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11월 22일은 추수감사주일이었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예배를 드렸지요. 그중 주일학교 아이들과 youth들이 봉헌 시간에 각자 집에서 가져온 과일이나 빵을 제단 앞에 나와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몇 안 되는 아이들이었지만 예쁜 바구니에 하나 가득 채우고도 남았습니다. 예전 한국에서 신외리 시골 목회시, 제단 앞에 드려진 곡물과 과일들을 “해관 보육원”(現 좋은집) 아이들에게 전해 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교사들은 이것을 계획하면서, 조정숙 권사님을 염두에 두었던 모양입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nursing home에 계신 권사님께 “감사절 사랑”을 전해 줄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일, 조정숙 권사님이 Strong Hospital 응급실로 가시는 바람에, 과일들이 갈 곳을 잃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 과일들을 전달할 곳이 생각났습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80이 넘은 클로렌스 할머니 내외였습니다. 이들은 혼자 거동하기에 힘든 분들이지만, 늘 사랑이 넘치는 부부이며, 사람을 그리워하는 분들 이였습니다. 처음 이곳에 와서 우리 가족이 힘들어 할 때에, 많은 조언과 기도로 함께 해 주셨던 분들이지요. 그래서 지난 월요일 과일바구니를 들고 이분들 집을 방문했습니다. 과일 바구니에 담긴 우리 교회 주일학교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시며, 너무나 좋아 하셨습니다. 아이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말을 전해 달라고 하면서, 우리 내외를 안아 주었습니다. 감사절을 맞이해서, 뜻있는 작은 손길을 펼칠 수 있어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매해 이렇게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감사함으로 나누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둘! 2006년까지만 해도 우리 교회에 청년들이 많지 않았을 뿐더러, Thanksgiving 때 Rochester에 남는 청년도 많지 않았던지라, (이전) 사택에서 감사절을 함께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2007년부터 청년부가 많아졌고, Thanksgiving 당일에도 Rochester에 남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기존 사택에서 모일 수 없을 정도의 인원이 되어 고민하던 중, 감사하게도 2007년에는 강은진 성도가 남은 청년들을 집으로 초청해 주었고, 작년에는 김민수/장윤희 성도가 집을 오픈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감사절을 정말 감사하게 잘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2009년! 지난 목요일, 새로 이전한 사택에서 Thanksgiving 첫 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45명 정도가 모인 것 같았습니다. 박인옥 집사님 가정과 기홍 형제 그리고 (박)찬수 형제를 비롯하여, 올해 졸업 후 이곳을 떠난 지예, 연미, 지윤, 팀 그리고 성민이까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50명 인원을 예상으로 일주일 전부터 아내가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선영이와 소정이가 전날 밤을 새워가며 함께 음식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탕수육, 보쌈, kind of Turkey(^^), 떡갈비, 해물찜을 비롯하여, 송편, 호떡, 식혜까지... 정말 푸짐하게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루 일찍 보스턴과 뉴욕시티에서 올라온, 지예와 연미도 새벽기도 다녀온 후 음식 준비를 거들어 주었습니다. 모두 모여 먼저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올려 드렸습니다. 간단한 설교 후에 돌아가며 일 년간 감사한 일들을 나누었는데, 일번 타자 팀이 “난, 지윤이 주신 것을 감사해요” 하는 바람에 싱글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고, 얼마 후 진기 역시 감사제목이 “세민”이라고 하는 바람에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순서를 마친 후, 몇몇 청년들이 남아 끝까지 정리를 도왔습니다. 하나님께 정말 감사했습니다. 함께 모일 수 있는 사택을 허락하신 것, 음식을 함께 준비할 수 있는 지체들을 허락하신 것, 힘들지만 귀한 일을 능히 감당하게 하신 것... 바람이 있다면, 아직 예수를 모르는 청년들... 민수와 익재와 수연과 현순이와 정민과 인욱과 재완이 그리고 참석은 못했지만, 혜진과 지호까지도 제일 교회와 모든 성도들의 사랑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는 축복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셋! 어제(토) 조정숙 권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지난주일 nursing home에서 쓰러진 권사님이 Strong Hospital 응급실로 이송되셨는데, 쓰러지면서 머리를 다쳐 상당한 내출혈이 있다 했습니다. 의사들 말로는, 깨어날 가능성이 희박하고, 수술도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일부터 매일 심방을 갔었는데,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중환자실에서 심장병동(Vascular Center)로 이동하시며 critical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아오신 대다가 최근 flu까지 걸리셔서, 더더욱 치료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요일 심방을 갔을 때, 권사님이 눈도 뜨시고 사람도 알아보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따님(한청실 집사)도 알아보고, 손자들 이름도 부르시고, 저를 보시고는 “목사님”하며 울먹이시기도 했습니다. 제 아내의 손을 잡고는 연신 안 놓아주실 정도로 수요일에는 많은 호전을 보이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이내 의식을 잃으셨고, 결국 지난 토요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수요일에 잠시 의식을 회복되었던 시간은, 하나님이 한청실 집사님을 위로하기 위해 특별히 허락하신 “선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집사님도 말하기를, “그 시간이 없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 시간이 저를 많이 위로해주셨어요. 하나님 선물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권사님은 고통도 눈물도 없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20여 년 전에 미국인과 결혼함으로 미국에 오신 집사님은 평생 어머니와 친구처럼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오셨습니다. 집도 로체스터에서 한 시간 떨어진 대다가, 매일 고된 일을 통해서 하루하루를 살아오셨기에, 집사님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버팀목과 같았습니다. 그랬던 어머니를 먼저 하나님께 보내드린 것이지요. 이젠 우리 제일 식구들이 한 집사님의 버팀목이 되어 드려야 합니다. 아니, 우리를 통해 예수님이 그리 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어머니를 잃은 한청실 집사님이 가장 힘들 때입니다. “난 한 집사님을 잘 모른다.” 하지 마시고, 주일 예배 때 나오시면 위로도 해 드리고, 앞으로 기도로서 힘이 되어드리는 제일 식구들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