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이 요즘 어떤 멕시코 음료를 마시고 있다. 문제는 그 음료가 유리병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음료를 마신 데이빗이 그 유리병을 집안 어느 곳에나 그냥 방치해 둔다는 것. 나는 혹 내 두살백이가 그 빈 유리병을 집어서 던지거나 가지고 놀다가 깨질까 봐 병이 눈에 띌 때마다 바로바로 분리수거 통에 넣어 버린곤 한다.

오늘은 어째서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그 유리병을 보지 못한 것일까? 둘째 아이가 그 병을 집어들고 바닥에 살짝 남아 있는 그 음료수를 기어코 마셔 볼려고 몸부림을 쳤다. 그러더니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이는 그 병을 바닥에 세게 던져 버렸다. 나는 내 목소리에 내가 놀랄 만큼 크게 비명 비슷한 소리를 질렀다. 정말 엉겹결에 나온 소리였다. 그 유리병이 깨져서 유리 조각이 집안 곳곳에 산산이 흩어지면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이며 어떻게 청소해야 할 것인지 하는 생각들이 그 짧은 순간에 복합적으로 일어나면서 나온 비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마루 바닥에 무슨 쿠션이라도 깔린 것처럼 그 유리병은 심하게 부딪치는 소리를 내고도 깨지지 않았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애들에게 소리질러서 미안하다고 하고 씩 웃어주었다. 혹 아이들도 나 때문에 놀라지 않았을까 싶어서. 진짜 무슨 일 나기 전에 이 병을 처리해야겠다 싶어 나는 즉시 그 병을 분리수거 통이 있는 차고로 가지고 갔다.

분리수거통은 가까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신발을 신고 두어발짝은 가야 하는 거리에 있다. 신발을 신는다는 것이 귀찮은 생각이 들어 나는 분리수거통에 플라스틱병들이 가득한 것을 확인하고는 그 유리병을 가볍게 그 통까지 던져 넣었다. 정확하게 들어간 듯 하던 병이 그만 무언가에 부딪쳐서 튕겨져 올라와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쳐 깨지고 말았다. 산산이 부서진 조각들은 내 차 아래쪽에서부터 차고 문 앞쪽까지 흩어져 있었다. 기가 막혔다. 바로 5분 전만 해도 이 병은 두살백이의 잔인한 던짐을 견뎌낸 강인한 인생이었는데, 바로 지금 내 눈앞에서 어이없이 깨져 버린 것이다. 마치 ‘나는 원래 오늘 저녁 깨어질 운명이었어 네가 나를 보호할려고 한 노력은 가상하지만 때가 오면 그 누구도 막을수 없어’ 하고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날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오늘밤 깨진 이 유리병처럼 참 싱거운 계기로 세상을 마감할지도. 삶과 죽음의 때는 오직 주님의 계획 안에 있다.

/김성희(볼티모어 한인장로교회의 집사이자 요한전도회 문서부장.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메릴랜드 주립대학 의과대학에서 연구 행정원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