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사람으로 인해서..대조(12-17) 비교(18-21)
본문 : 롬5:12-21

세 번째 죽음은 바로 영원한 죽음-영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육체적인 죽음을 맞고 나면 그 후에는 믿는 사람들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것이고(고후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빌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빌 3:20)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불신자들은 바로 영원한 죽음- 영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마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자 이 세가지 죽음은 바로 우주적인 죄로 인해서 온 것임을 우리는 12절의 내용을 통해서 확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2)

어떻게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사람들은 질문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죄들이라고 하지 않고 죄(The SIN)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죄 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Sin Nature)

만약에 아기를 가진 엄마가 에이즈를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면 아기는 자동적으로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이 됩니다. 엄마가 혈우병 인자를 가지고 있다면 아기도 혈우병 인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죄성도 세대를 거쳐서 유전되는 것입니다.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모든 자는 다 이 치명적인 유전병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죄성이란 바로 죄를 짓는 경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죄만 보면 죄를 짓고 싶어 하는 충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인간은 원천적으로 선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 합니다. 아이들이 예쁘기는 하지만 얼마나 이기적인지 모릅니다.(Selfish). 오직 자기만 압니다.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에게 거짓말 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반항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 모릅니다. 그것을 보면 우리가 죄성이 무엇인지 보게 됩니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 해서 안 되는 것은 꼭 하는 것이 아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합니다. 지식적 교육도 필요하지만 영적 교육이 더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가 아니면 죄를 지어서 죄인인가? 사과나무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과나무가 되려면 언제 사과나무가 되지요? 사과 열매를 맺을 때 비로소 사과나무가 되는가요? 아니면 원래부터 사과나무라서 사과를 맺습니까? 코끼리는 새끼 코끼리를 낳습니다. 왜죠? 원래부터 코끼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우리에게 죄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한 사람의 죄 때문에 모든 인류를 정죄 한다는 것이 공평한 것인가? 의문을 품습니다. 아담이 죄 지을 때 우리는 있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가 그 죄 값을 받아야 하는가? 그 대답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공평 하실 뿐 아니라 지혜롭고 또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단 한사람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을 정죄 받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왜? 일까요?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상황별로 다 평가를 했다고 했을 때 결론은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아무도 완전 하지 않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운데 나는 한 번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자부할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모두는 다 죄를 지었습니다. (We have all Sinned)

그런데 모든 사람이 한 사람으로 인하여 정죄를 받게 되었다면,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한 사람으로 인해서 구원을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한사람 아담으로 인해서 온 세상을 정죄 받게 됐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온 세상이 구원을 받을 수도 있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가르치고 있는 논점인 것입니다. 그럼 성경에 대해서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냐 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옥 가겠습니까? 아니면 천국 가겠습니까?

(롬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은 말씀 하시기를 사람들이 율법을 듣기도 전에, 성경에 대해서 듣기 전에, 하나님의 진리를 알기도전에 그들은 죄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죽음인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 고로 그들이 죽었다면 그들은 죄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단 한사람이라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까지 살아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구약의 예를 듭니다. 율법의 목적은 바로 죄를 드러나게 하는데 있습니다. (갈3:21-22)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어겼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율법으로 우리를 정죄 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알지도 못한 것을 가지고 정죄 하실 수는 없습니다. 성경을 들어 보지도 못한 사람들, 하나님의 법을 알지도 못한 사람들,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이 본문의 초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이 죽은 것은 사망이 왕 노릇 한 것은 율법 때문이 아니라 바로 죄 때문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이 있건 없건 간에 이미 죄인이기에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 하시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했느냐에 따른 것이 아니고 우리가 누구냐 하는 정체성에 따른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질에 죄성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이지 우리가 행한 작은 범죄들 때문에 우리를 영원한 죽음에 보내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지은 자범죄는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에 따라서 이 세상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더 큰 것은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성에 의한 자신의 존재를 인정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롬 5:14) 에 보면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오실 자"는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표상"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범죄한 아담이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할 때 어떤 점에서 표상이 될까요? 여기서 "표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우리 번역처럼 "표상"이나 "모형"처럼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어떤 사실이나 과정을 보여주는 패턴"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NIV영어성경은 "패턴"(pattern)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잘 번역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는 말은 아담 한 사람이 범죄함으로 모든 인류에게 죄가 전가된 패턴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의가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가되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으로 전가되는 은혜는 아담의 죄가 전가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점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15을 보십시오.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아담이라는 한 대표자에 의해 죄가 들어왔고, 사망이 왔다면, 그리스도라는 한 대표자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모든 사람에게'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하라) 넘쳐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표성의 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