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회변화에 따라 조선족교회 전도대상 변화 시급.

민족교회에서 중국인 교회로 연합, 탈바꿈 필요
중국의 개혁개방과 더불어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 대 이동이 시작되었다.
특 별히 중국동포들의 집거구인 옛 만주 땅에서의 이농과 도시 진출 바람이 거세다. 거기에다 중국동포들의 해외진출과 한국행이 봄물을 이루면서 농촌 동포마을이 없어지거나 축소 되어가고 있다. 특별히 농촌에서 조선족 청년들을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 되었다. 중국조선족의 중심을 이루었던 연변지역의 조선족 인구비례 상황을 보아도 엄청난 변화가 보인다. 중국지방 정부가 밝힌 통계적 숫자로 보면 1953년 연변 조선족 인구비례 57%, 지난해까지 36%로 축소됐다. 현재 마지막 남은 젊은 층 동포들도 농촌을 떠나 시내로 모여들고 있다.

* 현재 조선족 인구의 엄중 감소와 더불어 농촌 이농, 탈 농촌 현상이 보편적이며 지어 농촌학교 , 공공시설이 거의 문을 닫은 형편이다.
현 재 연변지역에만도 삼자교회200여개에 가정교회 300여개 하여 도합 500여개 교회가 있다. 그 교회 중 80%- 90%가 농촌교회인데 변화되는 환경을 맥없이 바라 볼뿐 어떤 대응책을 내오지 못하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교회의 존재 여부마저 말밥에 오르고 있다. 최근년래 거의 모든 민족교회의 성도수 감소, 헌금 등 재정축소, 교회운영경비 부족, 사역자 가정 생활난, 등이 겹치며 사역자들과 성도들이 복음전파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다. 게다가 전에 분주하게 찾아오던 선교사들이도 대부분 떠나가고, 후원도 대부분 끊겼다.
이런 형편에서 조선족교회들이 점점 더 침체형상에서 벋어나지 못하고 많은 농촌교회들이 간판은 있으나 성도가 없거나, 아니면 겨우 몇 명이 교회를 지키는 허무맹랑한 실정이 비일비재하다.

필자가 주장하는 해결책의 하나는 조선족교회들이 한족교회와 연합, 또는 한인성도 예배를 개발하여 주류민족인 한족 대상화에 눈길을 돌려 교회의 생존과 앞길을 찾아야한다.

*여기에 좋은 실례가 있다. 원래 길림성 송강하교회는 100여명의 조선족 성도로 전에는 평온하게 목회를 이어왔었다. 그러다가 이 교회도 도시화 집중과 동포들 한국행이 이어지면서 조선족 성도들이 어느새 20여명으로 확 줄어들었다. 다행이 이에 앞서 이 교회전도사님은 앞날을 내다보고 한족전도와 함께 한족 예배를 도입하였던 것이다. 마침, 전도사님의 중국어 언어 소통 능력과 부인이 한족인 강점을 이용하여 교회의 실패를 반전 시켰고 현재는 한 교회 두 민족예배로 성도수가 오히려 200여명을 넘긴 중형교회로 부흥할 수 있었다. 이처럼 송강하교회가 전도대상 전의로 교회성장의 좋은 경험을 제공해준다. 조선족교회들과 동포사역자들이 우리 민족 주최교회란 울타리를 벗어나 큰 어장인 대 한족 사역으로 전환 및 결부를 통해 민족교회의 활력을 회복하여야한다.


3. 현 조선족교회지도자들의 체질개선 필요.

한인선교는 중국 대륙의 개혁개방 훈풍을 타고 재빠르게 움직여 전 대륙에 선교부흥의 불을 지폈다. 특별히 중국 동북의 모든 지역마다, 촌마다 다 교회가 일어섰다. 도처에서 성경 읽는 소리, 찬양소리가 끊이지 않으며, 복음전파의 확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교회를 이끌어 갈 교회지도자들의 수준과 수양이 따라가지 못한다.
일부 교회 전도사들은 영성은 물론 문화 지식과 인격수양이 교회 지도자로서의 요구와 거리가 멀다.
여기에는 중국의 종교지도자배양과 신학교문제 등 많은 복합적 원인이 존재하나 우리 한인선교의 지도자 배양에도 큰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중 국선교 지도자 물색 배양에서 적지 않은 선교사들은 이념의식을 앞세워 현지 청년 중에 정부 측에 반항심이 있고 자기보호와 사역의 안전에 편리한 대리인적 인물을 물색한데 있다. 그리고 대다수 자기에 대한 충성을 먼저 키우며, 자기 안전보호에 유익한 용기있는 젊은이를 우선 찾지 않았던가? 또한 이들을 자기의 제자로 삼은 후 물심과 의리면의 교양이 중심이었다. 즉 이들을 “양아들” “조카” “형님, 동생”등 친인척 관계를 맺어 이들에게 충성의리를 심어주며 자기한테로 끌어 들였다.

