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표현 중 "Why bother?"라는 것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쓰지 않고 내 앞가름만 하고 살겠다는, 지극히 미국식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을 표현한 말입니다. 성서적으로 본다면, 이 말은 가장 비신앙적인 말에 해당합니다. 교회 일에 대해 혹은 이웃의 아픔에 대해 "Why bother?"("내가 왜 상관해야 돼?")라고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Because I care!"("내게 상관있는 일이니 네가 상관해야 한다!")라고 답하실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의 관심사를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며 괴롭힘을 당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선교’는 다른 사람의 영혼에 대해 사랑의 관심을 가지고 다가가는 것입니다. ‘봉사’는 그 영혼의 필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와 봉사는 본질적으로 위험한 일이며 때로 아픔을 당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그 아픔 때문에 멈추는 일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아픔을 견디는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불편하고 때로 희생이 따른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주, 누군가가 나를 위해 상당한 희생과 아픔을 견디는 것을 볼 때 비로소 그 사랑이 ‘진짜’라는 것을 확인하곤 합니다. 아내가 나를 위해 커다란 희생을 기꺼이 감당할 때, 나는 그의 사랑이 진짜임을 확인합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말해도 행동으로 입증되지 않으면 믿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뭔가 부담을 짊어지고 아픔을 견디고 희생하는 것을 볼 때, 비로소 우리의 사랑은 진짜로 인정받습니다. 우리는 ‘진짜’를 볼 때 감동하고 감격하며 항복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항복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한 딱한 처지를 보시고 "Why bother?"라고 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내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사랑이 ‘진짜’임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진짜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사랑이 진짜임을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우리가 그들을 진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진짜임을 알리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랑을 위해 부담을 지는 것이며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고 손해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을 위해 부담을 지고 희생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은 이미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이며, 그러한 교회는 이미 열매 맺는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우리가 맺어야 할 가장 중요한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2009년 11월 8일)