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계절을 수식할 때는 쓰지 않는데 유독 가을에만 쓰는 수식어가 ‘가을이 깊어간다’는 표현입니다. 그야말로 요즘 우리가 사는 워싱톤은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일 년에 사계절이 있다는 것이 때로 생활하는데 불편해서 언제나 날씨가 같은 지역에 사는 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입니다. 각 계절마다 제각기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다르고 그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만이 아니라 삶의 의미도 새롭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일 년 사계절이 모두 귀하지만 누군가 제게 그 중 가장 좋은 계절을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오래전부터 가을을 꼽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가을을 다른 계절보다 더 좋아하는 이유가 사계절을 모두 객관적으로 관찰 분석한 후에 얻은 결론이 아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을이 더 좋다거나, 더 좋아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가을이 제게는 좋을 뿐입니다.

매 주일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한 주간 동안 의도적으로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주제들을 정하는데 이번 주간은 ‘가을을 사는 주일’이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그렇게 한 주일의 주제로 정했습니다. 가을이 와서 가을을 사는 거야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우리는 오늘을 살면서도 오늘을 살기보다는 어제를 생각하며 살거나,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살기가 쉽습니다. 물론 가을을 살면서 봄처럼 살지 말라는 거나, 여름처럼 여기며 산다고 해서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을을 살면서는 살아가는 바로 지금, 가을을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의도적으로 정해 본 것입니다.

가을을 산다는 의미가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오겠지만 제게는 이런 마음이 듭니다. 여느 계절도 마찬가지이지만 가을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 더 진지해지게 하는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떨어지는 낙엽이 그렇고, 잎사귀가 떨어진 나무가 그렇고, 잘 익은 곡식과 과일들이 생명에 대해, 그리고 삶에 대해 우리의 마음을 겸허하게 만듭니다. 생명이 움돋는 싱그러운 봄철이나 푸르디푸른 여름철과는 다르게 가을은 우리의 삶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그러기에 가을을 산다는 것은 삶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물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이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신 목적은 무엇이며, 왜 살게 하시는지...,

올 가을은 무슨 물음이든지 우리 삶의 근본에 닿을 수 있는 물음을 묻고 가능한 만큼 그 문제에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물론 그렇게 묻는다고 해서 금세 그 물음에 답이 주어지면 좋겠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오히려 그렇게 물음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한 질문이 더 많아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주어진 삶의 여건 속에 살면서 살아가는 방법과 수단에 골똘하며 살다가, 때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 물어야 하는데 가을은 바로 그런 물음을 묻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가을을 산다는 것은 또한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기도하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다른 계절에 비해 그렇게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환경적 이유도 있겠지만 가을이 기도하기에 적합하다는 이유는 바로 가을은 우리 삶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물음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로부터 무엇을 받으면 그것을 준 이에게 그것을 준 이유이며, 사용방법 등을 묻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이, 곧 하나님께 우리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어야 하고, 그렇게 묻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그러기에 삶의 목적과 이유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가을에 하나님께 기도하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가을을 사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가을을 사는 것은 사랑하며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가을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을 사랑하기에 적합한 계절입니다. 물론 사람을 사랑하는데 계절의 구분이 있을 리가 없지만 그래도 가을은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참 좋은 계절입니다. 물론 이 말은 가을이 되면 사람들이 다른 계절에 비해 더 외로움을 느끼고, 그래서 가을은 고독해지기 쉬운 계절이라서 서로를 더욱 보듬으며, 사랑하며 살자는 의미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러한 우리 감정과 느낌으로서의 사랑과 함께 가을은 의도적인 사랑을 하는 계절입니다.

가을하면 ‘추수’와 ‘감사’의 계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요즘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에는 추수한 것도 변변치 못하고 그러기에 감사는커녕 오히려 불평과 원망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신앙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올 가을은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 때문에 발견한 감사를 나누고, 서로를 사랑으로 품었으면 합니다. 특별히 어려운 형편에서 살아가시느라 지치신 이들과 비록 가진 것이 많지는 않지만, 우리가 깨달은 감사를 나누고, 우리가 경험한 사랑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가을이 하루하루 깊어가고 있습니다. 올 가을에는 우리 모두 자신의 삶을 더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을 향해 더 기도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을 더 사랑하였으면 합니다. 그렇게 깊어가는 이 가을을 살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