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도 좋지만 바로 옆의 형제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복음이 확장되고 사랑이 증거될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다. 20일 안디옥몽골교회와 시카고한인교회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음악과 식탁을 나눴다. 시카고한인교회는 이민 역사가 짧은 몽골인교회가 접하기 쉽지 않은 헨델의 ‘메시아’를 무대에 올렸고 앞뒤로 몽골 국가와 성탄 찬송가 등을 함께 연주했다. 안디옥교회의 집사 바이샤 씨는 “한인교회와 우리는 형제와 같다. 그들의 성장, 열심, 기도 등 모든 부분들이 다 너무 좋다”고 말했다.

몽골인의 미국 이민 역사는 길어 봐야 20년이 채 되지 않는다. 몽골은 1991년 소련 붕괴 전까지는 소련의 위성국가였고 국민들의 서방세계로 여행이나 이민은 아예 불가능했다. 그러나 현재 시카고, 덴버, 워싱턴DC 등지로 이민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약 1만4천명의 미주 몽골인 가운데 2천명 이상이 시카고에 살고 있다고 한다. 2002년 말만 해도 미국에 몽골인교회는 단 2개 뿐이었으나 지금은 7개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안디옥교회다. 이 교회는 2004년 1월 헤브론교회 안에서 시작됐으나 2005년 5월 독립했고 현재는 글렌뷰한인교회를 빌려 예배를 드리고 있다. 바이샤 씨의 말대로 안디옥교회와 한인교회는 인연이 깊을 수 밖에 없다. 창립된 곳, 현재 빌려 쓰고 있는 곳 외에도 안디옥교회와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는 교회는 바로 시카고한인교회다.

▲그동안의 사역을 간증하는 구성회 장로(오른쪽)
시카고한인교회가 오늘 안디옥교회와 아름다운 동역의 관계를 맺게 된 것에는 구성회 장로가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평소 몽골 선교에 비전을 갖고 있던 구 장로는 시카고한인교회 장로로 섬기다 은퇴한 후,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옆의 몽골인들을 찾아 갔다. 그때는 몽골어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선교 열정 하나만 갖고 1년 이상 안디옥교회에 출석하면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1부 주일예배는 시카고한인교회에서, 2부 주일예배는 안디옥교회에서 드렸다. 십일조와 헌금을 안디옥교회에 하면서 안디옥교회의 재정적인 부분을 도왔다. 2005년 독립한 후 안디옥교회가 갈 곳이 없을 때 자신의 형제인 구재회 목사가 시무하는 글렌뷰한인교회에서 예배 드릴 수 있도록 주선해 준 것도 구 장로였다. 구 장로는 “칼과 말로 전세계를 정복한 몽골인들이 이제는 복음과 말씀으로 전세계를 정복할 것이다”라며 “몽골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지만 뒤에서 몽골인 형제들과 함께 예배 드리며 많이 눈물 흘리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몽골선교에 여생을 바치겠다는 구 장로의 ‘다소 무모한 도전’은 몽골인과 한인의 아름다운 동역이라는 선교적 비전 외에 가시적인 성과도 냈다. 구 장로 출석 당시 성도가 30여명 출석하던 안디옥교회에는 현재 1백명 이상으로 성장했고 미주 몽골교회 가운데 주목받는 교회가 됐다. 이제는 자체적으로 몽골인 신학생을 양성해 몽골인 복음화에 나서겠다는 비전도 세울 수 있게 됐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서창권 목사에게 성도들의 감사가 담긴 대형 성탄 카드를 전달했다.
구 장로의 이 도전의 뒤에는 시카고한인교회가 든든히 뒤를 받치고 있다. 매달 안디옥교회에 선교헌금을 하는 것 외에도 안디옥교회 담임인 낫사 목사와 시카고한인교회 담임인 서창권 목사가 정기적으로 만나 멘티와 멘토의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의 몽골인교회들은 이민자가 유입되며 급성장한 과거 7-80년대 한인교회를 연상시킨다. 서 목사는 몽골인교회가 한인교회의 장점을 잘 배울 뿐 아니라 분열이나 갈등, 2세 사역에 관해서도 한인교회의 시행착오를 답습하지 않도록 돕는 멘토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날 음악회에는 1백20명 이상의 몽골인과 한인이 성전을 가득 채웠고 안디옥교회 성도들은 서창권 목사에게 감사의 성탄 카드를 전달하기도 했다. 한인과 몽골인, 두 민족은 일방적인 선교의 관계를 넘어 안디옥교회와 시카고한인교회처럼 서로를 복음의 동역자이자 형제로 세워가고 있다. 그들의 메시아 연주회는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