그런데 그들 중 적지 않은 청년들이 원래 싸움꾼, 건달습성이 많던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인물중에 믿음의 좋은 사람이 나온 역사도 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흑백 논리적 이념관점에서 출발하여 이들의 용기를 보고 배양대상으로 잡는 것이 또한 많다. 이들이 진정 거듭나기 전에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데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옛 관습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특히 중국에서 외국인 선교사의 활동에 언제나 안전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 하에서 많은 선교사들이 지도자 교양에 돈이란 당근만 썼지, 교육의 따끔한 채찍은 불이익을 당할까하여 거의 사용하지 못하였다.

혹자는 불성실한 현지 지도자의 협박, 이용에 겨자 먹기로 따르는 형상이 비일비재했으며 더하면 서로가 돌아서 원망하며 갈라서는 것이 그만이었다. 그 일부 “제자”들은 시간이 흐르고 지원금이 떨어지니 그 원 습성이 되살아나오며 선량한 믿음생활과 선한 지도자가 되기 희박함이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지역민들에게 환영받는 좋은 인물의 이미지를 가지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또 이들은 선교사들과 눈치 볼 사람이 없을 때에는 자기들끼리의 술, 담배 추렴도 스스럼없이 한다. 오히려 지방 현지인들의 반영을 보면 “그래도 중국신학을 나온 사역자들이 더 정파답고 온당하다”는 것이다..

이면에서 중국선교사들은 냉정히 자기가 배양한 지도자 신앙, 영적 함량을 한번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을 선발했으며 어떤 영성교육과 인성교육을 해왔는가 말이다. 혹시 돈에 의거하여 자기를 따르도록 만들지 않았는가? 깊이 자문해보기 바란다.
그 밖에 문제는 중국신학에서 기독교 수준급 인재 배양이 따라서지 못하며 대학 졸업생은 신학교에 가지 못하는 등 원인으로 중국교회에는 영적 지성인 사역자가 판 부족이며 거의 모든 문화 지성인들이 세상 쪽으로 빠지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4.연변농촌교회로부터 시내교회로 확장이 필요


중 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동포지역 농촌의 주요 노동력과 청년 인구가 대량 도시로 유입되거나 해외로 나가면서 농촌교회들도 진통을 격고 있다. 돈화시 황니허향의 한 마을에서만도 원150호 조선족 농가 중 100호 이상이 외국과 도시진출로 마을을 떠나갔다. 연변 각 조선족 집거 촌을 보면 한족들이 빈자리를 채우거나 빈집들이 기주부수이다. 이런 현상은 개혁개방과 사회발전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며 또한 거의 모든 선진국들이 걸을 바 있은, 즉 농업소농경제 중심에서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부딪치는 문제이다.
중국 의 개혁과 경제 발전은 농촌인구와 주민 생활이 도시생활권에로 집중되도록 하게 하였다. 많은 농촌 학교와 봉사시설이 문을 닫고 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돈화시 황니허 주변의 3개조선족교회가 이미 문을 닫았으며 또 3개의 교회가 바람에 나부끼는 초불상태이다.
이로보아 조건이 허락되는 농촌 교회의 시내진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기회에 전도대상을 잃은 사역자들도 도시로 진출하여 보다 많은 사람 중에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는 것은 바램직한 일이며 정당한 일이며 중국기독교 개혁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이 5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1) 도시교회 확장은 개혁의 필연이다.
많 은 노력과 농촌주민들, 생활권이 도시중심으로 집중, 직업변화, 상업, 유흥업, 술집, 식당, 지어는 이단과 사이비 종교들까지도 시내에 모여든다. 이럴 때 사회적으로 선한 교육을 담당하는 교회의 대다수가 계속 농촌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가. 기독교인은 특별히 사역자들은 세상의 앞장에 서는 개혁의식과 분별력을 가져야한다.

2) 시내에는 교회가 판 부족 되는 불균형 형태
연 변에는 도합 500여개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그중 정부등록교회는 약 200개소, 미등록교회 약 300개소라 한다. 그런데 시내에 위치한 교회가 단지5-10%밖엔 되지 않는다고 한다. 도시에 영향력이 크고 인구가 약 80-85%를 점하는 비율로 볼 때 이는 완전히 불균형 상태인 것이다.

