왔다.
가스펠 가수로서는 최초로 서울 예술의 전당, 올림픽 체조 경기장과 세종문화회관 공연에서 전회매진 대기록, 앨범판매 200만장, 정규앨범 11장, 라이브 앨범, 크로스오버 앨범 등 가스펠 계에 전무후무한 역사를 기록한 그는 길고도 뚜렷한 행보를 보여왔다. 잠시 미국 유학과 뇌졸중 등으로 인해 10여년간 우리 곁을 떠나 침묵했지만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0여 년의 시간 동안 박종호는 달라졌다. 10년 전 그는 신승훈, 인순이, 빅마마 등 내로라하는 뮤지션들과 함께 대형 공연장 위주로 활동하던 가수였지만, 이제는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 유학생활 10년이 가져다 준 깨달음 때문.
지휘자 정명훈의 모교로 널리 알려진 미국 메네스 음대 대학원 프로페셔널과정을 마치기 위해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간 박종호는 노스캐롤라이나의 시골 어느 작은 마을 교회를 찾게 됐다.
“삶의 고통과 외로움에 지친 이민자들이 자신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겸허해져야 한다. 내 노래를 듣고 은혜를 받는다면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찾아가야 한다’고요.”
이후로 그는 한 달에 15,000Km가 넘는 거리를 손수 운전하며 미 전역 방방곡곡 구석진 교회를 방문하면서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에 이렇게 소외된 지역이 있다니, 더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를 결심을 하게 됐고, 문화적 혜택과는 동떨어진 그곳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2008년 5월 한국 CBS 라디오 프로그램 ‘박종호의 가스펠 아워’ 진행을 맡으면서 고국으로 돌아온 박종호는 목소리만으로 전국을 찾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 울산, 여수, 부산, 대전 등 전국 구석구석까지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특히, 오랜만에 돌아온 고국에선 가족의 해체가 급속화하고 있었다.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교회 성도들도 ‘파괴의 물결’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세상을 감싸고 위로하는 음악에 대해 고민하던 박종호는 후배 가수 김종환을 만나게 되고 하나의 곡이 그 자리에서 완성되었다. 그 노래는 바로 ‘당신만은 못해요’라는 곡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박종호 음악의 첫걸음이었다.
“이혼하려던 부부가 4주간의 조정기간에 ‘당신만은 못해요’ 노래를 듣고 마음을 바꾼 사례도 있었어요. 이 만남의 폭이 확대되고, 저의 음악이 도구로 사용되어지기 원해요. 특히 교회와 대중의 가교적 위치에 서서 가정과 사회의 관계회복, 그리고 행복을 노래하려 합니다. 가정의 문제가 전체 사회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죠.”
박종호는 앨범 판매 수익금은 현재 대부분 YWAM 예수전도단을 통해 해외 선교사 건강검진 및 수술비를 위해 내놓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에이즈 환자를 위한 고아원 시설을 설립하고 인도에서는 에이즈 병원도 세워졌다.
그의 이러한 선행은 수 차례의 전도여행에서 겪었던 체험 때문. 전도여행에서 그는 본국에서 지원이 끊겨 아이들 학교조차 보내지 못하는 뉴욕 버팔로 출신 선교사를 만나기도 했고, 영국 이슬람 지역에서는 한 선교사가 뇌종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도 돈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져 생활하며 선교를 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참담했다.
사실 그 역시 뇌졸중이라는 병을 겪으며 처음으로 나약함이란 것을 알게 됐다. 한국에선 그의 수술을 앞두고 수천, 수만 통의 기도편지가 하늘로 올라갔다. 천국의 문턱에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금 ‘함께’를 말한다. 그리고 ‘행복’을 말한다. 식지 않는 청년의 열정과 무모한 모험, 그 끝에 ‘사람’이 있다는 것, ‘우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국 그 척박한 문화의 광야 위에 남다른 열정으로 새로운 모험을 준비하고 있다.
박종호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그물 안에 포획된 물고기들이요, 생활과 시간의 진통을 고스란히 함께 하는 ‘연결된 존재’라는 생각이 저의 눈은 자꾸만 세상으로 돌리게 하고 있다”면서 “교회뿐만 아니라 직장인, 시민단체, 대중문화의 현장에서 ‘회복과 치유’를 모토로 문화운동의 선봉에 서려 한다. 2010년에는 좀 더 새롭고 다양한 공연 프로젝트를 위해 달릴 것”이라는 계획도 전했다.
서울대 음대가 낳은 최고의 테너, 천상의 목소리, 한국의 파바로티, 노래하는 거인, 춤추는 테너, 조수미의 라이벌…. 한국 기독교음악(CCM)을 한 단계 다른 차원으로 이끈 개척자와도 같았던 테너 박종호가 돌아왔다.