3) 기독교의 성경적 가르침은 “많은데 그물을 내리라”는 것이다.
누 가복음 5장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며 고기가 많은 곳에다가 그물을 내리라고하며 많은 고기를 잡는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는 또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하신다. 그리고 사도바울도 일생동안 사람 많은 도시중심의 복음전파에 정력 하셨다. 물론 농촌에 남은 적은 수의 성도를 위해 교회사역 하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 발전의 큰 맥락(틀)에서 볼 때 사람 많은 곳을 홀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4) 세계기독교 발전국의 경험이 증명한다.
미국과 한국 등 기독교 발전국들의 경험으로 놓고 볼 때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 집중과 함께 교회들도 도시에로 집중했다. (서울 시내에는 가는 곳 마다 교회다)
발 전국가의 농촌교회들은 지금도 의연히 가난하여 사역자들도 생활난에 허덕인다. 이러한 농촌교회들을 시내 교회들이 후원, 도와주고 있다. 그런데 연변농촌교회들은 이보다 더 가난한데 시내 교회가 도와주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들의 기득권을 타고 앉아 안일만 지키는가?

5) 시내교회로의 발전과 확장은 저애세력과의 대결(평화적)이다.
중국 사회의 개혁과 변혁도 고비마다에 구 습관세력과 기득권의 반대를 받았다. 등소평의 개혁개방정책도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주변의 낡은 습관세력의 반대를 받았었다. 그러나 신생역량과 진리는 역사적으로 승리하게 되어있다.
성 경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고 하셨다. 우리 모두가 낡은 습관 의식에서 벗어나 시대의 발전에 앞장서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한다.

5. 문서선교의 취약점을 미봉할 때가 왔다.

문서 선교는 중국에서 가장 민감한 사항이다. 선전, 인쇄, 출판물에 대한 통제가 가장 큰 곳이 기도하다. 그러나 지금 디지털 문화 보급과 도처에 일어선 복사, 인쇄소들로 하여 문서, 출판이 많아지고 있다. 게다가 개혁개방의 신입발전과 함께 종교방면에 자유권한과 통제가 전에 비해 점차 완화되어 가면서 문서선교에서도 희망의 빛을 보이고 있다.
기독교는 어떤 의미에서 보면 성경을 통한 바울 등 믿음의 선진들에 의해 모범을 보인 복음문화의 전파라고 말할 수 있다.

13억 중국의 복음화에 문서 선교가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문서 선교가 선행되어야만 이단과 사이비 종교를 막으며 기독교가 건전히 발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에서 1천여 개가 넘는 동포교회를 가진 동포사회 복음 전파에도 특히 필요한 것이다.
또한 문서가 동북지역 역사 바로 알기와 특별히 기독교의 역사 외곡과 비방에 대처해야한다. 선교사들은 문서선교의 필요성과 사명감을 느끼며 관심을 돌려야한다.

역사는 역사대로 진실을 구명하여야한다. 이것이 선교사가 하여야할 또 하나의 중요사역이면서 지금 바로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유의주시 하여 복음화의 발걸음을 다그쳐야한다.

총적으로 세계 발전사의 흐름에 맞추려는 중국은 오는 세기에 낡은 이데올르기를 대신 할 수 있는 새로운 민중의 정신을 수요하고 있다. 이것은 정부지도자들도 심각하게 인식하고 정책과 각 영역을 포함하여 점차 변화의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 번 인민 대표대회를 거친 후 중국 주류층에서 2-3년 내에 보다 자유롭고 개방된 정부의 “종교법”이 나올 것이란 긍정 여론이 팽배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재 각 지역 마다 기독교에 대해 보다 온화적이며 전에 비해 자유로운 현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단 외국인 체류 비자시간 제한)
이에 따라 중국내 종교 활동이 전에 비하여 훨씬 활발해졌다. 거기에 영향력 있는 중국고위층 자녀 들이 기독교인이 되면서 (예: 이붕 전 총리의 딸이 세례 받고, 전 나라주석 유소기의 3딸 모두 크리스천이 됨) 또 문화 학술 영력 지도층에 서구 문명과 함께한 복음이 전파되면서 각 영력에 기독교 복음이 폭발적으로 파급되고 있다.
(강연고에서 일부 삭제 요약하였음)

2009년 6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