가스펠 가수로서는 최초로 서울 예술의 전당, 올림픽 체조 경기장과 세종문화회관 공연에서 전회매진 대기록, 앨범판매 200만장, 정규앨범 11장, 라이브 앨범, 크로스오버 앨범 등 가스펠 계에 전무후무한 역사를 기록한 그는 길고도 뚜렷한 행보를 보여왔다. 잠시 미국 유학과 뇌졸중 등으로 인해 10여년간 우리 곁을 떠나 침묵했지만 다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0여 년의 시간 동안 박종호는 달라졌다. 10년 전 그는 신승훈, 인순이, 빅마마 등 내로라하는 뮤지션들과 함께 대형 공연장 위주로 활동하던 가수였지만, 이제는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 유학생활 10년이 가져다 준 깨달음 때문.
지휘자 정명훈의 모교로 널리 알려진 미국 메네스 음대 대학원 프로페셔널과정을 마치기 위해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간 박종호는 노스캐롤라이나의 시골 어느 작은 마을 교회를 찾게 됐다.
“삶의 고통과 외로움에 지친 이민자들이 자신의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겸허해져야 한다. 내 노래를 듣고 은혜를 받는다면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찾아가야 한다’고요.”
이후로 그는 한 달에 15,000Km가 넘는 거리를 손수 운전하며 미 전역 방방곡곡 구석진 교회를 방문하면서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에 이렇게 소외된 지역이 있다니, 더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를 결심을 하게 됐고, 문화적 혜택과는 동떨어진 그곳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2008년 5월 한국 CBS 라디오 프로그램 ‘박종호의 가스펠 아워’ 진행을 맡으면서 고국으로 돌아온 박종호는 목소리만으로 전국을 찾는 데 만족하지 않았다. 서울뿐만 아니라 대구, 울산, 여수, 부산, 대전 등 전국 구석구석까지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특히, 오랜만에 돌아온 고국에선 가족의 해체가 급속화하고 있었다.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교회 성도들도 ‘파괴의 물결’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세상을 감싸고 위로하는 음악에 대해 고민하던 박종호는 후배 가수 김종환을 만나게 되고 하나의 곡이 그 자리에서 완성되었다. 그 노래는 바로 ‘당신만은 못해요’라는 곡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박종호 음악의 첫걸음이었다.
“이혼하려던 부부가 4주간의 조정기간에 ‘당신만은 못해요’ 노래를 듣고 마음을 바꾼 사례도 있었어요. 이 만남의 폭이 확대되고, 저의 음악이 도구로 사용되어지기 원해요. 특히 교회와 대중의 가교적 위치에 서서 가정과 사회의 관계회복, 그리고 행복을 노래하려 합니다. 가정의 문제가 전체 사회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죠.”
박종호는 앨범 판매 수익금은 현재 대부분 YWAM 예수전도단을 통해 해외 선교사 건강검진 및 수술비를 위해 내놓고 있다. 또한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에이즈 환자를 위한 고아원 시설을 설립하고 인도에서는 에이즈 병원도 세워졌다.
그의 이러한 선행은 수 차례의 전도여행에서 겪었던 체험 때문. 전도여행에서 그는 본국에서 지원이 끊겨 아이들 학교조차 보내지 못하는 뉴욕 버팔로 출신 선교사를 만나기도 했고, 영국 이슬람 지역에서는 한 선교사가 뇌종양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고서도 돈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져 생활하며 선교를 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참담했다.
사실 그 역시 뇌졸중이라는 병을 겪으며 처음으로 나약함이란 것을 알게 됐다. 한국에선 그의 수술을 앞두고 수천, 수만 통의 기도편지가 하늘로 올라갔다. 천국의 문턱에서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금 ‘함께’를 말한다. 그리고 ‘행복’을 말한다. 식지 않는 청년의 열정과 무모한 모험, 그 끝에 ‘사람’이 있다는 것, ‘우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국 그 척박한 문화의 광야 위에 남다른 열정으로 새로운 모험을 준비하고 있다.
박종호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그물 안에 포획된 물고기들이요, 생활과 시간의 진통을 고스란히 함께 하는 ‘연결된 존재’라는 생각이 저의 눈은 자꾸만 세상으로 돌리게 하고 있다”면서 “교회뿐만 아니라 직장인, 시민단체, 대중문화의 현장에서 ‘회복과 치유’를 모토로 문화운동의 선봉에 서려 한다. 2010년에는 좀 더 새롭고 다양한 공연 프로젝트를 위해 달릴 것”이라는 계획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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